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한 전기차 시장…'저가형' 레이·토레스·EV5가 돌파구 될까
국내 완성차 업체, 값싼 LFP 배터리 탑재한 전기차 출시 계획
[아이뉴스24 강지용 기자]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었던 국내 전기자동차 시장이 올해 들어 주춤하고 있다. 비싼 차량 가격과 줄어든 보조금, 그리고 아직 열악한 충전 인프라 등이 부진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이미 전기차를 살 만한 사람은 상당수가 구매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아 공개한 '2021~2023년 연료별 자동차 신규 취득가액'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기차 시장 규모(신규 취득가액 총합)는 2조2763억원이다. 2년 전(5006억원)보다는 약 4배나 성장했지만, 직전 반기(2조3424억원)와 비교하면 규모가 다소 줄면서 성장세가 처음으로 꺾였다.
반면, 하이브리드 시장은 꾸준하게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21년 상반기 3조1597억원, 2021년 하반기 3조6570억원, 2022년 상반기 4조3억원, 2022년 하반기 4조2387억원으로 증가해 왔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는 6조1238억원으로 집계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1년 상반기 하이브리드 차량 시장 규모는 내연기관 승용차 시장 규모의 19%에 그쳤으나, 올 상반기에는 43%까지 올라섰다. 올 상반기 하이브리드 차량의 약진이 두드러졌던 이유는 친환경 차량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여러 단점이 부각되는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 차량을 선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하이브리드 시장과는 달리 전기차 시장은 대중화 시기에 서서히 접어들고 있지만 고가 차량 위주로만 라인업이 짜여 있어 선택의 폭이 좁다. 이와 더불어 보조금 축소로 신차 가격 부담이 커진 점도 소비자들이 구매를 망설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1년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롱레인지 2WD 기준 4980만원)'는 국가 보조금(800만원)과 지자체 보조금(200만원·서울시)을 받으면 3980만원에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아이오닉5의 판매가는 5410만원으로 올랐고, 국가 보조금(680만원)과 지자체 보조금(180만원)을 받으면 실구매가는 4550만원에 달한다. 2년 사이에 570만원을 더 내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한때 1년 훌쩍 넘게 기다려야 했던 전기차 구매 대기 기간도 짧아졌다. 현대차 아이오닉5는 지난해 8월 구매 대기 기간이 1년 이상이었지만, 현재 1.5개월로 줄었다. 아이오닉6도 지난해 10월 출시 당시 1년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했지만, 현재 1개월로 단축됐다.
차량용 반도체난으로 밀렸던 생산이 올해 다소 해소된 영향도 있지만, 현대차 아반떼 하이브리드(12개월),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14개월 이상) 등 인기 모델은 여전히 대기 기간이 긴 상황이다.
현대차그룹 등 완성차 업체들은 가격을 대폭 내린 '저가 전기차'를 출시해 난관을 돌파한다는 계획이다. 전기차 가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를 기존의 삼원계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에서 30%가량 저렴한 이원계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바꾸는 방식으로 가격 부담을 낮춘다는 전략이다.
기아는 배터리 용량을 기존보다 두 배 이상 키워 상품성을 강화한 경형 전기차 '레이 EV'를 9월 재출시한다. 모델 노후화와 판매 저조로 단산한 지 5년여 만으로 중국 CATL이 공급하는 LFP 배터리 탑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출시 가격은 3천만원대로 예상되는데, 정부 보조금과 지방자치단체마다 다른 지방보조금까지 더할 경우 실제 구매가는 2천만원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 전기차 가운데 LFP 배터리를 적용하는 것은 레이 EV가 처음이다. 내년 출시 예정인 현대차 경형 전기차 캐스퍼 EV에도 이 CATL의 LFP 배터리가 장착될 것으로 보인다.
레이 EV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로부터 복합 기준 210km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받았다. 도심 기준 238km, 고속도로 기준 176km를 달릴 수 있다. 87마력 전기모터에 배터리 용량은 35.4킬로와트시(㎾h)다. 초기 모델(16.4㎾h)과 비교해 배터리 용량이 두 배 이상 커지면서 주행가능 거리 역시 월등히 길어졌다.
아울러 기아는 다음 달 중국 청두에서 열리는 모터쇼에서 준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5'를 공개하고, 본격적인 판매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EV5의 중국 출시 가격은 약 5천만원 미만으로 예상된다. 기아는 차량 가격을 낮추기 위해 한국산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 대신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하고, 충전도 800V 고전압이 아닌 400V 시스템을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2023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송호성 기아 사장은 "EV5의 국내 출시 계획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모델에도 중국산 배터리가 탑재될 것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KG모빌리티도 다음 달 첫 번째 전동화 모델인 토레스 EVX를 출시한다. 토레스 EVX에는 중국 비야디(BYD)의 LFP 배터리가 들어간다. 환경부 인증 기준으로 1회 충전으로 433km를 주행한다. KG모빌리티와 비야디는 이미 2021년부터 배터리 개발 및 배터리팩 생산을 위한 기술 협력을 진행해 왔다. 토레스 EVX는 보조금을 적용하면 3천만원대 후반에 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완성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or) 등 고가 전기차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미 상당수가 차량을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려면 전기차도 가성비 모델부터 고급형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만 저가형 전기차에 중국산 리튬인산철 배터리가 탑재됐다는 것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심리적 거부감이 판매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며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강지용 기자(jyk80@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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