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잘나가던 한국 대형 마트…칠레에도 밀리게 된 이유
우리나라 유통시장을 주름잡던 대형 마트가 초라한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매출 부진과 수익성 악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1호 대형 마트는 1993년 문을 연 서울 이마트 창동점입니다. 대형 마트가 지금은 많은 이에게 익숙하지만, 당시엔 눈이 번쩍 뜨이는 ‘핫 플레이스’였습니다. 쾌적한 환경에서 질 좋은 상품을 값싸게 살 수 있고, 주차도 편리해서 많은 사람이 몰렸습니다. 이후 20년간 전국 각지에 대형 마트가 잇달아 생겨나면서 대형 마트 전성시대가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했고, 거기에 규제가 더해져 대형 마트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최근 한국경제신문은 2021년 기준 이마트·롯데쇼핑 등 한국 기업 6대 주요 대형 마트의 평균 매출이 112억 달러로, 세계 250개 소매업체 평균(226억 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국가별 순위에서는 12위인 칠레(137억 달러)보다 아래인 13위를 차지했습니다. 칠레의 경제 규모(국내총생산)는 우리나라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마트 창동점 개점 후 30년 역사를 자랑하던 K-유통의 초라한 현실입니다.
대형 마트 쇠락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월 2회 의무 휴업,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에 대해 알아봅시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 대형 마트처럼 오프라인 기반의 유통 기업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살펴봅시다.
전통시장 살린다며 도입한 영업 규제…대형 마트 발목만 잡는 헛발질
국내 대형 마트의 가파른 성장세는 2010년대 들어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423개이던 ‘빅 3’(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점포 수는 지난해 396개로 줄었습니다. 대형 마트가 어려움을 겪자 기업들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대형 마트는 매장 면적이 3000㎡ 이상에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는 점포이고, SSM은 매장 면적 300~3000㎡인 체인 형태의 슈퍼마켓입니다. SSM 매장 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형 마트의 3배에 가까운 1096개에 달합니다.
포퓰리즘 성격의 대형 마트 규제
대형 마트와 SSM이 유통시장의 강자로 떠오르자, 기존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을 위협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대형 마트(SSM)와 전통시장(소상공인)의 상생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죠.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유통산업발전법이 여러 차례 개정됐고, 전통시장 및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 조항이 추가됐습니다. 원래 이 법은 1997년 유통 산업의 규제 완화를 목표로 제정됐습니다.
법 개정으로 추가된 규제는 2012년 대형 마트 및 SSM의 영업시간 제한과 월 2회 의무휴업일 지정, 2013년 전통시장 1km 이내(전통 상업 보존 구역) 대형 마트 및 SSM의 신규 출점 제한 등입니다. 특히 대형 마트 영업에 대한 규제는 2012년 정치권의 경제 민주화 논의,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과 맞물리면서 포퓰리즘적 성격을 갖게 됐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전통시장 상인과 소상공인을 유권자로 생각한 정치인이 많았다는 의미입니다.
연구 결과 “대형 마트 규제 실패”
전통시장을 살리고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대형 마트 영업 제한 규제는 과연 효과를 발휘했을까요.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이슈다 보니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 학자가 많았습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 등은 신용카드 데이터를 이용해 대형 마트 의무 휴일 규제의 효과를 분석했습니다. 분석 결과, 규제 도입 이듬해인 2013년 29.9%이던 대형 마트에서의 소비 증가율이 2016년 -6.4%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전통시장에서의 소비 증가율도 18.1%에서 -3.3%로 감소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대형 마트 영업 규제가 효과 달성에 실패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주하연 서강대 교수 등은 중기(2010년 대비 2015년의 변화)와 장기(2010년 대비 2019년의 변화)로 구분해 대형 마트 영업 규제의 효과를 살펴봤습니다. 연구 결과, 대형 마트는 중기와 장기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SSM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기와 장기에 모두 그곳에서 소비자들이 지출한 금액(소비 지출액)이 증가했습니다.
전통시장은 중기에 소비 지출액이 감소했고, 장기에는 더 큰 폭으로 줄었습니다. 소상공인에 속하는 일반 슈퍼마켓은 중기에는 소비 지출액이 증가했지만, 장기에는 감소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대형 마트 영업 규제의 효과가 의심스럽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규제는 소비 촉진할 수 없어
대형 마트 영업 규제는 왜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보호라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을까요. 명분만 앞세우고 소비자의 선호를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자신의 선호에 따라 소비할 곳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특정 소매업을 보호하기 위해 규제를 시행하고 그로 인해 소비자가 자신이 원하는 곳을 선택하는 데 제약이 생긴다면 소비자는 차선을 택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선택한 차선이 정부가 보호하려는 곳과 일치하리란 보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온라인 쇼핑이 급속히 늘고 있는데 오프라인 시장을 전통시장과 대형 마트로 나눠 규제를 차별한 것도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입니다.
규제는 소비자 선호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는 소비를 촉진할 수도 없습니다. 서용구 교수 등은 “새로운 매장이 자유롭게 선보일 수 있어야 혁신이 가능하고 유통산업이 발전하며 소비가 촉진된다”라고 주장합니다.
NIE 포인트
1. 대형 마트 규제와 포퓰리즘의 관계를 설명해보자.
2. 대형 마트 규제의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정리해 보자.
3. 대형 마트 규제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전통시장 vs 대형 마트가 아닌 온라인 vs 오프라인 경쟁이 관건이죠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두 가지 결정을 합니다. 먼저 ‘어떤 제품을 살 것인가’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여러 브랜드에서 만들기 때문에 어느 브랜드의 어떤 모델을 살지 선택합니다. 두 번째는 ‘어디서 살 것인가’입니다. 자신이 사려는 특정 브랜드의 특정 모델을 여러 곳에서 판매하므로 어디서 구매할지 결정합니다.
소비자의 첫 번째 결정에 대해서는 제조 기업들이 관심이 많습니다. 미디어 광고나 SNS 홍보 등을 통해 소비자가 자사 제품을 선택하도록 유도합니다. 소비자의 두 번째 결정은 유통 기업과 관련됩니다. 유통 기업들은 저마다 다양한 제품을 값싸게 살 수 있고, 구매는 물론 교환 및 환불도 편리하다고 주장합니다.
유통 기업의 생산성 향상
더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제조 기업과 유통 기업은 생산성을 높이려고 합니다. 제조 기업이 생산성을 향상시키면 경쟁 기업보다 높은 품질의 제품을 낮은 생산원가로 만들 수 있습니다. 유통 기업의 생산성 향상은 ‘판매 가격 하락’과 ‘서비스 개선’이라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유통 기업이 제조 기업으로부터 어떤 조건으로 제품을 들여오고, 그렇게 들여온 제품을 어떻게 분류하고 저장해서 소비자에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판매 가격이 달라집니다. 낮은 판매 가격은 유통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됩니다. 유통 기업은 또 구매·교환·환불 등에 대한 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서비스 수준을 높이기도 합니다. 소비자는 유통 기업 간 가격 비교를 통해 어떤 기업의 생산성이 높은지, 다시 말해 판매 가격이 낮은지를 따집니다. 유통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선 직접 경험해 보거나 다른 소비자의 경험을 SNS 등을 통해 확인하고 그 수준을 판단합니다. 이런 유통 기업 간 경쟁은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온라인 쇼핑의 급성장
그런데 정부가 10년 넘게 시행해 온 대형 마트 영업 제한 규제는 전통시장(소상공인)과 대형 마트(SSM) 간 경쟁을 전제로 만들어졌습니다. 온라인 유통업체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그 때문에 오프라인 업체, 그중에서도 대형 마트가 규제로 집중적인 타격을 받았습니다. 온라인 유통업체는 그런 피해의 반사이익을 누렸습니다. 대형 마트 영업 규제의 효과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하나같이 규제를 시행한 이후 온라인 유통 기업의 성장세가 뚜렷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국내 대형 마트의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시대착오적 규제와 온라인 유통업체 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쟁, 그리고 유통시장의 포화 상태 등이 복합적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보입니다.
대책은 간단합니다. 우선, 정책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대형 마트 영업 규제는 하루 빨리 철폐 또는 완화해야 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방향으로 여러 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책 변화만 기대해선 안 됩니다. 대형 마트 스스로 온라인 유통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나는 생존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세계 유수의 오프라인 유통업체 월마트의 사례를 참고할 만한데요, 월마트는 1945년 미국에서 지역 거점의 할인점 사업 모델로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지역에 더 큰 매장을 열어 상품 매입, 재고, 배송 등에서 원가를 최대한 낮췄지요. 월마트는 오프라인의 성공에만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2012년 실리콘밸리의 IT 기술자를 대거 영입, 자사의 소비자 데이터와 물류 데이터 등을 분석해 온라인을 강화했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월마트는 아마존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의 온라인 유통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업체들의 공세에 온라인 기업도 가만히 팔짱만 끼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마존은 부족한 오프라인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2017년 오프라인 식료품 체인 홀푸드를 인수했습니다. 또 인공지능(AI) 같은 기술로 소비자 구매 데이터 등을 분석함으로써 개별 소비자에게 맞춤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치열한 유통시장에서의 온·오프라인 생존 경쟁. 정부와 정치권은 지금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문해 봐야 합니다.
NIE 포인트
1. 유통기업 생산성 향상의 의미를 정리해 보자.
2. 온라인 쇼핑 급성장의 이유를 설명해 보자.
3. 월마트의 온라인 강화 노력을 조사해 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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