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10세 영재의 과학고 자퇴
만 10세에 서울과학고에 입학했던 백강현군이 1년도 안 돼 학교를 그만뒀다. 백군은 4년 전 초등학교에 들어가 지난해 중학교 과정을 마친 뒤 올해 서울과학고에 조기 입학했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보였던 그가 지난 18일 돌연 자퇴 사실을 알렸다. 백군은 유튜브 채널에 “문제를 푸는 기계가 돼가는 자신을 보게 됐다”며 같은 학급 형과 누나들에게 이별의 아쉬움을 전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백군의 아버지가 “어린 강현이 감당하기 힘든 놀림과 학교폭력을 겪었다”고 주장해 파장이 일고 있다. 팀 과제를 할 때 면박을 주거나 ‘하루 종일 말 걸지 않기’ 등으로 백군이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는 것이다. 백군 아버지는 아들이 자퇴 영상을 공개한 뒤 같은 학교 학부모로부터 받았다는 e메일도 공개했다. ‘영상을 내리지 않으면 아이가 학교에서 꼴찌를 하고 전 과목에서 한 문제도 못 풀었다는 걸 알리겠다’는 내용이다. 그 학부모는 백군이 사배자(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으로 합격했고,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킬 것이라고도 했다.
아직 진상이 분명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어린 백군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가장 교육적이고 서로를 존중해야 할 학교 공간에서 반교육적이고 반인권적인 일이 벌어졌다. 백군은 과고 입학 때 27㎏이었던 체중이 22㎏까지 빠졌다고 한다. 백군 자퇴도 그렇지만 장애인 통합교육 반대론 등 최근 학교 현장에서 불거진 일련의 사건들은 공교육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공재인 학교와 교사를 사유화하고, 자기 자녀만 귀하게 여기는 일부 학부모들의 이기심이 극에 달해 있다.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에 몰릴 정도로 갑질을 하고, 교실에서 장애인과 약자를 내치는 일을 최소한의 가책도 없이 자행하고 있다. 한국 학교 현장의 퇴행이 언제나 멈추게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안타깝지만 백군 결정을 지지한다. 백군을 보면 ‘아인슈타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수학 실력 부족으로 퇴학을 당했을 것’이라는 말이 농담 같지 않다. 백군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행복했으면 한다. 30년 뒤 사회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을 ‘천재소년 백강현’의 후일담을 기대한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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