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과학도 이제는 속도전..한국도 ‘신뢰’ 바탕으로 성과 끌어올려야
시간 끌수록 연구 가치 뚝…기초과학 속도가 ‘생명’
독일,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문화’
간섭 줄어드니 연구 성과 발표 빨라져
IBS 바이오 분야 사업화 가능성 엿보여
사업화 프로세스 정교하게 가다듬을 것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장(IBS)은 17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제품은 남들보다 6개월 늦게 출시해도 시장에서 팔 수 있지만, 기초과학은 누군가가 먼저 발표를 하면 아예 가치 자체가 사라져버린다”며 속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 원장은 “일례로 실험실을 세팅하는 과정에서도 실험 장비를 위한 심의하고 구매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외국에 비해 6개월에서 1년이 넘게 소요된다. 뒤집어 말하면 그 기간 만큼 연구에 뒤쳐진다는 뜻”이라며 “장비 구매 시스템 등 근본적인 부분에서 부터 개선을 이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신뢰’다.
사실 노도영 원장에게 이번 독일행은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는 괴팅겐과 뮌헨에서 막스플랑크 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을 방문해 이들의 시스템을 살폈다. 특히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지속하면서 기술 사업화 등으로 수익을 낼 때 기관·개인간의 이해 충돌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가 궁금했다는 게 그의 얘기다. 노 원장은 “독일 연구소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구자 창업과 기술 이전에 대한 경험이 많고, 이를 장려하는 문화가 있다”며 “때문에 이해 충돌 부분에서도 특별한 장치를 마련해 놨을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 아무리 조사를 해 봐도 그 장치가 무엇이지 찾을 수가 없더라”고 말했다. 그는 “직접 독일에 와서 연구자, 행정 실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서 알게 된 것은 이들이 별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연구자가 개인의 사익을 위해 공적인 리소스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의 세계적 기초과학 연구 기관 막스 플랑크에 서는 ‘과학은 과학자들에게 맡긴다’는 말이 있더라”며 “과학자들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문화, 신뢰하는 문화가 연구와 사업화 모든 부분에서 적용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자에게 연구 주제부터 예산, 장비 구입, 사업화 여부까지 모든 부분에 자율성을 주되 책임도 연구자가 지도록 하는 독일 연구소 시스템의 저변에는 신뢰라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자리잡고 있었다. 노 원장은 “과학기술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청렴도가 이미 10년 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올라갔기 때문에 과감하게 우리도 (막스플랑크 식의) 시도를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IBS가 12년이 됐고, 기초과학 분야 중에서도 바이오 분야는 일부 사업화 가능성이 있는 기술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를 사업화 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정교하게 다듬어 가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노원장은 아직 기초과학 분야의 사업화를 적극적으로 독려할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부를 창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업을 장려 할 필요는 아직 없을 것 같다”며 “하지만 자신의 호기심으로 시작한 기초연구가 제품화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때 이를 스핀오프(분사)해 창업할 수 있게끔 적극적으로 도와야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독일 방문에서 만난 201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이자 ‘유도방출억제(STED) 현미경’을 발명한 스테판 헬 박사를 언급하며 “스테판 헬 박사가 실제 현미경을 개발해 사업화 하겠다는 목적으로 연구에 뛰어들었다면 단순히 기존 현미경들의 성능을 조금 더 개선하는 수준에 그치는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며 “남들이 이론적,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파고 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테판 헬 박사는 이후 본인의 기술을 활용한 현미경을 개발 및 제조하는 ‘아베리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노도영 원장은 “헬 박사의 연구 성과는 그의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훨씬 더 큰 가치가 있다. 이 기술이 응용된 수많은 다른 기술이 산업을 발전시키고, 국가적으로 부를 창출했다”며 “이것이 ‘기초과학’의 매력이자,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가 ‘남는 장사’인 이유”라고 말했다.
뮌헨/이새봄기자·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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