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공감이 발휘하는 힘
오래전, 예산 배정 문제로 한 사업부 대표와 날이 선 논의를 벌일 때다. 사업부와 지원 부서 간 협업 관계와 각자의 역할, 조직 내 역학 구도 등으로 이미 갈등이 있는 상태였다. 나로서도 '우리 팀 월급을 자기네가 주기라도 하나' 싶은 마음이었다.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말을 불편한 마음으로 듣는데 어느 대목에서 순간 '아, 이 사람은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이해가 되었다. 상대편의 입장에 서서 공감이 되니 내 의견도 그 눈높이에 맞춰 편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1시간쯤 지나 미팅을 마무리하려는 때에 "어려운 얘기를 잘 들어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듣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물론 예산 배정 건은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사전에 따르면 '공감(共感)'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라고 정의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상원의원 시절인 2006년 노스웨스턴대 졸업식에서 '공감을 키워라(Cultivate Empathy)'는 제목의 연설을 할 때다. 그는 힘 있는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자기 욕심만을 좇는 경향이 있다며, 처지가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사회적 약자에게 공감하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했다.
공감이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인간관계를 풍요롭고 훈훈하게 한다는 점에는 누구나 쉽게 수긍할 것이다. 그런 공감이 업무 능력이나 성과, 나아가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도 있겠다.
일터에서 우린 남들과 협력하고 협상하며 나와 조직이 원하는 걸 얻어내고 목표를 이뤄가야 한다. 세상엔 나와 비슷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어서 가치관이나 입장이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과 부딪혀야 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공감은 내가 함께하기에 편하지 않고 어려운 상대가 그 대상이 됐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공감의 결실이 더 증폭되는 것도 바로 그 때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전 세계 기업의 공감지수를 조사해서 발표한 적도 있는데, 기업 경쟁력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조직에서 성공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더가 된 뒤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캐나다의 두 대학교가 공동으로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회사에서 높이 승진한 사람일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애써 공감하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서 공감해주는 자리에 있어서일까.
공감 능력은 타고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훈련으로 길러질 수 있다고 본다. 일과 관련해서는 남의 입장이나 생각에 감정적으로만 공감하기보다는 냉철한 판단력과 뛰어난 자기 통제가 함께해야 할 것 같다. 섣부른 공감 시도는 독이 될 수도 있고 내 편에게만 공감하는 '동조'에 가까운 행위는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사회 초년병 시절에 "일을 하라니까 공감을 하고 오면 어쩌냐"고 지적받았던 일이 떠오른다. 그렇게 타박받았던 공감이 오늘날 내가 하는 일에 아주 필요한 능력이 될 줄이야.
[황성혜 한국존슨앤드존슨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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