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만큼 아름다운 예술책
내달 10일까지 아티스트북展
책장을 넘길수록 뾰족하게 솟은 '코'가 드러난다. 2020년 타계한 미국을 대표하는 개념미술가이자 미술 교육자였던 존 발데사리는 누구보다 아티스트 북 출판물에 열정을 쏟은 작가였다. 그는 1970년대 초부터 판화를 찍기 시작했으며,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과 함께 '더 이상 따분한 작품을 벽에 걸지 않겠다'는 슬로건 아래 출판물을 기획·간행해 역사에 남았다. 그가 작고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아티스트 북 'Nose Peak'가 한국에서 전시된다. 세계적 기관 및 메가 컬렉터에게 소장돼 12개의 에디션 중 하나만 남은 작품이다.
미술 작품만큼 아름다운 책을 만나는 전시가 찾아온다. 아티스트 북의 다채로운 세계를 소개하는 전시 'Books as Art as'가 부산 그랜드조선 호텔의 OKNP에서 9월 10일까지 열린다. 프랑스의 전시기획자 크리스토프 부탱과 멜라니 스카칠리아가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아카이브 섹션을 포함한 총 5개의 섹션으로 구분되며, 전시 작품 및 예술 출판을 이해하기 위한 영상도 함께 상영된다. 서구의 대표적 아티스트북 출판사인 스리스타북스, 프린티드매터, 웨스트레이히 와그너 등이 참여한다.
20세기 초부터 다다, 초현실주의, 구성주의, 구조주의, 플럭서스 등 전위적 예술가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대신에 '책'과 '출판'을 통해 작품을 제작했다. 유토피아적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에게 계층 간 불평등을 깨뜨리는 매체로 책이 가장 좋은 형태였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북'이라 불린 이 실험은 1960년대에 이르러 개념미술가, 설치미술가, 대지미술가에 의해 보다 더 다양하게 탐구되기 시작했다. 조지프 코수스, 존 케이지, 존 발데사리, 크리스토 등은 다양한 실험을 하며 새로운 책의 형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전시에는 존 발데사리를 비롯해 마우라치오 카텔란, 소피 칼 등 세계 최고의 예술가가 참여한다. 카텔란의 'Three-Volume Set'는 사진이 아닌 그림(회화)으로 들어가 있으며, 글씨 역시 타이핑이 아닌 손글씨로 작성됐고, 책도 제본돼 있는 방식이 아니라 한 장 한 장 분리되는 방식이어서 작품과 책의 경계를 흐린다. 100개의 에디션에도 불구하고 몇 점 남아 있지 않을 만큼 귀해졌다. 최근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 사이먼 후지와라의 'Fabulous Beasts' 시리즈도 전시된다. 베를린에서 생산된 모피 코트 한 벌로만 만들어졌다.
국내 작가로는 조각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온 권오상의 'Small Sculpture'가 그 원작인 조각 작품과 함께 전시되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엄유정의 'FEUILLES'가 원화들과 함께 전시된다. 매일매일 일기처럼 나무의 색을 기록해온 박형진 작가의 특별한 책 '까마귀와 까치'도 원화들과 함께 전시되며, 김선우의 경우는 오한기(소설가), 오재형(영화감독)과 함께 작업한 책 'ASTROLABE_FROM AM 5 TO PM 5'를 들고 새로 제작한 드로잉 원화들로 참여한다.
이번 전시에는 부산 대표 독립서점인 '샵메이커즈'와 서울 대표 독립서점인 '더북소사이어티'가 손잡고 미술 관련 책을 큐레이션한 편집숍을 선보인다. 세스 프라이스의 소설을 비롯해 유럽 대표 출판사인 Spector Books, Roma Publication의 책 등이 선보이지만, 더불어 부산 작가들이 제작한 아티스트 북부터 젊은 디자이너, 작가들이 만든 아기자기한 소품까지 함께 해 팝업숍을 꾸민다. 관람료 3000원.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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