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밝아 ‘명랑 소녀’로 불린 피해자···지인들 “지금이라도 웃으며 나타날 거 같아”
누구든 친해지는 타입이었다”
방학 중 연수 준비로 출근하다 변
지인 “공무상 사망 인정돼야 한다”
“oo이 처음 봤을 때 기억난다. 겉보기에 엄청 조용조용한 친구인 줄만 알았지. 그런데 말 한마디 나누고 나서 ‘나랑 잘 맞는 애구나’ 생각했었는데...”
지난 20일 ‘관악구 등산로 강간살인’ 피해자 A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 입구. 고인과 10여년을 알고 지낸 김모씨(39)가 말했다. 듣고 있던 고인의 지인들이 ‘정말 목이 멘다’ ‘웃으면서 나타날 거 같다’며 흐느꼈다. 장례식장 입구에는 고인의 대학 동기, 축구회 등이 보낸 화환 20여 개가 놓였다. 고인의 오빠가 상주 역할을 하면서 조문객을 맞았다.
20·21일 빈소를 찾은 지인들에 따르면 A씨는 초등학교 교사로 10여년 간 일했다. 김씨는 “저녁 10시에도 학부모한테 아이가 없어졌다고 연락이 오면 같이 나가서 찾아주고, 학생이 집에 어려운 일이 있어서 학교에 못 오면 직접 가정을 방문하는 선생님이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A씨는 방학 중에도 연수 준비를 하러 출근하다 변을 당했다. 15년간 A씨와 알고 지낸 대학 동기 B씨(34)는 “보통 방학 중 연수는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본인이 가족과 보낼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나가 일하다가 변을 당했다”며 “공무상 사망이 인정돼야 한다”고 했다.
A씨의 대학 동기, 직장동료들은 고인이 “천사같은 성격”이었다고 했다. B씨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착했다. 약속장소에 늘 먼저 나와 기다리고, 남들이 꺼리는 궂은 일도 ‘제가 할게요’라고 손 들던 친구”라고 했다. 고인은 평소에도 고향에 내려가 지병을 앓는 아버지를 모시는 등 효심이 깊었다고 한다. 김씨는 “고인은 워낙 싹싹해서 한 번 밥을 먹으면 누구든 친해지는 타입이었다”고 했다.
고인이 처음 발령받은 학교에서 같이 일한 교육직 공무원 C씨도 “너무 밝은 분이셔서 별명이 ‘명랑 소녀’였다. 지위나 신분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다”며 “교사와 공무직은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은 데도 같이 일하던 공무직들이 빈소에 많이 왔다 갔다”고 했다.
A씨는 평소 축구·복싱을 즐겼다고 한다. 고인이 다니던 복싱 체육관 관장 이대산씨(54)는 “소식을 듣고 체육관 문도 닫고 급하게 왔다”며 “평소에 정말 성실하게 운동해서 선수로 나가라고 몇 번 이야기하기도 했다. 체육관 다니던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도 자주 나눠주셨던 분”이라고 했다. A씨가 활동한 지역축구회 회장 D씨는 “책임감이 강해 항상 경기를 일찍 준비하고, 선배들은 물론 후배들 챙겨주는 데도 열심이었다. 항상 웃으면서 ‘언니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라고 말하던 아이인데 이렇게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흐느꼈다.
A씨가 가르쳤던 학생들도 빈소를 찾았다. 노주환군(14)은 “‘주환이는 무엇을 해도 잘 될 거야’라는 응원을 해주시던 게 기억에 남는다. 다정하고 운동을 좋아하셨던 분”이라며 “체육 시간에도 항상 우리와 같이 피구, 축구를 해주셨다”고 했다.
노군의 아버지인 노재우씨(52)는 “늘 학생들이랑 더불어 뭔가를 하는 걸 좋아하셨고, 교실에 머물기보다는 학생들의 경험을 넓혀주고 싶어하는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A씨는 평소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배경화면에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사진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다른 학부모는 “졸업한 친구들도 만나서 상담해주고 끝까지 힘내라고 응원해주곤 하셨다”고 했다.
이들은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했다. D씨는 “양손에 너클을 끼고 의식을 잃을 때까지 폭행한 것은 살인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라며 “감옥에서 가해자가 세끼를 챙겨 먹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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