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종이로 구분해 버렸는데…'종이팩' 재활용률 14% 이유는?

이지현 기자 2023. 8. 2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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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팩과 멸균팩은 종이와 함께 분리배출하면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사진=이지현 기자〉


“우유팩이랑멸균팩은 잘 씻어서 펼친 뒤 말려 오시면 돼요. 그럼 저희가 재활용업체에 따로 보내는데, 우유팩은 두루마리 휴지로, 멸균팩은핸드타월로 재활용되는 거죠.”(제로 웨이스트 숍 직원 A 씨)

제로 웨이스트 숍에서 우유팩과 멸균팩을 따로 수거하는 이유를 묻자 돌아온 답입니다.

보통 가정에서는 우유팩과멸균팩을 '종이류'로 분리 배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버리면 종이팩은 재활용이 안 됩니다. 그냥 쓰레기로 폐기되죠.

지난 2021년 기준 종이팩(우유팩·멸균팩) 재활용률은 14%에 그쳤습니다.

종이팩은 종이가 아니다?



종이팩은 재활용하기 좋은 자원입니다. 음료를 담기 위해 최고급 펄프를 사용해 만들기 때문이죠. 우유팩은 두루마리 휴지, 멸균팩은핸드타월로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우유팩을 재활용하면 두루마리 휴지가 된다. 〈사진=이지현 기자〉
종이팩을 100% 재활용하면 1년에 20년생 나무 130만 그루를 심는 효과가 난다고 합니다. 원료 절감 효과도 320억원에 달하죠.

하지만 잘 재활용하려면 잘 버려야 합니다. 종이팩은 일반 종이류와 따로 버려야 하는데요.

종이를 재활용하려면 종이를 물에 풀어 녹이는 '해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우유팩은 종이 양면에 폴리에틸렌(PE) 코팅이 되어 있고, 멸균팩은 여기에 알루미늄까지 같이 코팅되어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해리 과정에서 일반 종이보다 분해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일반 종이와 섞이면 재활용이 잘 안 되는 이유죠.

또 우유팩과 멸균팩도 재활용 공정이 다르기 때문에 두 가지 종이팩 역시 분리해서 버려야 합니다.

다 쓴 종이팩은 물로 깨끗하게 씻은 뒤 잘라서 펼쳐주고, 잘 말려서 종이팩 수거함에 따로 버리면 됩니다.

제로웨이스트 숍에서 별도 수거하고 있는 우유팩들. 〈사진=이지현 기자〉

'집 앞' 분리 배출 어려운 종이팩



문제는 종이팩 분리 배출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깨끗하게 씻어서 말린 종이팩은 일부 제로 웨이스트 숍이나 생활협동조합에서 수거하고 있습니다.

또 일부 지자체에서는 도서관 등 공공시설 근처에 종이팩 전용 수거함을 두기도 합니다. 주민센터는 주민들이 종이팩을 따로 모아 가져오면 두루마리 휴지로 교환해주는 사업도 하고 있죠.

하지만 일부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대부분 아파트나 공동주택에서 분리수거를 할 때 플라스틱, 캔, 종이류를 분리해 버리긴 하지만 '종이팩'을 따로 분리 수거하는 곳은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또 종이팩을 모아뒀다가 주민센터든 제로 웨이스트 숍이든 직접 방문해서 버려야 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입니다. 플라스틱, 캔, 종이류를 분리 배출하는 것처럼 집 앞에 쉽게 내놓을 수 없는 겁니다.

제로웨이스트 숍에서 별도 수거하고 있는 우유팩들. 〈사진=이지현 기자〉
환경부는 지난 2021년 말 '종이팩 분리배출 시범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남양주·부천·화성·세종시의 66개 공동주택 단지에서 일반 우유팩과멸균팩을 따로 분리 배출하는 전용 수거함을 설치했죠.

하지만 시범사업에 그쳤습니다. 당시 환경부는 “시범사업 성과를 토대로 2022년 하반기부터 전국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더는 진전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종이팩 수거함 의무 설치 등 분리배출 체계는 없는 상황입니다.

“멸균팩 사용 늘었는데…재활용은 (기존 종이팩보다) 더 안 돼”



멸균팩 사용이 늘어난 것도 종이팩 재활용률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늘면서 상온보관이 가능한 멸균팩 출고량도 크게 늘었습니다. 2014년 1.7만 톤이었던 멸균팩 출고량은 2020년 2.7만 톤으로 늘었고, 2030년 4.7만 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부분의 멸균팩은 황색 펄프를 사용합니다. 재활용해도 흰색 휴지가 되긴 어려운 거죠.

제지업계에서는 멸균팩의 경우 핸드타월 등 일부 용도를 제외하고는 재활용이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황색 펄프를 사용하는 멸균팩은 핸드타올로 재활용할 수 있다. 〈사진=이지현 기자〉

또 멸균팩을 전문으로 다루는 재활용 업체도 많지 않습니다.

박정음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장은 “멸균팩은 종이팩과 별도의 해리 과정을 거쳐야 재활용이 가능하다”면서 “그런데 지금까지는 일반 우유팩을 중심으로 종이팩 재활용이 진행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멸균팩은 수거 자체도 잘 안 되고, 멸균팩만 전문으로 재활용하는 업체도 많지 않다 보니 재활용률이 계속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의무재활용률 22.8%인데 14%에 그친 재활용률



종이팩은 EPR제도(생산자책임재활용제) 대상입니다. 재활용이 가능한 폐기물의 일정량 이상을 재활용하도록 생산자에게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죠.

종이팩 재활용 의무율은 22.8%입니다. 그런데 2021년 기준 재활용률은 14%에 불과합니다. 지난 2013년 재활용률은 35%까지 올랐었지만 2014년부터는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종이팩 재활용을 활성화하려면 쉬운 분리 배출이 가능해야 합니다. 또 재활용업체들이 종이팩을 선별해서 잘 재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드는 일도 필요하죠.

박정음 서울환경연합 팀장은 “아파트나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종이팩 수거함을 배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그게 어렵다면 종이팩이 쓰레기 선별장에서 잘 선별될 수 있도록 정부가 관리·감독하고 지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재활용 업체들이 종이팩 재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유인을 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종이팩을 재활용해 만든 휴지를 공공기관이 우선 구매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만들면 업체들도 참여할 수 있지 않겠냐”고 덧붙였습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종이팩 분리배출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운영하고 있다”면서 “환경부에서도 국민들이 더 쉽게 분리배출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올해 안에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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