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석·박성수 부부 화가 유라시아 횡단 자동차 미술여행-9]
자코메티의 현대인 초상
[유라시아=뉴시스]윤종석·박성수 부부화가 = 스톡홀름부터 시작한 비와 강한 바람은 긴 여행의 풀리지 않는 피로를 더했다. 하지만 다시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는 기대감과 설렘은 여행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해준다. 덴마크로 들어와 맞이한 첫 도시인 홈레벡의 아름다운 차박지는 잊을 수 없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조금 차가우면서도 은은하게 다정했다. 안개로 부드러운 바다에 몇몇이 수영하고, 몇몇은 낚시를 즐기고 있다. 마침 우리의 차박지는 해변의 작은 잔디밭을 끼고 있어 아름다운 바다를 얼마든지 품을 수 있었다. 긴 여행 중에 삶의 여유를 되찾는 순간의 보상이다.
여러 나라들과 수많은 도시의 미술관을 지나며 만났던 작품들의 황홀함 못지않게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경험들과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여유로운 순간들은 양보할 수 없는 여행의 참 의미다. 아마도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게 되더라도 지금의 감동은 한동안 가슴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들어가기 반드시 들를 곳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루이지애나현대술관(Luisiana Museum of Modern Art)’이다. 코펜하겐에서 북쪽으로 35km 정도 차로 30분 거리 떨어진 근교에 위치한다. 자연과 건축물이 잘 어우러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루이지애나현대미술관은 건축물을 둘러싼 주변 경관 자체가 예술 작품 같았다. 단정하고 우아한 미술관 입구를 지나 미술관 카페의 ‘칼더 테라스’에 다다르면 절로 탄성을 지르게 된다. 발트해로 연결되는 탁 트인 해협을 배경으로 푸른 언덕 위의 조형물들 사이로 저 멀리 스웨덴 파노라마 뷰까지 압권이다.
미술관의 야외 조각공원에는 눈부신 45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한 점 한 점이 자연 풍경에 녹아든 건축물과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자리했다. 바다의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감상하고 있으면 해묵은 번뇌까지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 중 알렉산더 칼더의 조형물 는 최고의 스타로 가장 큰 사랑을 받는다. 거대한 몸집임에도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는 모빌 조각들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매번 색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루이지애나현대미술관은 덴마크인 사업가이자 미술애호가였던 크누드 옌센(Knud W.Jensen, 1916~2000)이 세운 미술관이다. 그는 애지중지하던 소장품의 감동을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 싶어 장장 30여 년간 심혈을 기울여 지금의 미술관 모습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정말 부럽고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관 건물 역시 세계적인 건축물을 소개한 책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도 소개되었을 정도다.
크누드 옌센은 1956년에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오레선드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루이지애나 토지를 매입했다. 19세기에 세워진 이곳의 빌라를 젊은 건축가 요르겐 보(1919~1999)와 빌헬름 워럴트(1920~)에게 확장 증축하도록 주문한다. 이것은 자신의 소장품을 대중에 공개할 수 있는 미술관을 건립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두 건축가는 빌라 주변의 자연 풍경을 온전하게 보존했다.
이렇게 증축된 미술관은 본관과 세 개의 작은 분관이 이어지고, 그 후 컬렉션이 늘어날 때마다 새로운 공간을 디자인하여 덧붙여져 지금의 모습이 완성됐다고 한다. 이와 같은 방식은 루이지애나미술관이 훌륭한 건축 공간을 넘어 ‘살아있는 자연의 일부’로 재탄생하게 된 근간이 되었다.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은 폭넓은 소장품으로 수준 높은 기획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피카소, 앤디 워홀, 프란시스 베이컨, 로이 리히텐슈타인, 루이스 브루조아, 자코메티, 이브 클라인 등의 회화와 조각, 비디오 작품에 이르기까지 현대미술의 교과서를 만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오늘날까지의 현대미술 작품이 망라된 귀중한 곳이다. 특히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기 이전 인디언들의 예술인(Pre-Columbian art) 컬렉션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여행하면서 만난 유럽의 미술관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미술관 자체보다 주위의 자연을 잘 활용해 ‘미술과 삶이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그저 미술관에 걸린 유명한 작품들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소풍 나온 것 같은 가벼운 발걸음과 즐거움이 보였다.
아름다운 미술관과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직접 영접했다는 기쁜 마음을 안고 다시 코펜하겐으로 달렸다.
오후 늦게 코펜하겐에 도착해 외곽의 실내체육관 무료 대형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이곳을 차박지로 선택한 이유는 덴마크 10크로네로 차박과 샤워까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기간 여행에서 숙식과 위생은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된다. 참고로 덴마크는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노르웨이, 스웨덴처럼 자국의 화폐단위를 사용한다.
주차장에서 자는 게 이제 익숙해져 내 집처럼 잘 잔다. 첫 장소는 코펜하겐에서 가장 핫하다는 코펜하겐 컨템포러리(Copenhagen Contemporary) 아트센터를 방문했고 시내를 걸어다녔다.
코펜하겐은 수많은 여행자로 넘쳐났다. 쇼핑, 관광, 휴가 등 저마다의 목적을 갖고 찾은 이들로 시내 곳곳이 붐비고 활기에 넘쳤다. 도시 곳곳을 걸으며 갤러리를 탐방하고 종합 박물관인 국립박물관(National museet), Kunsthal Charlottenborg)까지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육체의 허기짐보다 작품을 보겠다는 욕망이 더 컸다. 그림을 보고 나서야 마치 숙제를 마친듯한 홀가분하고 경쾌한 기분이 들었다. 내일은 페리를 타고 독일 함부르크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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