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R&D 카르텔과 숨은 복병
'초한지'에서 항우와 유방의 마지막 결전은 항우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면서 초나라의 패배로 끝났다. 항우는 전력을 믿고 앞만 보고 진격했는데, 왼쪽과 오른쪽에서 한나라군 복병이 밀려들며 전세가 급격히 불리해진 것이다. 한나라군은 포위된 초나라군을 향해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며 전투 의지를 상실시켰다.
항우는 눈앞에 보이는 적만 상대하다 숨겨진 적에게 당해 천하를 놓쳤다. 숨어 있는 적을 발견해내는 것이 드러난 적을 상대로 싸우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다. 정부가 최근 선포한 '연구개발(R&D) 카르텔'과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의 R&D 기반 구축 사업에서 드러난 공동활용 연구시설장비 실태가 대표적이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공동활용 연구시설장비 5개 중 1개는 최근 2년 연속 가동률이 0%로 전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부적절한 R&D 자금 집행으로 환수가 결정됐으나 환수되지 못한 R&D 예산도 마찬가지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지난해 결산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적절한 R&D 자금을 집행해 국고 반납을 통보했지만 아직 환수하지 못한 금액은 약 357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드러나지 않은 곳에 숨어 R&D 예산을 빼먹는 복병은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R&D 카르텔과 효율적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이런 복병을 찾아내고 비효율적인 구조를 개선하는 게 필수적이다. 전방위적 예산 삭감 이전에 어떤 곳에서 예산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지 찾아내고 잘못된 구조를 바꾸는 게 우선이다.
공동활용 연구시설장비는 실제 활용은 되지 않으면서 유지·보수비만 들고 있는 노후한 장비들을 매각·폐기하는 등 과감히 처분해야 한다. 그 대신 양금희 의원 지적대로 실수요가 있는 연구장비들을 매입해 현장 기업에 도움이 될 만한 곳에 예산을 활용해야 한다. R&D 미환수금 역시 환수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분석하고 발 빠르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보이지 않는 적'을 찾아내는 게 R&D 카르텔 혁파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신유경 정치부 softs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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