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베이징 중심가 문닫은 상점들·멈춰진 공사 현장…위기감 커지는 중국 경제
영업 중인 점포보다 빈 곳 더 많아
부동산 등 전체 경기 침체 더 심화
소비 여력·일자리 축소 악순환 우려
‘목 좋은 점포 임대’, ‘주인 직접 임대·매매’
지난 20일 오후 찾은 중국 베이징 둥청(東城)구 ‘갤럭시 소호’ 상가에는 임대 매물로 나온 점포들이 수두룩했다. 갤럭시 소호는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베이징 중심가의 랜드마크 중 한 곳이다. 모두 4동의 오피스텔과 상가 건물이 연결된 형태로 지어져 있고, 주변에는 외교부와 사법부 등 중국 정부 기관들이 밀집해 있다. 오피스텔에 수백개의 사무실이 있어 유동 인구가 적지 않은 곳이지만, 목 좋은 1층 외부 상가에 위치한 점포들도 서너 곳 건너 한 곳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건물 내부 상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언뜻봐도 새 주인을 찾는 가게들이 영업 중인 점포보다 더 많아 보일 정도였다.
베이징 도심 중심지에 위치한 상권의 침체는 전반적인 경기 침체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갤럭시 소호의 한 상점 주인은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최근 빈 점포가 많이 늘었다”면서 “여전히 잘 되는 곳은 잘 되지만 업종에 따라서 격차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소호 내 한 부동산 관계자도 “지난해까지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는데 올 들어서는 사람들의 소비 여력이 줄어든 탓 같다”며 “아무래도 경제 상황의 영향이 없을 수 없고, 빈 상점이 늘어 가격이 떨어졌는데도 임대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갤럭시 소호를 운영하는 ‘소호 차이나’는 베이징과 상하이에 모두 12개 소호를 갖고 있는 대형 상업용 부동산 개발업체다. 지난주 이 회사는 올해 상반기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93%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엄격한 비용 관리에 나서면서 사무실 임대 사업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소호 차이나는 현재 자회사가 베이징 한인 밀집지역에 있는 ‘왕징 소호’의 세금을 체납하자 문제 해결을 위해 일부 부동산 매각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닛케이아시아는 이를 두고 중국의 주택 부동산 침체가 상업용 부동산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경제는 최근 총체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다. 수출은 부진하고 내수 회복은 더딘 가운데 물가가 하락해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부동산 위기까지 고조돼 경제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주요 경제 지표를 보면 내수 경기와 제조업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와 산업생산 증가율은 각각 2.5%와 3.7%로 모두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5%로 3년5개월만에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고, 수입도 -12.4%로 두 자릿수 감소율을 보이며 10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소비자물가지수(CPI)가 -0.3%로 2년5개월만에 마이너스로 전환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로 부각된 부동산 시장 침체는 중국 경제에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부동산 산업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25% 정도를 차지하는 최대 성장 동력이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 자산이 묶인 투자자들의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관련 산업의 일자리가 축소되는 등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지난 18일 베이징 차오양(朝陽)구의 한 신규 주택단지 안쪽에는 1년 넘게 공사가 중단된 건물 1동이 흉물스럽게 자리잡고 있었다. 인근의 아파트 경비인은 “건설이 중단된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건설사의 부채 때문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부동산 중개인은 “최근 전반적으로 부동산 매물은 꾸준하지만 사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당연히 가격이 하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퉁저우(通州)구에 있는 비구이위안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는 현재 공사 중단과 가격 하락에 항의하며 환불을 요구하는 분양자들의 농성이 석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위기가 금융 부문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나타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같은 날 찾아간 차오양구의 중룽(中融)국제신탁 본사 앞에는 공안 차량 1대가 상시 배치돼 있고, 경비 인력 3~4명이 함께 정문을 지키고 있는 상태였다. 얼마 전 이 회사의 투자 상품 상환 연기에 항의하는 투자자들의 시위가 벌어진 이후 경비가 강화됐음을 알 수 있었다. 중룽국제신탁은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의 자금조달원 역할을 해 온 신탁회사로 부동산 시장 침체와 대주주인 중즈(中植)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최근 수십개 투자신탁 상품의 이자 지급과 원금 환매를 중단했다. 이로 인해 부동산 시장과 관련 신탁회사의 위기가 금융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더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 15일 7일물 역레포(역환매조건부채권) 금리와 1년 만기 중기 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를 각각 0.1%포인트와 0.15%포인트 인하한 데 이어 21일 사실상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0.1%포인트 인하하며 유동성 공급을 통한 경기부양에 나섰다. 인민은행은 또 금융감독관리총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와 함께 금융기관들에 경제 회복을 위해 대출을 늘릴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리 인하를 통한 유동성 확대만으로는 현재 경제 상황을 개선하기 힘들며 보다 강력한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또 일부 외신은 “중국 경제의 40년 호황이 끝났다”며 곳곳에 위험 신호가 널려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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