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취자 보호하다 치료 필요할 때만 응급실로…병원·경찰 다 웃었다
주취자의 수용 공간을 분리하고, 처치가 필요한 환자만 응급실로 인계하는 부산의료원의 주취해소센터가 경찰과 병원 모두에서 호평받고 있다. 경찰이 주취자를 병원 등 지정된 의료기관에 인계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잇따라 발의된 가운데 운영에 난항을 겪는 현행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개선할 롤모델로도 주목받는다.
21일 부산의료원과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양 기관은 지난 4월 정상적인 판단·의사 능력이 없는 주취자를 수용하기 위한 주취해소센터를 개소했다. 이전의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리모델링 해 주취해소센터로 탈바꿈시켰다. 응급의료센터는 의식이 없거나 외상이 있어 치료가 필요한 주취자만 수용하지만 해소센터는 집으로 즉시 돌아가기 어렵거나 보호자 인계가 어려운 일반 주취자도 받는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치료뿐 아니라 보호·상담의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경직법(경찰관 직무집행법)상 공공 구호시설인 의료센터를 해소센터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4월 11일 개소한 이후 7월 31일까지 총 161명이 평균 5.3시간 이곳에 머물렀다. 부산 전역에서 하루 평균 1.45명의 주취자가 실려 온다. 남성과 여성이 7대 3의 비율로 20대가 41명으로 가장 많고 60대(38명), 50대(29명), 30대(24명) 순이다. 주말인 금~일요일은 월요일보다 2배 이상 많은 주취자가 이곳을 찾았다.
만취 상태의 주취자는 경찰과 병원의 '골칫거리'로 통한다. 폭행과 욕설을 일삼고 구토하거나 혼자 넘어지는 등 사고의 위험이 상존한다. 그러던 중 최근 술에 취해 쓰러진 주취자가 경찰의 보호 조처 미비로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누가' 주취자를 수용할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경찰은 주취자 안전을 이유로 응급실로 주취자를 보내려고 하고, 반대로 응급실에서는 일반 환자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업무 방해를 일삼는 주취자가 달갑지 않아 첨예한 대립을 이뤘다.
부산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전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는 초기 경찰 2명이 상주하다 이송 인원이 줄고, 의료원과 갈등 등을 이유로 인원이 1명으로 줄어든 다음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안 그래도 인력난에 시달리는 부산의료원도 "주취자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돌며 의사·간호사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양 기관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부터 공간 구분과 인력 구성에 공을 들였다. 먼저 주취해소센터를 응급실 외에 구축해 모든 주취자가 처음부터 응급실로 들어가지 않게 했다. 경찰관 6명, 119 구급대 3명을 배치해 3교대로 각각 2명·1명이 24시간 센터에 상주하게끔 인력도 충원했다. 간호사나 응급구조사 자격이 있는 구급대원이 1차로 환자를 본 뒤 치료가 필요할 때만 응급실로 보낸다. 응급실에 입실할 때도 경찰 등이 따라와 주취자 보호·청소를 도맡고 끝나면 센터로 복귀까지 책임진다. 김휘택 부산의료원장은 "부산경찰청과 직접 소통해 업무 영역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병원은 치료가 필요한 환자만을 받고, 경찰은 주취자를 보호하면서도 지역 경찰서의 원활한 치안 업무가 가능한 '윈-윈'(WIN-WIN) 시스템이 갖춰졌다. 성적표는 준수하다. 1차 스크리닝을 거쳐 센터에서 응급실로 이송된 환자는 약 3개월간 총 9명으로 5.6%에 불과했다. 자진 귀가한 사례는 128명(79.5%), 보호자에게 인계된 사례가 24명(14.9%)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부산의료원 차수현 응급실장은 "수용 공간과 담당자, 접수 형태가 분리돼 주취자와 일반 환자가 엉키지 않고 의료진도 '환자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라며 "지금까지 업무 부담이 크다고 느끼지 않았다. 단순 주취자가 난동을 부린 적도 없다"고 말했다. 부산경찰청 생활안전과 전성수 경감은 "지역 경찰서의 업무 부담이 늘지 않도록 부산청에서 경찰 6명을 모집한 후 센터가 설치된 지역 경찰서로 발령을 냈다"며 "주취자 보호 업무로 인한 부담이 줄어 조직 내 전체적인 만족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부산주취해소센터의 성공 경험을 벤치마킹하려 경기 남부·대전 등 각 지역 경찰청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경찰청 본청은 물론 보건복지부도 최근 주취자의 의료기관 수용 확대를 골자로 한 법안이 연이어 발의되면서 현장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는 '부산의료원식 모델'에 관심을 갖고 있다.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조석주 교수는 "주취자 응급실 수용에서 가장 큰 문제는 폭언·폭행과 의료비 수납인데 센터는 공간 분리와 1차 스크리닝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며 "병원·경찰의 긍정적인 협업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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