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더 진화한 인류, 138억년 우주탄생 이론 뒤집다

고재원 기자(ko.jaewon@mk.co.kr) 2023. 8. 2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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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시작된 우주론
"우주는 팽창·수축하지 않아"
아인슈타인 '정적이론' 발표
상대성이론 따져본 학자들
"우주는 폭발 후 팽창해왔다"
빅뱅이론에 점차 무게 실려
꾸준히 제기되는 '공격'
"원시 우주상태 설명 불가능"
천문학자들 빅뱅 허점 지적
시공간은 모두 균일하다는
'정상우주론' 등장했지만
1960년대 대폭발근거 확인
다시 빅뱅이론이 지지 받아
첨단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
濠, 초기우주 거대은하 발견
천문학계 기존 분석 뒤집어
韓, 새로운 천체움직임 확인
빅뱅이론 수정 주장해 주목
과학계 "이어지는 반론들
분석기술 정확해졌단 방증"

지난 7월 미국천문학회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저널'에 한국 연구팀의 한 연구가 발표됐다. 채규현 세종대 물리천문학과 교수팀이 주도한 이 연구는 지금까지 발표된 우주 이론으론 설명할 수 없는 천체 움직임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기반으로 일반상대성이론에 기초한 빅뱅 우주론이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해 국제천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올 2월 호주 스윈번공대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도 관심을 모았다. 연구팀은 빅뱅 발생 5억~7억년 후 초기 우주에서 거대 은하 6개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한 은하는 은하 내 별의 총질량이 태양의 약 1000억배가 될 정도로 컸다. 이는 천문학계의 기존 분석을 뒤집은 것이다. 초기 우주의 은하는 매우 작았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크기가 커졌을 것으로 그간 분석해왔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초기 은하 형성 과정에 대한 기존 우주론이 수정돼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 등 우주 관측 장비가 발달하며 빅뱅 이론 같은 기존 우주론이 위협받고 있다. 우주의 나이는 현재 약 138억년으로 추정된다. 현생인류는 약 20만년 전 등장했다. 불을 피우고 문명을 발명한 후 빅뱅을 이론화한 지는 고작 100년이다. 과학자들은 이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진 기존 이론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은 우주에 대한 인류의 분석이 정확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역설한다.

현시점의 우주론 역시 위협과 논쟁, 보완을 거쳐왔다. 현대 우주론에 따르면 태초에는 존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원자나 별, 은하, 심지어 시간과 공간마저 태어나지 않았다. 처음 모든 것이 태어나는 시점을 빅뱅(Big Bang·대폭발)이라 부른다. 이런 현대 우주론은 1917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정적 우주론에서 시작된다. 아인슈타인은 "우주는 팽창하지도 수축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1916년 발표된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이론을 살핀 러시아 수학자 프리드만과 벨기에 신부 르메트르는 다른 생각을 했다. 우주가 팽창해야 한다고 봤다. 그 둘은 각각 1922년, 1927년 '우주가 원시 원자들의 폭발로 시작됐으며 점차 팽창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논문을 무시했다. 그러나 1929년 아인슈타인의 생각을 바꾼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은하들이 후퇴하고 있음을 실제로 관측해 우주가 팽창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1931년 '우주는 무한하고 정적이다'라는 당시의 상식에 억지로 우주상수를 도입했던 것을 철회했다.

그러나 빅뱅 이론은 학계에서 완벽히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프레드 호일, 헤르만 본디 등 영국 케임브리지대 천문학과 교수들은 빅뱅 이론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원시 우주에는 모든 물질이 한 점에 모이는 초고온, 초밀도의 특이점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이 특이점은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불가했다. 이에 이들은 '정상우주론'을 제시했다. 정상우주론에서는 우주가 시공간적으로 균일하다. 또 '등방성'을 지녀 과거나 현재가 같은 형태다. 등방성은 모든 결정 방향에 대해 같은 성질을 갖는 것을 뜻한다. 이런 점 때문에 정상우주론에선 특이점이나 우주 탄생의 순간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거의 동시에 나타난 빅뱅 이론과 정상우주론은 둘 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다 1960년대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했다. 우주배경복사는 우주 전역에서 발견되는 전자기파 복사다. 태초의 대폭발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과거 우주 온도가 수천 도에 달할 정도로 뜨겁고, 물질의 분포가 균일했다는 것도 시사한다. 뒤이어 빅뱅 이론을 지지하는 증거가 하나둘 늘어나며 정상우주론과의 치열한 논쟁이 매듭지어지고 마침내 주류 이론으로 자리 잡게 됐다.

하지만 빅뱅 이론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우선 빅뱅 이론으로는 우주가 탄생한 순간을 설명할 수 없다. 우주가 탄생한 직후부터는 설명이 가능하나 탄생 그 순간과 이전에 대해선 설명할 수가 없다. 기원 자체에선 여러 의문이 풀렸지만 근본적 고민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 채규현 교수팀이 내놓은 논문은 '장주기 쌍성'의 궤도 운동에서 뉴턴역학이 붕괴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장주기 쌍성은 두 별이 태양과 지구 간 거리인 1AU(1AU는 태양과 지구의 평균 거리, 약 1억5000만㎞)의 수백~수천 배 거리를 두고 서로를 공전하는 항성계로 우주에서 흔히 발견된다. 연구팀은 유럽우주국(ESA) 가이아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650광년(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 약 9조4600억㎞) 이내 약 2만6500개 장주기 쌍성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장주기 쌍성 간 거리가 2000AU 이상일 때 쌍성 궤도 운동의 중력가속도가 뉴턴역학의 예측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5000AU 이상일 때는 뉴턴역학 예측치의 약 1.4배로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가속도가 0에 가까운 아주 작은 중력에서는 뉴턴역학이 위배된다고 보고 이를 설명하는 이론인 '수정뉴턴역학'인 'AQUAL 이론'과 일치한다. 이 이론은 1983년 이스라엘 물리학자 모르데하이 밀그롬 바이츠만연구소 명예교수가 처음 제안했다.

연구팀은 "중력이 약해질 때 뉴턴역학이 붕괴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라며 "AQUAL 이론 예측값과 결과가 거의 맞아떨어지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결과를 우연히 얻었을 가능성은 사실상 0에 가깝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연구는 300여 년간 지속돼온 뉴턴역학뿐만 아니라 강한 등가원리를 따르는 일반상대성이론도 수정돼야 함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호주 스윈번공대 연구팀 관측 결과도 기존 이론으론 설명이 불가하다. 연구팀이 NASA의 JWST 관측 자료를 분석했더니 빅뱅 5억~7억년 후의 거대은하 6개가 발견됐다. 이 은하들이 뿜은 우주 초기의 빛을 분석한 결과 가장 큰 은하는 별 질량이 태양의 1000억배나 된다. 이 정도 크기 은하는 보통 빅뱅 후 10억년가량 지난 시점에 발견돼왔다.

기존 은하 형성 이론에 따르면 작은 은하들이 모여 큰 은하를 만들고, 큰 은하들은 더 큰 은하를 만들어낸다. 이에 빅뱅 직후의 초기 우주에는 작은 은하들이 주로 있을 것으로 예상돼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번에 이론의 예측 범위를 벗어나는 굉장히 큰 은하가 발견된 것이다. 연구팀은 "과학자들이 우주 초기의 은하 기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라며 "초기 은하 형성 과정에 대한 기존 이론을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201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우주가속팽창 이론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도 국내에서 나왔다. 우주가속팽창 이론은 우주가 점점 빨리 팽창하고 있다는 유명 천체물리학 이론으로, 애덤 리스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등 우주가속팽창 연구를 주도한 세 명의 과학자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바 있다.

이영욱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11월 우주가속팽창 이론의 기본 가정이 틀렸다는 연구를 국제학술지 '영국 왕립천문학회지'에 온라인으로 공개했다고 밝혔다. 우주가속팽창 이론은 초신성에서 발생하는 빛의 최대 밝기가 별의 나이와 상관없이 전부 같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연구팀은 초신성이 내뿜는 빛이 별이 수명을 다하기 전 상태인 '모항성'의 나이에 따라 변한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연구팀 외에 NASA나 ESA 등에서도 기존 주류 이론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연구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JWST 등 우주를 직접 관측하는 장비의 성능이 좋아지며 우주의 비밀에 대한 실마리가 늘고 있다고 설명한다. NASA의 차세대 우주망원경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이 2027년, ESA의 우주망원경이 2026년, 중국의 적외선 우주망원경 '쉰톈'이 2024년 출격을 예고하고 있어 빅뱅 이후 초창기 은하 생성의 비밀, 생명의 기원 등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이해가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작고한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신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과학은 창조자 없이도 충분히 우주에 관해 설명할 수 있다"며 "인류는 아주 평범한 별에 사는 진화한 원숭이에 불과하나 우주를 관찰하고 이해하기에 인류가 특별하다"고 말한 바 있다.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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