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되는 입바른 소리"…'反ESG' 바람부는 월가

윤원섭 특파원(yws@mk.co.kr) 2023. 8. 2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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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논란에 수익률도 저조
ESG기업 투자회피 사례 늘어
블랙록·S&P 등 거리두기나서
오직 '수익'에만 중점둔 펀드
올해 27개 24억달러로 급증

"펀드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ESG(환경·책임·투명경영)를 버려라."

최근 월가에 반(反)ESG 펀드가 등장하고 있다. ESG가 한때 금융투자 업계의 새로운 기준으로 부상했지만, 최근 정치적 논란과 수익률 문제가 불거지면서 관련 펀드까지 조성된 것이다. 특히 월가에서 ESG를 강하게 추진했던 기업마저 발을 빼고 있어 ESG 위상이 갈수록 위축되는 모양새다.

반ESG 펀드는 ESG 펀드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환경·책임·투명경영 개선을 주요 투자 기준으로 삼지 않고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투자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는 개념이다. 일부 극단적인 반ESG 펀드의 경우 환경·책임·투명경영 개선을 적극 추구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회피하기도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금융시장 조사업체 모닝스타 자료를 인용해 올해 2분기 말 기준 27개 펀드가 반ESG 펀드로 분류된다고 보도했다. 이들 펀드의 운영자산 규모는 총 24억2000만달러(약 3조2400억원)다. 이른바 ESG 펀드로 분류되는 상품의 운영자산 규모(3134억달러)에 비하면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새로운 트렌드임은 분명하다고 WSJ는 전했다.

반ESG 펀드가 등장한 원인은 무엇보다도 수익률에 있다. 환경·책임·투명경영을 중심으로 투자하면 그렇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더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반ESG 펀드를 운용하는 스트라이브 자산운용사의 매트 콜 최고경영자(CEO)는 "영리기업의 목적은 주주가치 극대화"라며 "투자 결정에 다른 외부 요인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투자 결정에 (환경 등) 다른 제약 요인이 있다면 이는 곧 수익률 하락이라는 비용을 치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ESG 펀드 출현에는 정치적 배경도 있다.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ESG 정책을 주로 펼치다 보니 공화당 계열에서 반ESG 펀드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공화당이 집권한 주를 중심으로 37개주에서 ESG 투자를 제한하는 법안과 결의안이 최소 165건이나 발의됐다. 대표적인 반ESG 펀드는 지난해 9월 출범한 '신이 미국을 축복하길(God Bless America) ETF(YALL)'다. 해당 펀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신고한 보고서에서 "기사, 웹사이트, 신문 광고 등을 분석해 진보 기업이 아니라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반ESG 펀드가 등장은 했지만 기존 다른 펀드와 차별화에 취약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투자 결정 요인으로 환경·책임·투명경영을 배제하더라도 이미 비슷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펀드가 많기 때문이다. 얼리사 스탠키위츠 모닝스타 부소장은 "투자자 입장에서 반ESG 펀드만의 차이점을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ESG 바람은 월가에서 새로운 게 아니다. ESG를 주도했던 기업이 정치적 논란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ESG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다. 래리 핑크 블랙록 CEO는 2018년부터 투자 기업 CEO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에 매번 ESG를 강조해 왔지만 올해 ESG 단어를 삭제했고, 최근에는 더 이상 ESG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 공화당 내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히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플로리다 퇴직연금의 ESG 요소 반영 금지 결의안을 채택한 데 이어 ESG 투자에 적극적인 블랙록에 위탁해 운용하던 자산 20억달러를 회수한 바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글로벌레이팅스는 이달 초 ESG에 대한 자사의 가치를 유지하되 ESG 등급을 매기지 않겠다고 전격 발표하기도 했다.

유엔환경계획 주도로 설립된 '넷제로 보험 연합'은 회원사의 잇단 탈퇴 선언으로 지난달 기준 회원사가 기존 30개에서 12개로 줄었다. 미국 23개주 법무장관이 연합 회원사에 고객사의 탄소 감축을 집단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반독점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경고한 직후였다.

[뉴욕 윤원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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