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한도 상향’ 검토에…마장동·노량진 상인들 “숨통 트였다”
선물가액 10만원→15만원으로 5만원 상향안
농·축·수산업 “구매 심리 자극해 활로 찾아야”
[헤럴드경제=박지영·김빛나 기자] 지난 20일 방문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청과물시장. 시장에서 만난 과일가게 사장 이모(63)씨는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 논의에 “(상한액이) 5만원 오르면 선물을 하려는 소비 심리를 자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비쳤다. 이 씨는 “최근 태풍 등으로 과일 값이 오르면서 특상품 배는 1개 5000원에 팔리고 있다”며 “추석 전 과일 가격은 더 크게 오를 거 같은데, 백화점은 시장보다 몇 배나 더 비싸기 때문에 소비자가 (대안으로) 재래시장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 방향을 논의한 가운데 현장에서는 기대감이 솔솔 나오고 있다. 선물 가액 상한을 기존 10만원에서 15만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이 소비자의 구매 심리를 자극해 소비를 북돋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부는 올해 추석 명절 때부터 적용할 수 있게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정은 지난 18일 오후 국회에서 민당정 협의회를 열고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 방향을 논의했다. 농‧축‧수산물 선물 가격 상한과 더불어, 기프티콘 등 모바일 상품권과 문화 공연 관람권도 선물 범위에 포함하는 안이다. 설‧추석 명절에는 평상시 선물 가액의 2배까지 가능해, 현재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한도가 10만원 높아지는 셈이다.
2016년 9월 시행된 김영란법은 올해로 7년째를 맞는다. 7년 간 식사비는 3만원, 선물가액은 2017년 12월 시행령이 한 차례 개정돼 6년 간 10만원에 묶여있었다. 이런 탓에 물가는 상승하는데 선물가액은 오르지 않아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현장에서는 이번 논의가 조금 더 일찍 이뤄졌어야 한다면서도 규제 현실화 가능성이 열렸다고 보고 있다. 또 일종의 심리적 장벽을 없앨 수 있다고도 한다. 지금까지 규제로 인해 소비가 억눌려진 측면이 있는데, 가액이 상향 조정되면서 소비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성동구 마장 축산물시장에서 만난 상인들도 1년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추석 대목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인 A씨는 “소고기는 프리미엄 선물이기 때문에 선물 가액이 올라가면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설‧추석 명절 매출은 전체 매출액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만큼, 올해 추석은 육우가 강세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40대 상인 B씨는 “김영란법 10만원에 맞춰서 9만8000원짜리 선물세트를 판매해왔다”며 “이전에는 3인가구가 구워 먹을 수 있는 양을 준비했다면, 15만원으로 선물 가액이 오르면 살치살, 꽃등심 등을 4인 기준으로 양을 늘려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산물 업계에서도 들뜬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전복, 굴비, 킹크랩 등 주로 고가의 수산품이 선물로 나가는 수산업의 특성 상 선물가액이 5만원 오른 것은 체감이 크다는 것이다. 상인 조 모씨는 “아무래도 수산물은 단가가 높기 때문에 5만원 차이면 판매하는 전복 사이즈가 바뀐다”며 “가액이 올라가면서 고급 수산물이 더 팔릴 것으로 예상돼 추석이 기대된다”고 했다.
차덕호 노량진수산시장 상인회장은 “추석에 주로 잘 나가는 전복의 경우 평균 20만원 정도고, 킹크랩 같은 경우 한 마리가 20만~30만원 하는 것도 있다”며 “추석에 30만원까지 가능하다는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 소식을 듣고 활로를 터준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백화점 등 유통업계도 김영란법 개정을 반기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20만~30만원 사이 메인 상품 물량을 10~30%정도 늘리는 방안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다”며 “확정이 되면 물량을 조절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높은 축산 선물세트의 경우 김영란법 제한 완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식사비는 논의 대상에 빠져 아쉬워하는 상인도 있다. 김영란법 시행령 상 식사비 3만원 제한에 맞춰 2만9000원짜리 정식을 파는 한 한식당 주인은 “김영란법이 시행된 2016년부터 지금까지 이 가격에 팔고 있는데, 제일 잘나가는 메뉴라 가격을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며 “올라간 물가를 반영하도록 식사비도 논의 대상이 되어야 되지 않겠냐”고 했다. 한 식당 주인은 “지금도 영수증에 총액만 나오게 해서 몇 명이 먹었는지 모르게 할 수 있고, 나눠서 결제하는 방식으로 3만원 제한을 피해갈 수 있다”며 “현실을 반영하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영란법 시행령이 개정되기 위해선 국민권익위원회 전원위원회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전원위 재적 위원의 과반수의 찬성을 거쳐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면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시행된다. 만약 올해 추석부터 개정 규정을 적용하려면 내달 5일 안에는 시행령 개정이 완료돼야 한다. 권익위 관계자는 “올 추석에 시행령을 적용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추진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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