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뉴스타파 X 참여연대,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소송' 1심 승소
뉴스타파와 참여연대가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이하 대통령실)을 상대로 제기한 '5급 이상 직원 명단 공개소송'에서 1심 승소했다. 대통령실은 '직원 명단이 공개되면 국가 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 '청탁과 로비에 노출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실이 구청·주민센터도 관리·공개하고 있는 '직원별 업무 분장표'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재판 과정에서 확인됐다.
뉴스타파,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소송' 1심 승소
서울행정법원 제5부(부장판사 김순열)는 지난 17일 뉴스타파와 참여연대가 공동 제기한 '대통령실 직원 명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8월 뉴스타파는 대통령실에 '5급 이상 직원 288명의 이름·소속부서·직위·직급·소관 세부업무'와 '대통령실의 세부 조직도'를 공개하라고 정보공개 청구했다.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특혜 채용'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 청구'를 거부했고, 같은 해 10월 뉴스타파는 참여연대와 함께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제기 당시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6촌 친인척을 행정관으로 채용하고, 윤 대통령 지인의 아들 2명도 직원으로 뽑아 논란이 됐었다. 김건희 여사가 운영한 코바나컨텐츠 직원 2명이 총무비서관 관저팀에 들어간 사실도 드러났다.
'직원 명단 비공개해야 한다'는 대통령실 주장 대부분 '기각'
정보 비공개 처분과 소송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내세운 주장은 크게 네 가지다. ①대통령실 직원 중에는 국가기밀을 아는 사람도 많아 직원 명단이 공개될 경우 기밀이 유출될 수 있고, 로비나 청탁·협박의 위험도 커져 공정한 업무 수행에 지장이 있다. ②대통령실 직원들의 이름은 개인정보여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 ③대통령실 직원 명단은 비공개 대통령기록물이다. ④대통령실 직원 소관 업무에 대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중 법원은 앞선 3개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먼저 ①번 주장에 대해선 "대통령실이 적정한 인사 또는 감찰 등을 통해 부당한 영향력을 방지하고, 직원 개인의 준법의지와 양심에 맡길 문제"라며 "직원 명단을 아예 비공개함으로써 대응할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즉 대통령실이 자체적인 공직기강 제도를 통해 직원의 기밀 유출이나 로비 등을 막아야지, 왜 국민 알권리를 침해할 생각부터 하느냐는 것이다.
법원은 "행정안전부, 법무부 등 상당수의 정보조직 뿐만 아니라 감사원, 국세청 등 이른바 사정기관도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해 홈페이지에 소속 직원의 성명, 직위, 직급 등을 공개하는데, 대통령실 소속 직원을 다르게 취급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했다.
법원 "직원 명단 공개, 국정운영 투명성과 공익에 크게 이바지"
법원은 대통령실의 ②번 주장, '대통령실 직원의 이름은 개인정보'라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생활 침해 우려가 없고, 오히려 직원 명단이 공개됨으로써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정보공개법 9조 1항 6호에서는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의 성명·직위를 공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략).. 소속 공무원의 성명만을 공개하는 것은 해당 공무원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대통령실 소속 직원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그 인적 구성의 적정성, 객관성 및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에 의한 기본적인 감시와 통제를 가능하게 해 공익에 크게 이바지한다.
- 서울행정법원 2022구합81261 판결문 / 2023.8.17
재판대 올라보지도 못한 '직원 명단 = 비공개 대통령기록물' 주장
법원은 대통령실의 ③번 주장, '대통령실 직원 명단은 비공개 대통령기록물' 주장도 기각했다. 대통령실은 이 주장을 끝까지 밀어 붙였지만, 법원은 이 문제를 아예 판단 대상에 넣지도 않았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8월 정보 비공개 처분을 내릴 당시 '대통령실 직원 명단이 비공개 대통령기록물'인 이유를 언급하지 않았었다. 정보공개법(비공개 대상 정보) 9조 1항의 5호(공개될 경우 공정한 업무 수행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와 6호(개인정보로서 공개될 경우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등 두 가지 이유만 들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소송이 시작되자 갑자기 '대통령 직원 명단은 비공개 대통령 기록물'이라는 주장을 새로 꺼내 들었다. '다른 법률에서 비밀이나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한 정보는 비공개할 수 있다'는 정보공개법 9조 1항 1호를 들고 나왔다.
기본적으로 행정소송은 행정기관의 행정 처분 내용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번 소송도 대통령실이 정보공개법 9조 1항 5·6호를 근거로 비공개 처분을 내린 게 적법한지를 따져 묻는 절차였다.
소송 도중 새로운 '비공개 처분 사유'를 추가하려면 엄격한 조건을 따라야 한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새로운 처분 사유'와 '기존 처분 사유'가 동일한 사실관계를 보여야 한다. 다시 말해, 대통령실이 처음 비공개 처분 사유로 썼던 정보공개법 9조 1항 5·6호와 '직원 명단은 비공개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주장 사이에 사실관계가 동일해야 한다. 만약 동일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법원은 '직원 명단이 비공개 대통령기록물'이라는 대통령실의 주장 자체를 판결 대상에 넣을 수 없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대통령지정기록물의 경우, 대통령의 지정 행위를 별도로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비공개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추가 행위가 요구되고 있다. 그러므로 피고(대통령실)가 추가한 처분 사유는 정보공개법 9조 1항 5·6호의 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봐야 한다"며 새로운 처분 사유 추가를 불허했다.
법원은 또 "한편 이 사건 정보가 대통령기록물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비공개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됐다거나,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증거도 없다"고 했다.
결국 '직원 명단은 비공개 대통령기록물'이라는 대통령실의 주장은 재판대에 오르지도 못하고 폐기 처분됐다.
구청·동사무소도 있는 '직원 업무 분장표' 없다는 대통령실
뉴스타파는 이번 소송에서 대통령실 직원 명단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소관 세부 업무'가 무엇인지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는 알 길이 없게 됐다. 대통령실이 "직원들의 세부 업무가 기재된 자료는 없다"고 주장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소송 과정에서 직원별 소관 세부 업무가 "대통령실이 관리하는 인사정보시스템상 보유·관리하고 있지 않은 정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원에 비공개 열람·심사용으로 일부 행정관들의 개인 인사 기록을 출력해 제출했는데, 여기에도 행정관들의 소관 세부 업무는 적혀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행정관들의 경우 개인마다 국가기밀, 보안사항 등을 취급하기 때문에 각 수석실, 비서관실 등에서도 업무 분장표 등 소관 세부 업무가 기재된 문서를 생산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구청·동사무소 홈페이지만 가도 있는 업무 분장표가 대통령실에는 전혀 없다는 주장이었다.
법원은 "대통령실이 직원의 소관 세부 업무에 관한 정보 또는 이를 검색·편집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갖고 있을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뉴스타파가 요구한 대통령실 직원들의 '소관 세부 업무' 공개 요구는 각하 처리했다.
법원 판결에 윤석열 대통령실 '묵묵부답'
뉴스타파와 별개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정보공개센터)도 대통령실을 상대로 직원 명단 공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정보 공개 청구 대상은 대통령실 전체 직원 431명의 명단(이름·소속부서·직급·직위·담당업무 등)이다. 공개하라는 직원의 규모만 다를 뿐 쟁점은 뉴스타파와 동일하다.
뉴스타파의 이번 승소는 정보공개센터가 진행중인 소송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정보공개센터가 제기한 소송의 선고기일은 오는 9월 22일이다.
뉴스타파는 대통령실에 연락해 이번 소송 결과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항소할 생각인지 등을 물었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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