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리고 괴롭혀도…공무원은 여전히 ‘직장갑질’ 사각지대?
손해로 되돌아올까 우려
직장내 괴롭힘 신고 못 해
피해자 보호제도로도 미흡
공무원 A씨는 임신·출산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뒤 따돌림을 당했다. 상급자는 유독 A씨의 연차 사용만 문제로 삼았고, A씨 혼자만 야근과 휴일 출근을 도맡게 됐다. 이전 10년 동안 매년 인사평가 ‘S’ 등급을 받을 만큼 유능했지만 회의에서는 ‘없는 사람 취급’이었다.
A씨는 이 같은 직장 내 괴롭힘을 내부에 신고하지 못했다.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에서 자신의 신고가 손해로 돌아올까 봐 우려했다. 그는 “신고를 하려고 해도 변화가 없고 윗선에서 정보를 공유해 불이익만 있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광역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고 건수는 매년 느는데 이들을 보호할 조례는 헐거웠다.
노동법률단체 직장갑질119와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3년 17개 광역시·도 직장갑질 보고서’를 21일 발표했다. 17개 광역지자체가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부의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과 ‘공공분야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 이행 상황을 점검했다.
공무원들은 직장 내 괴롭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근로기준법에 앞서 국가공무원법이나 고충처리규정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직장 내 괴롭힘’도 적용대상이 아니다. 이에 정부는 2018년 가이드라인을 통해 각 지자체에 관련 조례를 개정하라고 했다.
광역지자체 공무원들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2020년부터 2023년 5월까지 557건이 접수됐다. 신고 건수는 2020년 128건에서 2022년 178건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였다. 괴롭힘 유형은 ‘폭언’이 231건(40.9%), ‘기타’가 131건(23.1%), ‘따돌림·험담’이 65건(11.4%), ‘강요’가 37건(6.5%), ‘부당인사’가 34건(6.0%) 순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의 인정 비율은 31.9%로 불인정 비율(39.1%)보다 높았다.
정부 종합대책으로 17개 광역지자체 모두 관련 조례를 마련했지만, 신고 처리 절차와 보호조치 등은 여전히 미진했다. 정부 방침대로 ‘민간위탁 기관’까지 조례를 적용하는 곳은 서울시뿐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조사하도록 하지만, 조례에 ‘지체 없이 조사’를 포함한 광역지자체는 서울·부산·인천 등 8곳에 그쳤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규정하는 ‘조사 기간 근무장소 변경(피해자 분리조치)’을 조례에 명시한 곳은 4곳에 불과했다. 직장갑질119는 “지방정부의 법에 해당하는 조례가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갑질을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고 참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고 했다. 17개 광역지자체 중 11곳 피해자 신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허위신고’ 관련 조항을 뒀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반기별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광주·대전·울산 등 6곳은 1년마다 실태조사를 하도록 했다. 세종·전남·강원은 정부의 종합대책이 발표된 후 5년 동안 실태조사를 한 번도 시행하지 않았다.
오 의원은 “아직 갑질 관련 조례를 제정·운영하지 않고 있는 143개 기초지자체도 종합대책에 따라 조속히 조례를 제정·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직장갑질119 임혜인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제도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지자체별 적극적인 제도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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