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폼, 왜 미쳤다고 할까… “100마일처럼 보이니까” 적진도 깔끔하게 항복 선언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신시내티 타선은 힘과 기동력을 잘 조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팀이 애지중지한 젊은 유망주들이 차근차근 성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메이저리그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장타도 칠 수 있고, 언제든지 뛸 수 있는 기동력도 갖췄다. 실제 신시내티는 올 시즌 팀 도루 1위를 다투고 있다.
반면 류현진(36‧토론토)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투수다. KBO리그 경력을 차치하더라도, 메이저리그에서만 11년, 부상으로 빠진 2015년을 빼면 올해가 10번째 시즌이다. 메이저리그 통산 178경기에 나갔고, 76승을 거뒀다. 그래서 21일 신시내티의 홈구장인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열린 토론토와 신시내티의 경기는 ‘베테랑의 경험과 신예들의 패기’가 맞부딪히는 경기로 화제를 모았다.
결과는 류현진의 완승이었다. 지난해 6월 받은 팔꿈치인대재건수술(토미존 서저리)에서 복귀한 이후 네 번째 등판을 맞이한 류현진은 이날 5이닝 동안 4피안타 1볼넷 7탈삼진 2실점(비자책점) 호투로 팀의 10-3 승리를 이끌고 시즌 두 번째 승리를 거뒀다. 신시내티의 힘 있고 기동력 있는 타선을 가볍게 막아내며 경기 초반 팀이 순항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2회 실점하기는 했지만 이는 수비 실책에서 비롯된 비자책점이었다. 나머지 이닝은 아주 큰 위기 없이 지나갔다. 류현진 특유의 빠른 투구 템포로 신시내티 타자들을 밀어붙인 듯한 인상을 남긴 하루였다. 팀 타선도 상대 선발인 헌터 그린을 시작부터 대포로 두들기며 4회까지만 9득점하며 류현진을 화끈하게 밀어줬다. 9-2로 앞선 6회, 토론토 벤치가 류현진을 굳이 마운드 위에 올릴 필요가 없었다.
컨디션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포심패스트볼 구속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날 류현진의 포심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90마일을 넘지 못했다. 구속으로 먹고 사는 선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90마일 이상의 공이 몇몇 있었던 지난 세 차례 등판보다도 스피드는 떨어졌다. 평균 구속은 87.4마일(140.7㎞)에 불과했다. 컷패스트볼도 아직은 감각이 돌아오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점차 살아나기 시작한 체인지업과 커브의 조합으로 신시내티의 젊은 선수들을 요리했다. 신시내티의 젊은 타자들은 강력한 패스트볼도 담장 바깥으로 넘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류현진의 느린 공에 고전했다. 이유가 있었다. 류현진 특유의 구종 조합과 완급 조절, 그리고 정교한 로케이션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이날 경기 후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상대 타자들이 공격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 공격성을 역이용하는 경기 계획을 짰다는 의미다. 패스트볼을 적시에 던지면서도, 구속 차이가 큰 커브와 체인지업을 다양한 코스에 던지면서 신시내티 타자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이런 수 계산에 아직은 능하지 않은 신시내티 타자들을 마치 한 수 가르치듯 던졌다.
경기 후 신시내티 인콰이어러는 ‘그는 흙에 부딪히는 시속 70마일 이하의 커브로 헛스윙을 유도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땅에 떨어지는 듯한 낙차에 패스트볼과 구속 차이를 크게 둔 커브가 빛을 발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류현진의 커브 헛스윙 비율은 43%에 달했다. 체인지업은 30%였다. 패스트볼을 기본 미끼로 던져두고, 여기서 다양한 조합과 코스 공략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7탈삼진은 복귀 후 한 경기 최다 기록이다.
토론토 주관 방송사인 ‘스포츠넷’은 3회 신시내티의 대표 유망주인 엘리 데 라 크루스와 승부에서의 볼 배합을 주목했다. 류현진은 이 승부에서 초구와 2구를 바깥쪽에 넣어 파울을 만들며 유리한 카운트를 점령했다. 초구는 패스트볼, 2구는 체인지업이었다. 이어진 승부에서는 몸쪽과 바깥쪽, 높은 쪽과 낮은 쪽을 자유자재로 던졌고 결국 6구째 66.2마일(106.5㎞)짜리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기막힌 구종 조합의 승리였다.
‘스포츠넷’은 이 승부 이후 ‘류현진의 피칭 시퀀스를 보라. 패스트볼, 체인지업, 패스트볼, 체인지업, 다시 패스트볼에 마지막에 커브를 던졌다’고 감탄하면서 결국 데 라 크루스에게 낯선 커브를 마지막까지 아껴두며 보여주지 않고 있다 결정구로 활용한 것에 대해 류현진의 노련함을 극찬하기도 했다.
신시내티 중계진 또한 류현진의 투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시내티 중계진은 경기 후 리뷰 프로그램에서 류현진의 투구 내용을 분석하며 “요즘 메이저리그에서는 보기 드문 투수다. 60마일대의 변화구(커브)가 있었고, 70마일대의 체인지업, 80마일대의 패스트볼이 들어왔다”면서 “67마일짜리 공을 본 타자가 다음 87마일짜리 포심을 보면 아마도 100마일의 빠른 공처럼 보일 것”이라고 류현진의 구종 선택과 완급 조절을 칭찬했다.
이날 류현진의 최고 구속은 89.6마일(144.2㎞), 최저 구속은 65.5마일(107㎞)이었다. 37㎞나 차이가 났다. 이 37㎞의 차이 사이에도 여러 구속 변화를 주며 신시내티 타자들의 방망이를 노련하게 비껴나갔다. 역시 ‘베테랑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한 판이었다. 류현진의 능력이 건재함을 확인한 이상, 이제 최고의 복귀 시즌을 기대해도 될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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