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성균관대 에이스’ 박종하의 목표, “5순위 안에 들어가고 싶다”

박종호 2023. 8. 2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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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6월 20에 진행했으며,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7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박종하는 가족의 영향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농구를 시작했다. 그가 농구를 시작한 나이는 불과 6살.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엘리트 농구를 접했다. 이후 호계중과 안양고를 거쳐 성균관대에 입학했고, 이제는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다.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는 박종하는 “내 목표는 5순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힘들겠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내가 어느 팀에 가도 적응할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며 각오를 전했다.

 

농구인의 피가 흐르는 박종하
박종하는 초등학교 입학 전인 6살 때부터 농구공을 만졌다. 가장 큰 이유는 농구인의 피가 흘렀기 때문. 박종하는 “농구 선수 출신인 아빠가 스포츠 센터를 운영하셨다. 그래서 나는 농구공을 자연스럽게 만졌고, 6살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다. 내 동생도 마찬가지였다”며 농구를 시작한 계기를 전했다.
이어, “그러다가 초등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 엘리트 농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빠가 처음에는 반대하셨다. 농구 선수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나중에는 아빠가 마음을 바꾸셨고, ‘어차피 시작하는 거 이왕이면 빨리 시작하자’고 하셨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일찍 엘리트 농구를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박종하의 친동생도 농구를 하고 있다. 바로 부천 하나원큐에서 뛰고 있는 박소희다. 박소희는 2022~2023시즌 WKBL 신인상을 수상할 정도로 전도유망하다.
박종하는 “어릴 때부터 동생이랑 같이 운동했다. 처음에는 내가 도움을 많이 줬다. 레이업이나 기술적인 것들을 알려줬다. 하지만 지금은 동생한테 많은 도움을 받는다. 이미 프로에 있어서 그런지, 조언을 잘해준다. 나에게 큰 힘이 된다”며 동생과 관계를 전했다.

“제일 힘들었어요”
호기롭게 엘리트 농구를 시작했지만, 엘리트 농구는 쉽지 않았다. 당시를 돌아본 박종하는 “초등학교 때가 제일 힘들었다.(웃음) 그때는 운동 강도도 높고, 많이 뛰었다. 조금은 강압적인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구를 포기하기엔, 농구가 너무 좋았다. 체력 훈련 때는 울먹거렸지만, 막상 경기를 뛰고 시합을 나가는 건 포기하지 못했다.(웃음) 그래서 농구를 계속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보니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만큼 성장한 것 같다”며 농구를 계속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 후 “운이 좋게도 4학년 때부터 경기를 뛰었다. 형들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경기를 뛰었다. 좋은 경험을 쌓았다”며 경기를 뛰게 된 시기를 이야기했다.

농구가 가장 많이 늘었던 시기
성남초등학교를 졸업한 박종하는 호계중으로 입학했다. 박종하는 “호계중 때는 좋았던 기억밖에 없다. 1학년 때부터 계속 우승했기 때문이다. 또, 좋은 형들 밑에서, 좋은 것들을 많이 배웠다”라고 한 후, “센터가 없어서, 빠르고 강하게 압박하는 수비 농구를 했다. 그게 통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중학교 저학년 시절을 회상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 올라갈 때, 기량이 많이 늘었다. 마음가짐부터 달랐던 것 같다. 내가 팀 내 최고참이고 다른 무대를 앞두고 있기에, 더 열심히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한 것 같다”며 가장 성장했던 시기를 꼽았다.
개인 기량은 확실히 늘었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1학년 떄와 2학년 때는 우승을 했다. 하지만 3학년이 된 후에는 우승하지 못했다. 너무 아쉬웠다. 그러면서 에이스의 책임감을 더 배웠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이러지 말아야지’라고 정말 많이 다짐했다”며 중학교 3학년을 돌아봤다.

안양고에서 또 한 번 성장한 박종하
호계중을 졸업한 박종하는 연계 학교인 안양고로 자연스럽게 진학했다. 고등학교 농구에서도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중학교 3학년 때 기량이 정말 많이 늘었다. 고등학교에서도 자신 있었다. 실제로 1~2학년 때 우승도 차지했고, 나의 역할도 컸다.(웃음) 고등학교 입학 후 처음에는 고전했지만, 빠르게 적응했다. 2학년 때부터 많이 뛰면서, 기량과 자신감이 확실히 올라왔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부상이 문제였다. 2학년 초반에 부상을 당했다. 너무 아쉬웠다. 기량이 정말 많이 올라왔지만, 다시 떨어졌다”며 부상으로 인한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부상 때문에 성장 속도가 느려졌으나,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부상 때문에 힘들었지만, 다시 하나씩 하려고 했다. 그리고 3학년 때 기회를 다시 잡도록, 최선을 다했다. 비록 3학년 때 우승은 못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며 아쉬움을 턴 방법을 설명했다.

박종하를 성균관대로 이끈 김상준 감독의 한마디, “책임져주겠다”
성공적인 고등학교 생활을 보낸 박종하는 많은 팀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의 선택은 성균관대였다. 성균관대를 택한 가장 큰 이유는 김상준 성균관대 감독이었다. “성균관대에 입학한 건 감독님의 영향이 컸다. 감독님께서 나를 성균관대로 오고 싶게 만들어 주셨다.(웃음) 감독님이 ‘책임져주신다’라는 말에 반해서, 여기까지 왔다. 지금 와서 보니, 너무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호기롭게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팀 연습조차 하지 못했다. 박종하는 “내가 입학한 후 코로나가 터졌다. 시합은 물론, 연습도 없었다. 그냥 계속 집에만 있었다. 그러면서 동기 부여도 없어지고, 운동과도 조금 멀어졌다. 2학년 때 대회에 나서기는 했지만, 무관중 경기였다. 그냥 고등학교 시합 같았다. 그래서 긴장이 안 됐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그 후 “2학년 말쯤에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다시 마음을 잡고 운동했다”며 슬럼프를 이길 수 있었던 비법을 전했다.

성균관대의 에이스로 거듭나다
첫 2년은 아쉬웠다. 그러나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2학년 겨울 방학을 시작으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린 것 같다. 공격력이 좋아졌고, 팀 수비에도 적응했다. 그러면서 기회도 많이 받았고, 대학 무대에도 더욱 적응했다”고 말했다.
4학년이 된 박종하는 팀에 확실한 에이스로 성장했다. 2023 KUSF 대학농구 U-리그에서 경기당 15.5점을 기록하고 있다. 대학 무대에서 네 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가 됐다.
성장의 배경에는 달라진 마음가짐이 있었다. 박종하는 “농구도 성장했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감독님과 선배님들 모두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주셨다. 그래서 독한 마음으로 시즌을 치렀다. 마음만으로도 해낼 수 있는 게 많다는 것을 느꼈고, 실력 차이도 충분히 극복했다”며 달라진 마음가짐을 강하게 말했다.

드래프트를 앞두고
정규리그를 마친 박종하가 대학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남아있는 기회를 충분히 살려야 한다. 박종하는 “대회가 몇 개 안 남았다. 앞으로 내 가치를 더 올려야 하는 이유다. 내 목표는 이번 드래프트에서 5순위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힘들겠지만, 최대한 노력해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리고 싶다. 내가 어느 팀에 가도 적응할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와 궂은일로도 팀을 이끌어야 한다”며 각오를 전했다.
각오를 전한 박종하는 “대학을 졸업할 때는 성실하고 든든했던 선배로 기억되고 싶다.(웃음) 후배들이 나를 볼 때, 내가 후배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면 좋겠다.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보시기에도 든든했던 선수로 남고 싶다. 그게 내 목표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사진 제공 = 한국대학농구연맹(KUBF)

일러스트 제공 = 정승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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