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반격 고전에 자국 내 항전 여론도 식는다"
서방 약속한 탱크 제때 안오고, 공중전력 부족 여전
"젤렌스키, 종전협상에 인기 식기 전 재선 노려" 전망까지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우크라이나가 점령지 탈환을 위한 반격을 수개월째 진행 중이나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서 자국 여론이 악화하고 있다고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남부의 핵심적인 전역에서 중요한 진격을 이뤄냈으며, 여러 장소에서 지뢰밭을 뚫고 러시아군 삼중 방어요새의 첫번째 선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러시아의 작전 비축물자와 물류선에 타격을 주는 데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반격이 시작된 후 2개월 반 정도가 지난 현시점에도 러시아에 빼앗긴 동부 및 남부 지역을 되찾고 아조우해에 도달하겠다는 전략상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한참 부족한 상태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이 때문에 많은 비로 땅이 진창으로 변해 전진이 어려워지는 10월 말 전까지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통로를 끊어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의 실망스러운 반격 속도가 지난 몇 주간 국제적인 헤드라인의 초점이 됐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한 불만과 비판이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군 지원을 위한 여성 자원봉사단체 '츠비트'의 공동설립자 아나스타샤 자물라는 크라우드펀딩 모금 속도가 느려졌다고 전했다.
한때 우크라이나는 이번 반격을 통해 2014년 러시아에 강제 합병된 크림반도까지 수복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이제는 좀 더 현실적인 기대를 강조하는 등 달라진 분위기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의 세르히 레셴코는 반격 속도에 대한 좌절감을 수도 키이우의 '힙스터' 카페에서 아이스라테를 주문한 손님들에 빗대며 "여기에 앉아있는 우리는 군을 비난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건 채찍질하면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말이 아니다"라며 "매 1m를 전진할 때마다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셴코는 서방에서 지원받는 장비들이 약속된 시기에 도달하지 않는 상황을 지적하며 "당황스럽고 의욕이 저하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동맹들은 신무기 공급과 관련해 모호한 말로 얼버무리고 있는 데다, 만일 내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현 조 바이든 대통령을 꺾고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우크라이나인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관측했다.
우크라이나 총참모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서방으로부터 약속받은 100대 이상의 독일산 주력전차 레오파르트2 중 아직 60대밖에 받지 못했으며, 지뢰제거 차량은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반격 초반인 지난 6월 러시아군의 지뢰밭과 방어선을 뚫기 위해 필요한 공중 엄호 전력이 부족한 탓에 서방에서 훈련받은 2개 여단이 지뢰밭에서 큰 전력 손실을 입은 후 애초 전략이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고도 한다.
이 관계자는 "간단히 말해 우리에게는 서방이 요청하는 전방 공격을 수행할 자원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정치권에도 침울한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으며, 올여름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조기 총선과 대선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소문마저 돌았다.
그 배경에는 민심에 반하는 종전이나 영토 양보 등 내용이 담길 수 있는 평화협상 국면으로 내몰리기 이전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민적 영웅'인 현 상태로 재선에 도전하는 것이 낫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정치평론가인 볼로디미르 페센코는 "앞으로 치러지는 어떤 선거든 젤렌스키에 대한 재신임을 묻는 성격이 될 것"이라며 "전쟁을 치르느라 바쁜 군 총사령관 발레리 잘루즈니를 제외하면 아직 눈에 띄는 경쟁자는 없으나, 젤렌스키 측은 이런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가에서는 애초 올가을 대선과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이미 그러기에는 상황이 늦어버렸다는 말까지 나오며, 실제로 대통령실에 가까운 소식통은 이 같은 방안이 배제됐다고 설명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전선에서는 평화협상에 대한 인식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이달 초 한 우크라이나군 저격수는 자국이 모든 영토를 되찾는 수 있다는 전망을 일축하면서 이제는 많은 병사가 종전을 환영할 것이라고 언급해 파장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총참모부의 한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어떤 종류의 평화든 지연된 전쟁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라며 "왜 문제를 다음 세대로 미루나"라고 지적했다.
젊은이들이 항전을 위해 앞다퉈 자원입대하던 것은 옛말이고, 이제는 다들 원치 않는 상황에서 징집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자원봉사단체의 자물라는 "반격의 성공을 기원하는 것조차 자기파괴 행위가 되어버렸다"며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고 말했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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