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기후변화가 바꾸는 부동산 명당
우리나라는 ‘더운 나라’로 향해 가고 있다.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진다. 벚꽃 피는 봄도 빨라진다. 여름철 자주 듣던 ‘지루한 장마’라는 말도 사라질 것 같다. 지구 온난화로 게릴라식으로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있어서다. 극한 호우를 알리는 긴급재난 문자를 자주 접하는 것도 기후재난이 그만큼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는 주거지 선택도 기후문제를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우선 기습폭우에 따른 피해를 볼 수 있는 잠재 위험지역은 피하는 게 좋다. 가령 아무리 풍광이 좋아도 골짜기 부근에 전원주택을 짓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문제는 골짜기가 아닌 곳에서도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몇 년 전 산사태로 인명피해가 난 강원도 펜션 일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산사태 피해를 입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호우로 지반이 약해진 뒷산의 토사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펜션을 덮친 것이다. 지구 온난화 시대에선 풍수지리 사상에 따른 전통적인 명당이 반드시 좋은 땅이 아닐 수도 있다. 전원에서 터 잡기가 훨씬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을 누리기보다는 재난을 줄이는 방어적 접근이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자연재해가 빈번해지면 전원보다 이를 피할 수 있는 도심 생활이 더욱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앞으로 대도시마다 폭우에 대비해 배수구와 하수구를 넓히는 작업에 나설 것이다. 기후문제가 심각해지면 도심에서도 저지대보다는 중간 고지대 주택단지가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에는 하나의 주거 트렌드가 될 수도 있다. 도심에서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취약한 곳은 반지하 주택이나 지하주차장 등 저지대다. 침수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지구 온난화의 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해수면은 1991년부터 30년간 평균 9.1cm나 상승했다(국립해양조사원). 환경단체들은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어 그린란드 빙하가 모두 녹으면 금세기 안에 전 세계 해수면이 평균 7m 상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후 재앙으로 난민이 속출할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우리나라 역시 인천공항 등 수도권 해안가뿐만 아니라 서해안, 남해안도 침수 피해 대상이 될 수 있다. 부산, 창원, 울산, 인천 등 해안가 아파트들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70%가 산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안 도시의 경우 해수면이 높아지면 바다에서 약간 떨어진 구릉 지대가 주거지로 각광받을 것이다.
지구 온난화는 거주 공간의 대이동을 유발할 것이다. 벌써 외국에서는 ‘기후 젠트리피케이션’(Climate Gentrification)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는 해안가에 살던 부자들이 침수 위험을 피해 중간 고지대로 이동하면서 구도심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의 유명 해안가 아파트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고 침수 우려가 있는 지역에선 가격도 하락하고 있다. 앞으로 침수 우려가 있는 해안가 주변의 땅이나 주택을 사는 것은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물론 방파제를 조성할 수 있겠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바다 조망권을 보고 덜컥 부동산을 사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이제는 폭우뿐만 아니라 바닷물 유입까지 고려해 가면서 부동산을 골라 사야 하는 시대가 됐다. 부동산시장에도 기후문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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