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10명 중 9명 해외 노동자···"영암은 이미 다국적 마을"
<1> 왜 지금 이민인가 - 멈춰선 대한민국
이달 17일 찾은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은 말 그대로 ‘다국적 마을’이었다. 비전문취업비자(E-9) 등을 통해 이주 노동자가 대거 유입된 결과였다. 실제 삼호읍 사원아파트는 조선 업체에서 일하는 해외 노동자들로 다 채우다시피 하고 있다. 아파트 주위도 네팔·우즈베키스탄·캄보디아·베트남 등 각국 음식을 파는 아시아 음식점이 많았다.
인근에 자리한 ‘유일’ 조선소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 김 모 씨는 “공장에는 600명 정도가 일하는데 아직도 전체 인원의 20%가 모자란다”며 “인원으로 따지면 100명 정도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 노동자들을 더 불러올 수 있다면 당연히 더 쓸 생각”이라며 “고된 노동과 위험한 업무 환경 탓에 이주 노동자가 아니면 신규 현장직 채용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영암군에 따르면 삼호읍에 사는 외국인은 올해 7월 31일 기준 6862명으로, 전체 읍민 2만 1931명의 31.2%에 달한다. 등록되지 않은 외국인까지 포함하면 전체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조선소 등이 위치한 산업 현장의 모습은 다국적으로 바뀐 지 오래다. 유일 조선소의 경우 삼호읍 조선소 가운데서도 이주 노동자를 특히 많이 고용하는 곳이다. 용접, 도장, 파이프 조립, 족장, 의장 등 현장 작업을 하는 근로자 대부분이 이주 노동자다. 일부의 경우 숙련도가 떨어져 작업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해야 해 잔업이 늘어나는 애로 사항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주 노동자 없이는 조선소가 굴러가지 못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선박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던 외국인 여성 근로자 C 씨는 “10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며 “처음 일할 당시만 해도 9만 원이던 일당이 이제는 16만 원 정도로 올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기술력이나 경력은 거의 관리직에 준할 정도’라는 등 한마디씩 얹는 직원들의 칭찬에서도 C 씨가 얼마나 국내 산업 현장에 잘 녹아들었는지 보여준다.
같은 날 오후에 찾은 경기도 시흥시의 한 알루미늄 압출 업체 A사 공장도 알루미늄 교정·절단 작업을 하고 있는 5명 중 4명이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 회사의 이영선(가명) 전무는 “현장 근로자가 22명인데 이 중 외국인이 12명”이라고 소개했다. 중국인 2명을 제외하면 모두 캄보디아·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에서 왔다고 한다.
중소기업들이 외국인 근로자를 뽑는 이유는 젊은 한국인 인력이 이런 현장을 외면하고 있는 탓이다. 내국인 지원자라고 해봐야 50~60대가 대부분이라 이런 고령자를 고용해서는 회사의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 힘든 점은 이제 외국인을 고용해 인건비를 낮춘다는 얘기도 옛말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엔진 부품 제조 업체 B사의 최영주(가명) 대표는 “숙식비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외국인 직원 1인당 들이는 돈이 내국인보다 연 1000만 원은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매년 1월 근로계약서를 신고해야 하는데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고 숙식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계약서상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B사의 경우 가장 오래 일한 외국인 직원은 근속 연수가 15년이나 된다고 했다. 최 대표는 “외국인 직원 대부분 국내 전문대 등에서 1~2년간 기술 교육을 받아 한국어도 어느 정도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국인을 채용하기 어려워서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이라며 “이전에 특성화고 출신 한국인 인력을 써봤는데 부모가 ‘우리 애들이 험한 일을 한다’고 연락이 오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B사는 지난해 말부터 자동화 설비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내국인은 채용하기 어렵고 외국인의 인건비 역시 오르고 있어서다. 실제 B사 공장 한쪽 부지에서는 1653㎡(약 500평) 규모의 증축 작업이 한창이었다. 공장 증축비와 설비 도입 비용을 모두 합한 투자비는 85억 원으로 지난해 매출액(약 100억 원)의 80%가 넘는다. 인력난과 비용 부담이 국내 중소기업에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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