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혁신 플랫폼 사업의 그늘… 참여 연구원·업체들 '먹잇감' 변질
광주·전남선 혈세 빼먹기 전락
부실 정산에 리베이트 의혹까지
경찰, 전남대 교수 등 6명 수사
2개 과제서 33억 '곶감 빼먹듯'
정부가 매년 수천억 원씩 투입하는 지역 혁신 플랫폼 사업이 참여 연구원과 관련 업체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있다. 교육부(한국연구재단)가 관리·운영하는 이 사업은 자치단체와 지방 대학 등이 협업 체계(지역 혁신 플랫폼)를 바탕으로 지역의 첨단·핵심 분야 인재를 양성하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교육부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1개 특별·광역자치단체에 6개 지역 혁신 플랫폼을 세웠고, 올해엔 부산 등 3개 플랫폼을 더 구축한 뒤 4,886억 원(지방비 1,466억 원 포함)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사업이 일부 지역에선 기업 지원 과제를 놓고 참여 연구원과 업체들이 돈(보조금)만 쏙 빼 먹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들이 서로 짜고 허위 사업 계획서나 검수 확인서 등을 만들어 사업비를 가로채고 있는데도, 정부는 예산만 뿌리고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체 관계자는 "지역 혁신 플랫폼 관련 업체들 사이에선 정부 보조금은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털어놓았다.
대표적인 게 에너지 신(新)산업과 미래형 운송 기기 분야 창업 활성화를 핵심 전략 과제로 삼은 광주·전남 지역 혁신 플랫폼이다. 여기엔 광주시와 전남도는 물론 사업 총괄 대학인 전남대와 중심 대학 17개, 지역 혁신 기관 375개가 참여하고 있다. 이 중 에너지 신산업 관련 기업 지원·개발 사업 과제에서 국고 보조금 수십억 원이 샜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두 사업의 책임 연구원이었던 전남대 A교수와 참여 업체 대표 등 6명을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입건, 조사 중이라고 21일 밝혔다.
경찰 등에 따르면 A교수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그린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자립형 경축 순환 미래 농업 플랫폼 구축 사업(스마트 팜)'과 '에너지 창의 융합 확장현실(XR) 교육 및 하드웨어 플랫폼 기술 고도화 및 실증 사업(XR 기술 고도화)'을 수행하면서 보조금 33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A교수 등은 서로 짜고 사업 계획서나 검수 확인서 등을 가짜로 작성한 뒤 보조금을 빼돌리는 수법을 썼다. 실제 A교수 등은 올해 3월 전남 나주시의 한 연구시설에 스마트 팜 관련 시설과 장비, 교육·체험장 등을 구축했다는 내용의 허위 결과 보고서 등을 지역 혁신 플랫폼 측에 제출해 보조금 12억5,000만 원을 가로챘다. XR 기술 고도화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A교수 등은 올해 3월 말 자신들이 손가락 동작 인식 글러브 시스템 등을 개발한 것처럼 최종 보고서를 냈지만 해당 시스템은 이미 다른 기업이 시중에 출시한 것들이었다. A교수 등은 이 사업에서만 무려 21억 원의 보조금을 부정 수급했다. 경찰은 참여 업체 대표들이 지역 혁신 플랫폼 사업을 따내기 위해 리베이트를 제공했다는 의혹도 제기돼 관련 내용도 들여다보고 있다.
이처럼 지역 혁신 플랫폼 사업을 두고 막대한 예산이 낭비되고 있는 건 사업 관리와 사업비 집행이 이원화돼 있는 탓이 크다. 광주·전남 지역 혁신 플랫폼 내 에너지 신산업 육성 사업단의 경우 과제(사업) 관리와 예산 집행·결산 권한 업무가 별도 조직으로 나뉜 이중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 때문에 지역 혁신 플랫폼 측이 사업 종료 후 자체적으로 사업비를 정산하면서도 현장 실사를 누락한 채 증빙 서류만 확인하는 데 그치는 사례가 많아 보조금 빼먹기 등을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전남 지역 혁신 플랫폼 관계자는 "사업 관리와 예산 집행이 따로따로 이뤄지다 보니 실제 사업 성과품에 대한 검수 과정에서 현장 실사가 있었는지 파악하기 힘든 측면이 있고, 실제 현장 실사를 통한 검수가 미흡한 부분도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사업이 정부 재정 투입 사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역 혁신 플랫폼이 자체 사업비 정산 서류를 한국연구재단에 넘겨 최종 정산 과정을 거치지만 정산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아 이 부분도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며 "돈만 주면 끝이라는 식의 정부 보조금 지원 사업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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