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신고 2배 늘었는데 현장 경찰 증원 아직"…신림동 '씁쓸한' 현주소

한병찬 기자 2023. 8. 2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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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경제도 사라지고 기동대 차출…업무 가중에 근무 기피도
2월16일 충북 충주시 중앙경찰학교 대운동장에서 열린 중앙경찰학교 311기 졸업식을 마친 신임 경찰관들이 동기생들과 모자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며 축하와 격려를 하고 있다. 2023.2.16/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지금 출동해야 해서요."

21일 오전 10시쯤 서울 관악구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이 순찰차에 급히 몸을 실으며 말했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지구대에 주차된 순찰차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른 지구대 앞에서 만난 한 경찰관은 "최근 흉악범죄가 잇따르며 신고 건수가 평소보다 2배는 늘었다"며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흉악 범죄가 잇따르며 시민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면서 경찰이 특별치안활동까지 선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같은 범죄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선 경찰 내부에선 범죄예방의 최전선인 지구대와 파출소 현장 인력 부족이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전국 순경 직급 결원 2만1742명…"현장 뛰어야 하는데"

서울 일선서의 A경찰관은 "정원은 예산을 책정하는 일인 만큼 굉장히 엄격하게 책정하는데도 정원과 현원의 차이가 있다"며 "결원이 많다는 것은 순찰차가 쉬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B경찰관도 "일선에서는 인력이 없으니 신고 출동에 제대로 대응이 안 돼 현장에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이다"며 "휴가도 마음 놓고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창 현장을 누벼야할 순경 부족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경찰청이 지난 20일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서울경찰청 소속 순경 정원 9535명 가운데 절반가량인 4626명이 결원 상태다.

비(非)간부로 분류되는 경장과 경사 계급도 대규모 결원으로 확인됐다. 서울경찰청 소속 경사는 정원 6640명보다 949명이 적었고, 경장은 7985명보다 2018명 부족했다.

전국 18개 시도경찰청에서 순경 직급은 모두 정원보다 턱없이 부족했다. 전국 순경 직급 결원 인원은 총 2만1742명에 달했다.

일선 경찰과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결원이 발생하는 이유로 △근속승진 △새로운 조직 및 부서 신설 △기동대 차출 △지구대와 파출소 업무 기피 등을 꼽았다.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지고 의무경찰제도가 폐지되며 기동대로 차출되는 등 결원이 생겼지만 충원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며 업무가 가중돼 지구대와 파출소 업무를 기피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전부처 공통으로 근속승진 제도를 운영중이고, 경찰도 같은 제도를 운영하면서 생기는 계급별 정현원 차이라고 설명한다. 근속으로 승진한 경감, 경위가 순찰인력으로 배치돼 현장경찰관 숫자가 부족하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로 올 상반기 인사에서도 관리업무를 수행하는 인원을 제외한 경감 8825명이 순찰팀원 등 현장인력으로 배치됐다. 이는 경감 현원 2만4906명의 35.4%에 달한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경찰 1명당 담당 인구는 2020년 기준 411명이다. 2015년 456명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같은 해 독일 305명, 프랑스 322명, 미국 427명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치다. 현장 경찰관을 늘려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서울경찰' 표기를 한 순찰차량이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 2022.5.2/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사건 터지면 전담팀 신설, 지구대·파출소서 차출"

이날 관악구에서 만난 일선 경찰관들은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인력 운용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선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C경찰관은 "사건이 발생하면 전담팀 혹은 부서를 만드는데 새로운 인원을 충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장 만만한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빼가는 형태"라며 "당장 하기 쉬운 방법이다 보니 진행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업무에 공백이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20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노련자) 경찰관 D씨도 "옛날에는 지구대 한 팀에 15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12~13명 정도"라며 "신고 확인 절차도 복잡해지는 등 업무량이 가중됐다"고 설명했다.

서울경찰청과 관악구청의 자료를 종합하면 서울 관악구 신림동(11개 행정동)에 위치한 1개 지구대·파출소가 담당하는 시민 수는 4만9016명이다. 이는 지난해 서울 전체의 1개 지구대·파출소 담당 시민 수인 3만8799명보다 29%이상 많다. 신림동에는 지구대 2개와 파출소 3개가 있다.

관악구청에 따르면 신림동은 관악구 전체 면적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1인 가구가 대다수고 유동 인구까지 많다. 면적이 넓고 치안 수요가 높은 만큼 업무량이 가중됐을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승진 제도부터 직급까지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일선 인력이 가장 대다수를 차지해야 하는데 직급이 너무 많고 어느 정도 계급만 높아져도 현장을 안 뛰게 되는 경향이 있다. 내근직도 너무 많다"며 "총 11개 계급 구조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입직 시험도 경위부터 시작하는 경찰이 많고 자동 승진 제도도 있어서 지금처럼 이상한 구조가 됐다"고 꼬집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국가의 존재 이유는 안보와 치안인데 그동안 치안에는 소홀했다"며 "시험 승진 제도가 바뀌며 공백이 발생했는데 현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국가가 관심을 두고 인력을 보충해 줘야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일 오후 성폭행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 야산 등산로 입구에 2인 이상 동반 산행을 권고하는 구청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3.8.20/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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