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과학도 속도전 … 늦으면 가치 사라져"
"외국보다 심의과정 늦다"
"한국이 '빨리빨리' 문화가 있다고 하지만, 멀리서 보면 더 오래 걸립니다. 틈새를 메워가는 작업을 통해 기초과학에서도 더 '속도'를 내야 합니다."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사진)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제품은 남들보다 6개월 늦게 출시해도 시장에서 팔 수 있지만, 기초과학은 누군가가 먼저 발표하면 아예 가치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며 속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 원장은 "일례로 실험실을 세팅하는 과정에서도 실험 장비를 심의하고 구매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외국에 비해 6개월에서 1년 더 소요된다. 뒤집어 말하면 그 기간만큼 연구에 뒤처진다는 뜻"이라며 "장비 구매 시스템 등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개선을 이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신뢰'다.
사실 노 원장에게 이번 독일행은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는 괴팅겐과 뮌헨에서 막스플랑크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연구 기관을 방문해 이들의 시스템을 살폈다. 특히 그는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지속하면서 기술 사업화 등으로 수익을 낼 때 기관·개인 간 이해 충돌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가 궁금했다고 전했다. 노 원장은 "독일 연구소는 오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연구자 창업과 기술이전에 대한 경험이 많고, 이를 장려하는 문화가 있다"며 "따라서 이해 충돌 부분에서도 특별한 장치를 마련해놨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그 장치가 무엇인지 찾을 수가 없더라"고 말했다. 그는 "직접 독일에 와서 연구자, 행정 실무자와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알게 된 것은 이들이 별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연구자가 개인의 사익을 위해 공적인 리소스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의 세계적 기초과학 연구기관 막스플랑크에서는 '과학은 과학자에게 맡긴다'는 말이 있더라"며 "과학자를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문화, 신뢰하는 문화가 연구와 사업화 모든 부분에서 적용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자에게 연구 주제부터 예산, 장비 구입, 사업화 여부까지 모든 부문에 서 자율성을 주되 책임도 연구자가 지도록 하는 독일 연구소 시스템의 저변에는 신뢰라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노 원장은 "과학기술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청렴도가 이미 10년 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올라갔기 때문에 과감하게 우리도 (막스플랑크 방식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IBS가 12년이 됐고, 기초과학 분야 중에서도 바이오 분야는 일부 사업화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를 사업화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정교하게 다듬어가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노 원장은 아직 기초과학 분야의 사업화를 적극 독려할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부를 창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업을 장려할 필요는 아직 없을 것 같다"며 "하지만 자신의 호기심으로 시작한 기초연구가 제품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때 이를 스핀오프(분사)해 창업할 수 있게끔 적극 도와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뮌헨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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