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 Now] '반도체 독립' 완성하는 빅테크
2006년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 인텔의 폴 오텔리니 CEO를 찾아가 휴대용 PC에 쓸 수 있는 반도체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오텔리니 CEO는 이 모바일 PC의 생산 규모가 너무 작아서 수지 타산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이 휴대기기는 아이폰으로, 인텔이 예상했던 것보다 100배 이상 많이 팔리며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이 결정은 이후 정보기술(IT) 산업의 미래를 바꿔놨다. 인텔에 거절당한 애플은 삼성전자를 찾아갔고, 아이폰 초기 모델에는 그래서 삼성전자 AP(스마트폰의 두뇌가 되는 반도체)가 탑재됐다. 삼성전자 AP는 인텔이 아닌 ARM의 설계를 기반으로 했고, 애플은 ARM의 밑그림을 바탕으로 불과 4년 만에 자체적인 AP를 출시해 삼성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리고 얼마되지 않아 위탁생산을 삼성이 아닌 대만 TSMC에 몰아주면서 TSMC를 지금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거인으로 만들었다. 애플은 2020년에는 자체 CPU까지 내놓으면서 인텔에서도 독립했다.
실리콘밸리 테크기업들은 이제 모두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설계한다.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 때문이다. 구글과 아마존이 이미 자체적인 AI 반도체를 가지고 있고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도 직접 AI 반도체를 만들고 있다. 비싼 엔비디아 GPU에 의존하지 않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다. AI와 GPU 붐 덕분에 엔비디아는 미국 기업 시가총액 5위에 올랐다.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는 기업이 늘어날수록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커진다.
닷컴 버블 이후 실리콘밸리 중심에는 소프트웨어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반도체가 실리콘밸리의 중심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반도체의 소재인 실리콘에서 시작된 것을 감안하면 원래 이름을 다시 찾아가는 것이다.
이미 최고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와 장비 기업이 있는 실리콘밸리와 멀지 않은 곳에 TSMC(애리조나)와 삼성전자(텍사스)의 파운드리가 세워진다. 미국 반도체 패권은 더욱 공고해지고 반도체 공급망도 완성된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하는 반도체 생태계에 한국도 참여해야 한다. 이미 많은 한국 기업이 실리콘밸리에 접점을 만들고 이곳의 일원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학과를 나온 인재들이 실리콘밸리로 유학을 가고, 그곳에 취업하고, 그곳에서 창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한국 기업에 인수되거나 한국으로 돌아와서 일해야 한다.
둘째,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엔비디아는 항상 남들이 가지는 않는 길을 가다가 지금은 시가총액 1조달러 기업이 됐다. 모두가 AI 반도체에 몰려들고 있지만 기회는 다른 곳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이덕주 실리콘밸리 특파원 mrdjle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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