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인공지능을 연구실 밖으로 꺼내는 건 … 결국 기업가의 몫
◆ 시험대 오른 토종 AI ◆
한국의 미래를 여는 힘은 역동성이다. 기술, 문화, 산업 같은 객체에 방향을 정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어 살아 뛰어 달리게 하는 힘이다. 역동성이 떨어진 기술은 곰팡이가 슬고 거미줄이 널려 퇴락한 연구실에 나뒹구는 의자처럼 처량하게 글자와 논쟁에 갇혀버린다. 연구실의 기술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힘이 바로 기업가정신이다. 기업가정신은 굳이 기술일 필요는 없다. '할부판매'는 미래의 소득으로 현재의 소비를 가능하게 만드는 100년에 한 번 나올 만한 혁신적인 생각이고 경제를 더 성장하게 만든 힘이 되었다고 현대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말했다. 기업가정신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역동하게 만들고 앞으로 전진하게 만든다.
그 선봉에 창업가들이 있다. 2010년 모 대학에 창업 강의를 갔다가 만난 23세 4학년 공대 여학생의 생각에서 이런 역동성을 발견했다. 거듭 투자하며 후원했더니 10년 만에 수천억 원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역동성을 만드는 기업가정신은 나이와 경험과 상관관계가 없다. 오히려 '관심'의 깊이와 상관관계가 깊다. 이웃과 사회의 문제에 '왜(why)'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심의 눈으로 보는 것, 단순하게 보이는 이론 혹은 기술을 관념으로만 보지 않고 사람에게 어떻게 이롭게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그 문제에 풍덩 뛰어들어 헤엄치는 실행이 역동성을 만든다. 나이와 경험은 종종 역동성을 방해한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고, 후원하고 그들이 만드는 역동성에 박수를 치며 격려해야 한다.
'왜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나(Why Software is Eating The World?)'라는 칼럼이 2011년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렸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에어비앤비, 스카이프 등 세계적 기업에 투자한 미국 최상의 벤처투자회사 앤드리슨호로위츠의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이 썼다. 그의 말처럼 21세기 들어 세계 최고의 기업 자리를 대부분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정보기술(IT) 회사가 차지했다. 지금 시대의 역동성은 바로 소프트웨어, IT라는 엔진을 달고 있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역사적으로 세 번의 소프트웨어의 큰 파도 중심을 탈 기회를 얻었다. 첫 번째 파도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PC 통신 1등 서비스 천리안을 연구하는 연구원으로 일하며 경험했다. 인터넷과 'WWW'의 등장으로 두 번째 소프트웨어 파도가 왔을 때 보안과 전자지불 분야에서 두 회사(이니텍·이니시스)를 창업해 각각 시장 1등을 달성하고 두 회사 모두 코스닥에 상장하며 창업가로서 인터넷과 WWW의 파도를 탔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 프라이머를 설립했을 때 바로 모바일과 소셜 서비스로 세 번째 소프트웨어의 파도가 오고 있었다. 14년간 투자자로서 300명 이상 후배 창업가에게 투자와 멘토링으로 도전할 기회를 열며 같이 세 번째 파도를 서핑하고 있다.
이제 네 번째 소프트웨어 파도가 오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AI) 혁명이다. 생성AI(GenAI)가 AI의 특이점을 넘어서게 만들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세상을 단지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시 탄생시킬 것이다. 생성AI로 촉발된 AI 혁신은 폰 노이만 기계를 원형으로 한 컴퓨터의 근간을 완전히 바꾼 새로운 컴퓨터를 등장시킨 특이점으로 봐야 한다. 컴퓨터는 원래 너무 멍청해서 사람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윈도, 텍스트, 이미지 같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도구를 사용했다.
이제 소프트웨어, AI가 똑똑해져서 사람의 글과 말을 알아듣고 스스로 판단(제한된 학습 범위에서 판단하겠지만 이것만으로도 높은 수준의 사람과 유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해서 결과물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훨씬 더 가깝고 다루기 쉬운 새로운 컴퓨터가 등장한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우는 것처럼 보인 것은 사실 AI가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놓을 전조에 불과했다는 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AI 혁명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시의 한 구절처럼 이 기술에 의미와 생명력을 불어넣고 역동하게 만드는 창업가에게 기회의 창을 열어줘야 한다. 선수는 부족한데 심판, 훈수꾼이 넘치면 경기는 재미가 없어진다. 선수가 넘쳐야 개성 있는 경기, 이변을 연출하는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경기가 재미있어지고 역동성이 넘친다. 실패, 시행착오와 함께 혁신과 성공이 달린다. 실패와 시행착오를 두려워하거나 그것에 너무 좌우되지 말자.
선수들을 운동장으로 불러모아야 한다. 코스닥은 AI 기술특례 상장 트랙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벤처캐피털에 AI 전문 펀드를 더 많이 만들고 투자를 촉진하도록 해야 한다. 세제 혜택을 주어서라도 기업의 AI 변신을 유도해야 한다. 살아남는 데 그치지 말고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밀어붙어야 한다.
다양한 관점의 평가가 있긴 하지만 박정희 정부 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다시 'AI 혁신 5개년' 계획으로 부활시켜야 할 수도 있을 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거대한 파도가 오고 있다.
파도에 삼켜질 것인가? 파도를 탈 것인가?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5개 회사를 세운 'N차(연쇄) 창업가'다. 특히 창업 초기 회사를 대상으로 한 육성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창업가 사이에서는 '한국 스타트업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1990년대 후반 국내 최초 결제 시스템 이니시스와 보안회사 이니텍을 설립해 회사를 키워냈다. 특히 그는 국내에선 아직 전자상거래가 활발하지 않던 1997년 전자지불 시스템을 개발해 시장을 키웠다. 두 회사를 모두 코스닥에 상장시켰고, 2008년 3300억원에 매각했다. 당시 국내 스타트업 투자회수금 중 최고 금액이었다. '엑시트'에 성공한 후 권 대표는 후배 창업가 양성에 나섰다. 그가 2010년 설립한 프라이머는 국내 최초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육성기관)다. 초기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경영까지 도와주는 회사다. 스타일쉐어, 아이디어스, 세탁특공대, 호갱노노 등 200곳 넘는 스타트업이 그의 손을 거쳐 빛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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