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크루즈 관광객 가득찬 부산 상권… “대출로 버텼는데 이제 살맛 나네요”
감천문화마을, 국제시장 등 부산 관광지 매출 2배 뛰어
면세점 매출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돼
20일 오전 11시30분쯤. 부산 국제 크루즈 터미널로 일본인 관광객 약 2000여명을 태운 ‘MSC Bellima’ 크루즈가 정박했다. 주차장에는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20대가 넘는 40인승 관광버스와 파란색 티를 맞춰 입은 관광통역 안내사들이 줄지어 대기 중이었다. 크루즈에서 내린 일본인 관광객들이 원하는 여행 코스를 도는 버스에 나눠 타면서 부산 여행 일정이 시작됐다.
이들을 맡은 관광 안내사 김모(59) 씨는 “8월 들어 일주일에 크루즈 1~2척은 들어온다”며 “코로나 때는 아예 제로(0)였는데 요즘 많게는 버스 40대까지 꽉 채워 관광하니 인솔 인원만 1000명은 된다”고 말했다.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그간 움츠렸던 부산의 지역 상권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관광객들이 관광지뿐만 아니라 식당과 시장, 면세점을 누비며 쇼핑을 해 외국인 관광 수요가 없던 시절보다 매출이 2~3배씩 늘어난 곳도 많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동안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입항 금지됐던 크루즈 운행이 올해 초부터 재개됐다. 올해 부산항만공사에 예약된 크루즈는 총 106척으로 2019년(108척)과 비슷한 수준이다. BC카드가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부산에 정박한 크루즈선 입항일(총 51일·63척) 기간 부산 시내에서 발생한 외국인 카드 매출액을 분석한 결과 이전보다 최대 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지·시장 상인들 매출 2배 늘어… “크루즈 여행객 더 늘어나길 기대해”
오후 1시 일본 크루즈 단체 관광객 4개 조가 감천 문화마을에 들어서자, 골목 골목이 순식간에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체감온도 31.3도로 10분만 서 있어도 땀이 쏟아지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은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 한복 모양 책갈피, 태극기 모양 키링 등을 구경하고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을 입구에 위치한 기념품샵을 운영하는 이모(38) 씨는 “코로나 때보다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2배 이상 늘어 하루에 200명 정도는 방문한다”며 “자석이 가장 잘 팔리고 10·20대 어린 일본인 관광객들은 BTS 열쇠고리를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전했다.
수박 주스 등을 파는 음료 매장을 운영 중인 정모(32) 씨는 더운 날씨에 시원한 음료를 찾는 관광객들을 끊임없이 응대하면서도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코로나 때 하루에 손님이 10명도 없어 대출로 간신히 버텼다”며 “요새는 200~300명씩 찾아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상권의 90%가 가이드를 껴서 방문하는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인데 요즘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전했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이번 크루즈는 가족 단위로 방문한 여행객들이 주를 이뤘다. 아이돌 그룹 더보이즈 영훈의 팬인 나카노 카나(21) 씨는 “K팝을 좋아해 한국에 한번은 꼭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나중에 어학연수도 한국으로 올 계획이 있어 가족들과 이번에 휴가차 방문했다”고 말했다. 유카코 야기다(36) 씨도 9살 딸과 함께 방문했는데 선글라스와 밀짚모자를 쓰고 딸과 함께 녹차 아이스크림콘을 먹으며 마을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는 “딸이 알록달록한 마을을 보고 너무 예쁘다며 좋아한다”며 “이따 국제시장에 가는데 딸에게 김밥과 비빔밥을 꼭 맛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국제시장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코스 중 하나다. 감천 문화마을·해동용궁사 등의 대표 관광지를 돌아보고 오후 5시쯤 마지막 코스로 5~6개 조가 빼곡하게 국제시장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부산 국제 영화제와 국제시장 중심 거리가 가득 찼다. 낙지 철판구이, 씨앗호떡, 십원빵 등을 먹기 위해 각 가게에 10명씩 줄을 서기도 하면서 시장이 북적였다. 십원빵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31) 씨는 “8월 들어 크루즈 입항빈도가 늘어 입항날에는 500명 가까이 손님이 는다”며 “일본에서 ‘주엔빵’인 십원빵이 인기가 있어 특히 일본 분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분식 노점상을 운영하는 김모(51) 씨도 계속 밀려드는 손님 덕에 쉴 틈 없이 전을 부치고 있었다. 김씨는 “요즘은 손님의 50%가 외국인이라 김밥과 지짐이 제일 잘 나간다”면서 “코로나 이전 매출이 100이라고 하면 코로나 때는 0이었고 지금은 50까지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상인들은 오늘처럼 크루즈 여행이 더 활성화돼 코로나 이전으로 시장이 완전히 회복되길 기대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씨앗호떡을 판매하는 박모(55) 씨는 “코로나 이전에는 크루즈 관광객들이 시장에 오면 여행사 측에서 각각 5000원씩 주고 자유롭게 사먹게 하는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면서 “물가가 올라 5000원으로는 안 되겠지만 크루즈 여행이 더 많이 들어와 시장이 예전 수준의 생기를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내비췄다.
국제시장에서 한식을 맛보고 쇼핑을 즐긴 일본인 관광객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한 손에 비닐 쇼핑백을 들고 있는 스즈키 카즈미(35) 씨에게 손에 든 것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쇼핑 좋아!”라고 외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시장을 다니면서 티와 바지를 샀다”면서 “더 구경하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해 아쉽다”고 말했다. 유이치 고마츠(43)도 “한국 여행이 처음인데 ‘지짐’을 먹어보고 맛있어서 놀랐다”며 “오늘 7시간밖에 머물지 않는 점이 아쉬워 가을이나 겨울에 서울도 방문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가사와 히라키(26) 씨는 한식 중에서 특히 삼계탕이 맛있다며 나중에 서울에서 삼계탕을 먹어보길 추천했다. 그는 “5년 전 한국에서 삼계탕을 먹고 푹 빠졌는데 오늘 못 먹어서 아쉽다”면서도 “시장에서 처음으로 김밥을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더운 날씨 빼고 모든 게 완벽한 하루였다”며 “부산 상인들이 친절하고 일본어를 할 줄 아시는 분들이 가끔 있어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면세점 매출도 증가세… 한국 화장품·김이 잘 나가
외국인 관광객의 유입으로 면세점을 찾는 외국인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면세점을 이용한 외국인은 53만4572명으로 전년 동월(11만730명) 대비 약 4.8배 증가했다. 이날도 일본인 관광객들 중 일부는 신세계 면세점 부산점을 찾았다. 특히 헤라·설화수 등 한국 화장품과 김을 파는 매장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렸다. 화장품 매장 점원 오모(36) 씨는 “코로나 때는 점원만 있고 손님이 아예 없었다”며 “오늘은 관광객이 40명밖에 오지 않아서 400달러(약 53만원) 매출이 났지만 앞으로 중국 단체 관광도 함께 많아지면 더 늘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한국 화장품은 선크림, 팩, 스틱형 주름관리 화장품으로 구매력이 좋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번에 10~20개씩도 구매해간다고 한다.
술·담배를 파는 매장에서 김을 함께 팔고 있어 특이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해당 매장 직원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들어오면 김을 꼭 찾는다”며 “코로나 이후 식품 판매 쪽 매장이 문을 닫아서 이쪽에서 함께 김을 팔고 있는 중”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유창용 영업팀 파트장은 “오늘 40명 중 17명이 김을 2~3봉지씩 사갔다”며 “서서히 관광객이 늘고 있다고 하니 올 10월 정도에는 면세점도 매출이 크게 회복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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