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락내리락 수직 무대로 펼친 사랑
기발한 3층 리프트 장치로
극장 공간 잘 활용해 극찬
주역들의 절창도 관객 몰입
여운 없는 전개는 아쉬워
냉혹하던 공주가 갑옷처럼 입고 있던 화려한 로브를 벗어내린다. 왕자 칼라프의 용감한 구애와 하녀 류의 숭고한 희생 앞에서 비로소 사랑의 힘을 깨달은 그녀가 스스로 내린 선택이다. 그때 비로소 환희의 찬가가 울려퍼진다. "아버지, 이제 이방인(칼라프)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그 이름은 사랑입니다!" 지난 17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 기획공연 '투란도트'는 4년 전 초연 이후에도 여전히 세련된 연출과 소품들로 오페라의 매력을 알기 쉽게 전했다. 절색의 미모를 지녔으나 세 번의 수수께끼를 내 청혼자들을 가차 없이 죽이는 중국 공주 투란도트의 모습은 화려하게 반짝이는 분홍빛 로브로 특히 존재감을 빛낸다. 그래서 결말에 로브를 벗는 연출은 더욱 극적이다.
투란도트는 이탈리아의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의 유작으로, 현대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작품이다. 특히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원제 'Nessn Dorma')는 오페라를 접한 적 없는 이들에게도 익숙한 곡이다. 지난 15~20일 열린 6회차 공연은 일찌감치 전석 매진됐다.
작은 공연장을 작지 않게 쓴 기발한 연출은 초연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돋보였다. CJ토월극장은 1000석 규모에 불과해 중국 황실을 배경으로 하는 투란도트 같은 대작을 품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해답은 수직으로 움직이는 리프트 무대였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3개의 무대가 다층적인 깊이감을 선사하며 우려를 불식했다.
이 무대 장치는 금빛 수평 판자가 천장에 매달린 형태인데, 천장 가까이 높이 올리면 황금 지붕처럼 보였고, 중간 부분에 수평으로 이으면 2층 무대로 활용됐다. 중국 황제와 귀족들의 주무대로 활용해 평민은 닿을 수 없는 황제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공연장에서 만난 표현진 연출은 "작은 규모의 무대지만 관객이 작게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민했다"고 전했다. 오페라 전용 극장이 아닌 터라 객석에 따라 성악가들의 화음이 뭉개져서 들리는 등 음향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17일 공연에선 특히 비운의 캐릭터 '류' 역할의 소프라노 김신혜가 특유의 부드러운 음색과 애절한 연기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칼라프의 노비이지만 그를 짝사랑하는 마음,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려는 투란도트의 고문을 당하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슬픔 등으로 몰입감을 선사했다.
투란도트를 맡은 소프라노 이승은은 작은 손짓과 눈빛 연기에도 카리스마를 담아 공주의 위엄을 표현했다. 칼라프 역에 처음 데뷔한 테너 이범주도 사랑과 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을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연기했다. 특히 3막 첫 곡 '네순 도르마'를 통해 여지 없이 절절한 전율을 전달했다. 관객석에서도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만 압축적인 전개를 택하면서 곡의 여운을 느낄 만한 장면 전환 사이의 여유마저 삭제돼 아쉬움을 느낄 관객이 있을 법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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