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테크하며 걷는 5060…10~20원 모으다보니 치킨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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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저녁 7시40분께 대전 유성구 신성동에 있는 한 드럭스토어 앞에 두 손에 휴대전화를 든 채 고개를 숙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지난 2일 저녁 한겨레가 찾아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3가 당산공원에도 '짠테크'를 위해 휴대전화 앱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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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저녁 7시40분께 대전 유성구 신성동에 있는 한 드럭스토어 앞에 두 손에 휴대전화를 든 채 고개를 숙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20여분이 지나자 순식간에 약속이나 한 듯 50여명으로 불어났다. 대부분 50∼60대로 보이는 이들은 서로 알은체도 하지 않고 손에 있는 휴대전화 화면을 몇 번 ‘터치’하더니 이내 각자 갈 길을 갔다. 이들이 모인지 25분 만에 드럭스토어 앞은 다시 텅 비었다.
‘수상한’ 이들이 이곳에 모였던 이유는 ‘적립금’ 때문이다. 한 핀테크 앱은 자신들이 광고하는 특정 장소를 방문하거나, 장소 불문 주변에 있는 같은 앱 이용자를 앱 상에서 ‘확인’하면 20∼300원가량의 돈을 지급한다. 되도록 많은 사람의 해당 장소 방문을 유도하거나, 더많은 이들이 앱을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션 장소’인 드럭스토어 앞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 수십명이 모이는 장면이 연출된 이유다.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며 종종 이곳을 찾는 김아무개(63)씨는 “지금까지 앱에서 진행하는 적립 이벤트를 통해 3개월 동안 모은 돈만 8∼9만원”이라며 “만보기 기능으로 목표 걸음 수를 채우거나 특정 장소를 방문하면 10∼20원씩을 주는데, 이런 ‘짠테크’ 기능들을 최대한 이용하다 보면 은근히 쏠쏠하게 용돈을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퇴직한 김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짠물 앱테크’가 유행이라고 전했다.
10원, 100원 단위를 적립할 수 있던 ‘앱테크’(앱+재테크)가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한 젊은층을 넘어 은퇴로 주머니가 가벼워진 5060세대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지난 2일 저녁 한겨레가 찾아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3가 당산공원에도 ‘짠테크’를 위해 휴대전화 앱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곳에서 만난 주부 박미연(67)씨는 “어차피 산책해야 하는데, 몇백원이라도 벌 수 있으니 까먹지 않고 앱을 켜서 적립금을 쌓는다. 최근엔 친구들과 놀 때도 함께 앱에서 ‘라이브방송’을 보면서 적립금을 쌓곤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간간이 알바를 통해 소득을 올리지만, 이렇게 재미있게 용돈 벌이를 하는 건 또 다른 것 같다. 지금까지 15만원 정도를 모아 최근엔 치킨을 사 먹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직장인들이 많아 해당 앱 이용자가 근처에 많은 특정 장소는 ‘성지’로 불리기도 한다. 이튿날 낮 12시 찾아간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에는 최고기온 34도에 이르는 폭염 속에서도 ‘짠테크’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앱테크’가 일과가 됐다는 황아무개(66)씨는 “우연히 지나가다 ‘이곳이 적립금을 쌓는 명소’라고 얘기를 들었다. 매일 산책과 시내구경을 할 겸 무료로 지하철을 타고 이곳에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 같은 앱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조금씩 돈이 쌓이는 걸 보는 쾌감도 있다”고 했다.
‘짠테크’에 나선 이들은 대부분 소소한 재미를 얻기 위해 앱을 켠다고 했지만, 5060세대까지 이것이 확산하는 것은 열악한 일자리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시각도 있다. ‘짠테크’에 빠졌다는 ㄱ(60)씨는 “굳이 매일 그걸 하러 나가야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운동도 하고 친구들과 이야깃거리도 생겨 이젠 매일 ‘카톡’을 하듯이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5060세대는 씀씀이는 여전한데 은퇴를 앞두면서 경제활동은 어려워지는 세대다. 이들 일자리가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이뤄지고, 임금은 열악하다 보니 푼돈 벌이에라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김우리사랑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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