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시간 줄여라…'실리콘 음극재' 기술 확보 전쟁
주원료 천연흑연, 오래쓰면 용량 감소
2025년 인조흑연 비중 60% 달할 듯
배터리 밀도 높은 실리콘 소재 주목
흑연보다 에너지 밀도 10배가량 높아
고용량·고출력…주행거리 확대 가능
흑연보다 높은 부피 팽창 해소가 관건
흑연에 실리콘 혼합 등 기술개발 박차
中이 장악한 흑연 공급망 탈피도 이슈
글로벌 배터리산업의 메가트렌드는 크게 세 가지다. 배터리의 수명 연장, 전기자동차 보급 확대를 위한 고속 충전, 주행 가능거리 확대를 위한 고(高)용량화다. 배터리 4대 소재 중 음극재 기술력은 배터리의 충전 속도와 수명을 결정한다. 전기차 주행거리와 배터리 출력을 좌우하는 양극재만큼 중요한 소재다. 최근 글로벌 배터리 소재 업체들은 배터리 수명과 충전 속도를 획기적으로 향상하는 실리콘 음극재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천연·인조흑연→실리콘으로
음극재는 배터리 재료 원가 비중의 약 14%를 차지한다. 양극에서 나온 리튬이온을 저장했다가 방출하면서 외부 회로를 통해 전류를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배터리를 충전할 때는 리튬이온이 양극에서 음극으로 이동한다. 이후 음극재의 소재인 흑연의 층 사이사이로 들어가면서 흑연이 팽창해 부피가 늘어나게 된다. 배터리를 오래 쓸수록 흑연이 팽창해 구조 변화를 일으켜 배터리 전체 용량이 줄어들게 된다. 최근 배터리업계는 고용량 배터리를 제조하기 위해 차세대 음극 소재를 앞다퉈 개발하고 있다.
지금 사용되는 음극재는 규칙적인 층상구조로 쌓여있는 흑연을 주로 사용한다. 흑연은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으로 나뉜다. 천연흑연은 리튬이온을 보관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이면서 저렴한 재료다. 하지만 사용 중 팽창 문제로 구조적 안정성이 점차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한 인조흑연의 사용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인조흑연은 3000도 이상 고온에서 열처리해 만들어진다. 그래서 천연흑연보다 결정성이 높고 구조가 균일해 안정성이 높다. 추가로 제조 공정을 거쳐야 해 가격이 비싸다. 인조흑연을 생산하려면 석유계 피치(정유 공정의 부산물)나 콜타르 원료(제철 공정의 부산물)를 가공해 침상 코크스(철강용 석탄)를 먼저 만든다. 이를 분쇄한 뒤 뭉쳐서 가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에너지 밀도 10배 높아
실리콘 음극재는 흑연 대신 실리콘을 이용해 제조하는 음극재다. 흑연은 탄소 원자 6개당 리튬이온 1개가 저장되는데, 실리콘은 원자 4개당 리튬이온 15개를 저장할 수 있다. 실리콘 음극재의 단위 에너지 용량은 흑연보다 약 10배가량 높다. 실리콘 음극재는 흑연계 음극재보다 고용량·고출력 성능을 지녔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의 주행거리를 혁신적으로 늘리는 차세대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의 ‘리튬 2차전지 음극재 기술동향 및 시장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체 음극활물질 수요량은 약 19만t이다. 보고서는 2025년까지 전체 음극활물질 수요가 약 136만t으로 연평균 39%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음극활물질 종류 가운데 인조흑연은 2019년 53%에서 2025년 6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천연흑연은 같은 기간 43%에서 28%로 비중이 다소 감소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럼에도 인조흑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쓰이는 음극활물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 음극재는 어떨까. 지금은 가장 낮은 비율이지만 2025년엔 11%로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글로벌 전기차업계가 주행거리 확대에 매진하는 터라 실리콘 음극재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실리콘 음극재는 기존 흑연계 음극재보다 급속 충전 설계가 쉽다. 충전 속도를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실리콘은 친환경적인 데다 지구에 많아 경제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中의 흑연 공급망 탈피 시급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실리콘 음극재는 배터리 충전 시 네 배가량 팽창하는 문제 때문에 상용화가 쉽지 않다. 팽창한 음극이 방전할 때 이전과 같은 형태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폭발 위험이 상존한다. 배터리업계는 실리콘 구조를 안정화할 수 있는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배터리의 부피 팽창 부작용을 어떻게 빨리 개선하느냐가 시장 주도권을 확보할 핵심 기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리콘 음극재 개발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중국이 흑연 공급망을 독점하다시피 장악하고 있어서다. 중국엔 세계 대부분의 흑연이 매장된 터라 생산 및 공급량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중국 기업이 세계 음극재 시장 점유율의 72%를 차지하는 이유다. 중국의 주요 음극재 생산 기업은 베이터뤼(BTR), 즈천과기(Zichen), 산산과기(Shanshan) 등이 있다. 일본 기업으로는 히타치와 미쓰비시가 있다. 한국에서는 포스코퓨처엠이 유일하게 천연흑연 기반 음극재를 생산한다.
배터리 제조 시 핵심 소재에서 생기는 부가가치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리콘 음극재 상용화를 앞당겨야 한다. 지금은 흑연계 음극재에 실리콘을 4~5%가량 첨가하는 형태로 쓰고 있다. 실리콘 함량은 계속 높아질 전망이다. 흑연과 실리콘을 함께 사용해 음극을 제조하는 구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그룹·SK머티리얼즈·LG화학 등 '실리콘 음극재' 상용화 잰걸음
포스코그룹, LG화학, SKC,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SK머티리얼즈, OCI, 대주전자재료 등 국내 배터리 소재업체는 잇달아 실리콘 음극재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실리콘 음극재를 가장 먼저 상용화해야 급성장하는 시장을 선점할 수 있어서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해 7월 실리콘 음극재 전문 기업 테라테크노스를 인수하며 차세대 음극재에 발을 들였다. 이 회사는 2017년부터 실리콘 음극재인 실리콘산화물(SiOx) 제조 기술을 개발해오고 있다. 이 밖에 실리콘 복합 탄소체(Si-C), 퓨어 실리콘 등을 모두 개발해 고객사별로 차별화해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포스코그룹은 현재 실리콘 음극재 생산을 위한 파일럿 플랜트를 준비 중이다. 2026년엔 연 6000t 규모의 실리콘 음극재 생산 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2030년엔 연 3만5000t으로 생산량을 늘린다.
SiOx와 Si-C는 각각 산소와 탄소를 복합해 만들기 때문에 실리콘 비중이 줄어든다. 이에 따라 실리콘 음극재의 단점인 부피 팽창이 완화된다. 퓨어 실리콘은 실리콘만으로 구성해 용량이 높지만, 부피 팽창률이 커 이를 개선하기 위한 기술이 필요하다. 제조 원가는 퓨어 실리콘이 가장 낮다. LG화학도 100%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퓨어 실리콘 기술을 개발 중이다.
올해 말 상업생산에 나서는 기업도 있다. SK㈜ 자회사인 SK머티리얼즈는 실리콘 음극재 기술을 보유한 미국 그룹14테크놀로지와 합작법인인 SK머티리얼즈그룹14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1조1000억원을 투자해 경북 상주에 실리콘 음극재 공장(연 2000t)을 완공했고, 연말부터 생산에 들어간다. 향후 생산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실리콘 음극재의 핵심 원료인 모노실란(SiH4)도 함께 생산한다.
음극재 소재인 동박을 제조하는 SKC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도 실리콘 음극재 기술에 투자하며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SKC는 지난해 컨소시엄을 통해 영국 실리콘 음극재 기업인 넥세온에 8000만달러(약 950억원)를 투자했다. SKC 컨소시엄은 2024년부터 실리콘 음극재를 생산할 계획이다. 넥세온은 최근 일본 파나소닉과 실리콘 음극재 납품계약을 맺은 회사다. 넥세온은 실리콘 비중을 10% 이상으로 높인 2세대 실리콘 음극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2세대 실리콘은 기존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최대 50%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프랑스 실리콘 음극재 기업 엔와이어즈에 79억원을 투자하는 계약을 지난달 맺었다. 회사는 엔와이어즈가 보유한 실리콘 복합물질(Si-C 계열) 기술을 바탕으로 고성능 실리콘 음극재를 대량 생산하기로 했다. 엔와이어즈는 연 2.5t 규모의 파일럿(시범생산) 라인을 갖췄다. 2027년부터 상업 생산에 나서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고사양(하이엔드) 동박과 차세대 음극재 사업 간 시너지를 내겠다는 목표다.
실리콘 음극재의 원료를 공급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OCI는 전북 군산공장에 200억원을 투자해 2025년 상반기까지 모노실란 생산라인(연 1000t)을 설치한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넥세온에 2025년부터 5년간 700억원어치를 납품하는 계약도 지난달 맺었다. 시장 수요에 따라 추가 공급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다.
김형규 기자/도움말=포스코그룹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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