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들이 ‘왜 전 국민이 사과하냐’ 해요”…잼버리 파행 속 빛난 민간 외교관들의 활약

김수미 2023. 8. 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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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퇴영 영국 잼버리 대원 40명 서울관광 도운 이예진씨
서울 맛집·핫플레이스 지도 만들어 배포, 직접 인솔도
영국 잼버리 대원에 시민들 다가와 “쏘리” 사과해
40명 식사비 내준 시민, 음식 쿠폰·놀이기구 티켓 선물도
노래방·다이소·문구용품 등에 엄지 척…“또 오겠다”
예진씨에게 “명예대원 되어달라” 스카우트 스카프 선물
“영국 잼버리 대원 40명의 식사비를 대신 내주신 분도 계시고, 사진을 찍어 무료로 인화해 주신 사진작가도 계셨대요. 영어를 잘 못하는 (한국)분들까지 다가와서 ‘쏘리’라고 하더라며 조직위가 관리를 못했을 뿐인데 왜 전 국민이 사과하냐고, 친절한 한국인들 덕분에 즐거웠다고 합니다.”
우연히 만난 영국 잼버리 대원 40명의 서울 관광을 일주일간 도와준 대학생 이예진(22)씨는 지난 19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영국 잼버리 대원들이 한국에 대해 느낀 인상을 이렇게 전했다.

지난 11일 막을 내린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는 부실한 운영으로 국가적 망신을 샀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특히 오랜 준비와 기대를 안고 참여했다가 폭염과 열악한 환경에 고생하고 떠난 각국 청소년들이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이씨처럼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한 국민들 덕분에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는 해외 잼버리 대원들의 경험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퍼지고 있다. 

이씨가 새만금 캠프에서 조기 퇴영한 영국 잼버리 대원들을 처음 만난 건 지난 7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였다. 
지난 13일 홍대의 한 고깃집에서 단체 회식을 한 영국 잼버리 대원들과 그들의 서울 관광을 도운 이예진씨(가운데). 이예진씨 제공
“잼버리 스카프를 한 네 명의 아이들이 주문하느라 애를 먹고 있길래 도와줬죠. 영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 반가웠던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쏟아내더라고요.”

당시 아이들은 모두 벌레에 잔뜩 물린 상태였지만 현장에서 받은 약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 그중 한 명은 채식주의자였는데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고, 샤워실 등의 위생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도망치듯 나왔다고 토로했다. 

“서울시에서 투어버스와 한강공원 클라이밍 등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신속하게 준비했지만, 너무 많은 나라에서 신청해서 참여할 수가 없었다고 해요.”
지난 13일 홍대역 인근에서 이예진씨가 영국 잼버리 대원 40명에게 직접 만든 홍대 지도를 나눠주며 안내하는 모습. 
안타까웠던 이씨는 서울에서 갈 만한 곳을 추천해 주겠다며 인스타 계정을 공유했고, 그날 밤새 서울에서 방문할 만한 장소와 맛집 등을 3페이지 분량의 구글 지도로 정리해 보내 줬다.

지도를 받은 영국 대원들은 다음 날 바로 서울숲으로 가서 사진을 찍어 이씨에게 보내 줬다. 하지만 이틀 후 태풍이 와서 발이 묶였고,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할 줄 몰라서 매일 맥도널드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결국 영국팀 대장이 이씨에게 영국 단원 40명이 갈 수 있는 식당 추천을 부탁했고, 이씨는 한식당을 예약한 후 ‘한국어로 주문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식당 측 요청에 태풍을 뚫고 식당으로 갔다. 이씨 어머니도 두 팔 걷고 나서서 한국의 맛을 알리고 4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들을 섭외해 줬다.

지난 13일에는 홍대의 한 고깃집을 예약해 숙소에서부터 함께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40명이 함께 움직이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씨는 또다시 홍대에서 갈 만한 곳을 온라인 구글 지도로 만들고, 와이파이가 안 되는 곳에서 길을 잃을까 봐 직접 40여장을 인쇄해서 나눠 줬다.

노래방과 아트박스, 다이소 등을 방문한 영국 대원들은 “서울에서 가 본 곳 중 최고”, “성인이 되면 꼭 한국에 다시 와서 여기에서 술 마시고 싶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노래방을 처음 가 봐서 그런지 신기해하며 좋아했어요. 쇼핑을 특히 많이 했는데 여학생들은 옷과 다꾸(다이어리 꾸미기)할 스티커와 펜, 연필을 잔뜩 사고, 남학생들은 재밌어 보이는 간식을 많이 샀어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떠나려던 순간 이씨의 테이블로 대원들이 갑자기 몰려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서프라이즈!’라면서 잼버리 스카프를 선물해 주더라고요. 그러고는 저한테 ‘우리의 명예 대원이 되어 줄래?’라고 물어보는데 순간 울컥했어요.”
지난 13일 영국 잼버리의 명예 회원으로 위촉돼 스카우트 선서를 하고 있는 이예진씨. 
비공식 멤버이긴 하지만, 이씨는 스카우트 선서를 하고 처음 카페에서 만난 네 명의 친구들과 같은 팀이 됐다. 다른 대원들도 그에게 연락처를 주며 “영국에 올 계획이 있으면 꼭 얘기하라”고 당부했다.
뉴욕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이씨는 휴학하고 한국에서 지내다가 출국을 2주 앞두고 그들을 만나 일주일을 함께 보냈다.
지난 9일 서울 강남의 한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영국 잼버리 대원들.
영국 대원들에 따르면 이씨뿐 아니라 많은 한국인이 초코파이, 음식 쿠폰, 놀이기구 티켓 등 다양한 선물을 건네며 미안한 마음과 반가움을 표했다. 다만, 동행했던 팀을 인솔한 대장은 영국 팀이 이번에 긴급 예산을 대부분 써서 앞으로 4∼5년은 훈련 방식이 많이 바뀔 것이라며 걱정했다고 한다. 

이씨는 “개인적으로 아주 즐겁고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앞으로 봉사활동을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라며 웃었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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