"막상 할게 없네요" 썩은 갯벌로 나가는 여수 안포리 주민들

김진영 2023. 8. 21. 18: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이젠 마을 앞바다에선 아무것도 할 것이 없네요. 손해를 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서는 하루하루가 참담합니다."

이 어촌계장은 "현재 바다는 갯벌이 죽어가면서 더 이상 공동체 운영이 힘들다"면서 "어민들이 원하는 사업(태양광)에 대해 여수시도 관심을 갖고, 주민간 공동체 활성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손해 알면서도 일 나가는 어민들
농공단지·골프장 등에 둘러싸여
5~6년 전부터 조개 자취 감춰
어업인 자격 유지 위해 고군분투
3일에 20만 원 수익 감태 채취
어민들 "마을공동체 태양광 사업"뿐
최근 전남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주민들이 인근 바다에서 캐 온 감태를 실어 나르고 있다. 독자 제공

"이젠 마을 앞바다에선 아무것도 할 것이 없네요. 손해를 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서는 하루하루가 참담합니다."

20일 오후 전남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주민들은 바다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지만, 즐겁지가 않다.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시작한 감태 수확은 채산성이 좋지 않아 하루종일 작업해도 소득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해마다 7~8월쯤이면 감태(해조류 일종)를 캐기 위해 바다로 나서지만, 예전과 달리 주수입원이었던 마을 갯벌이 오염되면서 손해가 날 것을 알면서도 어업인 자격 유지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조업에 나서는 '적자 어업'을 수년 째 이어오고 있다.

이날 이희한(66) 안포리 어촌계장은 "우리 마을 앞바다는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단언했다. 수년 째 바다를 살리기 위해 애써온 주민들의 노력이 허사가 됐다. 마을은 과거 피조개와 대하 잡이로 유명했던 어촌이다. 마을 주민들은 대대로 맨손어업으로 생계를 이어오면서 갯벌에서 특별한 장비 없이 낫과 호미를 들고 한차례 훑기만 해도 바구니를 가득 채울 정도로 풍요로웠다.

하지만 5~6년 전부터 조개가 갑작스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이 어촌계장은 "죽어가는 갯벌과 바다를 살리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면서 "피조개, 바지락 등 채취금지 기간설정, 패류생산을 위한 황토와 종패 살포 등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마을 주민들은 갯벌 생태계 파괴 원인으로 인근 농공단지와 골프장을 지목한다. 안포리 인근에는 화양농공단지와 골프장, 챌린지파크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급기야 2006년에는 바지락 대량 폐사 사태가 발생하고 2021년에도 인근 바다에서 숭어 2만 마리가 집단 폐사하는 등 주변의 환경오염으로 각종 악재가 잇따랐다. 주민들은 5~6년 전부터 조업 활동을 포기한 상태다.

더이상 조개도 고기도 잡히지 않은 썩은 바다에서 주민들은 대신 요즘 감태를 수확하려 나간다. 최근 주민 20여 명이 바다에 나갔고, 오는 31일에도 조업을 앞두고 있다. 감태는 성인 1명이 보통 하루에 20㎏ 가량을 채취하는데, 이를 3일 간 말려서 판매한다. 말린 감태는 1㎏ 당 1만 원 선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기름값 등 각종 부대비용을 제하고 나면 사실상 적자다. 하지만 어업인 자격을 지키기 위해 적자가 날 것을 알면서도 바다에 나가고 있다.

이 계장은 "어업인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선 연간 60일 이상 어업 활동을 하거나 수산물 연간 판매액이 120만 원 이상이어야 한다"며 "안포리는 수십이 얕아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데다 인근 갯벌 생태계도 완전히 파괴돼 감태 캐기 외엔 더 이상 어업인 자격을 유지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주민들 중 상당수는 마을을 떠났다. 남은 주민들은 사실상 '부업'이었던 농사에 의지해 생계를 이어가는 처지다. 주민 A씨는 "한평생 바다로 먹고 살아온 주민들이 당장 다른 직업을 갖는다는 것이 참 막막한 상황"이라며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다를 버리지 못한 주민들이 어업인 자격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어촌계는 마을공동수익사업으로 갯벌 구역에 태양광 사업을 추진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수시 도시계획 조례 규정에 세대주 전체 동의라는 조건때문이다. 태양광 사업을 위해선 주민 100% 동의가 필요하지만, 지역 정치권 이해관계 등 금전적 이유로 주민 4명이 반대하면서 난황을 겪고 있다. 이 어촌계장은 "현재 바다는 갯벌이 죽어가면서 더 이상 공동체 운영이 힘들다"면서 "어민들이 원하는 사업(태양광)에 대해 여수시도 관심을 갖고, 주민간 공동체 활성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