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앤팩트] LH, 전관업체 기존 계약 648억 취소..."전면 배제 검토"
[앵커]
철근 누락 사태로 국민적 비난을 사고 있는 한국주택토지공사, LH가 전관 업체와 맺은 기존 계약까지 전면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이와 함께 앞으로 설계·감리 용역에 전관 업체를 전면 배제하는 방안을 추진합니다.
취재기자 연결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이동우 기자!
LH가 전관업체와 체결한 기존 계약을 전면 취소하기로 했다고요?
[기자]
예 그렇습니다.
LH가 보강 철근이 빠진 아파트 명단을 처음 공개한 지난달 31일 이후에도 이들 아파트 설계·감리 다수를 LH 전관 업체가 맡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 같은 고강도 처방을 내린 것입니다.
국토교통부와 LH는 원희룡 장관 주재로 어제 오후 'LH 용역 전관 카르텔 관련 긴급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습니다.
앞서 정부는 LH 아파트 단지에 철근 누락 사실을 발표한 지난달 31일 이후 진행한 설계나 감리 용역에 대한 후속 절차를 중단했는데요.
긴급회의에서 정부는 심사·선정이 완료된 계약 가운데 LH 전관 재직이 확인된 용역에 대해 심사와 선정을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지난달 31일 이후 맺은 계약 11건이 대상이며, 규모는 모두 648억 원에 달합니다.
입찰·심사가 진행되고 있는 설계·감리 용역 23건은 모두 절차를 전면 중단합니다.
이한준 LH 사장의 발언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이한준 /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 법적인 문제는 분명히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LH 입장에서는 전관의 고리를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단절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으로….]
[앵커]
앞으로 설계·감리 용역에 전관 업체를 전면 배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요?
[기자]
예 그렇습니다.
이번 취소분을 포함해 용역을 다시 발주할 때는 전관 업체 입찰을 배제합니다.
또 설계·감리 업체를 선정할 때 LH 퇴직자 명단을 의무적으로 내게 하고, 전관이 없는 업체에 가점을 주기로 했습니다.
더 나아가 설계 감리 용역에 전관 업체 참여를 전면 배제하는 방안도 추진합니다.
이 밖에 정부는 LH 퇴직자와 전관 업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관리할 방침입니다.
LH 퇴직자 취업이 제한되는 기업도 기존보다 늘리기로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원희룡 장관은 "전관 카르텔은 민간 자유 경쟁을 왜곡시키고 공정한 경제질서를 정면으로 파괴하는 행위"이며 "미래 세대의 기회를 빼앗는 약탈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전관을 고리로 한 이권 카르텔에 대해 정부가 단절시키겠다"며 전반적인 제도적 개혁을 약속했습니다.
[앵커]
이번 대책이 실행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전관 카르텔을 철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면서요?
[기자]
예 그렇습니다.
자회사 등을 통해 전관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서류상 걸리지 않도록 하는 등 빠져나갈 구멍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LH 퇴직자의 취업제한 대상 기업도 확대하기로 했지만 실제 이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합니다.
국토부와 LH는 과거에도 취업 제한을 검토했다가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 소지 가능성에 이를 보류했기 때문입니다.
LH의 쇄신 의지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LH는 지난 4월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가 발생한 현장과 같은 무량판 구조로 된 91개 아파트 단지를 전수 조사해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을 확인했다고 발표했지만 조사 대상에서 10개 단지가 누락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철근 누락 아파트 단지도 15곳이 아닌 5곳이 더 있던 것으로 확인돼 축소 발표 논란이 일었습니다.
최근에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임원 전원의 사직서를 받고 이 가운데 4명의 사직서를 수리했지만, 이들 4명은 임기가 끝났거나 한 달여 남짓 남은 것으로 나타나 꼼수 사퇴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철근 누락 사태 원인으로 전관 업체를 지목해놓고도 최근까지 이들 업체와 수주 계약을 지속하고 있었던 것이 재차 확인되면서 사실상 달라진 게 없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나아가 이 같은 계약 중단이나 해지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고요?
[기자]
예 그렇습니다.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전관 폐해를 근절하려다가 오히려 부실공사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상 전관이 없는 곳이 전무한 상황에서 전관을 피해서 계약을 하려다가 오히려 실력 없는 업체에 일감이 몰려 또 다른 부실 가능성을 야기한다는 우려입니다.
이한준 LH 사장도 지난 2일 '반카르텔 공정건설 혁신계획'을 발표하면서 "전관이 없는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LH에서 매년 수백 명의 퇴직자가 나와 사실상 건설업계 전반에 LH 출신자들이 포진한 상황에서 LH 전관이 한 명도 없을 정도 업체이면 그야말로 '존재감 없는' 업체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LH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이 관계자는 "전관이 없을 정도면 정말 소규모의, 사업 경험도 거의 없는 곳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LH 사업은 대부분 규모가 매우 큰 데다 대규모 사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업체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전관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소규모 업체에 일감을 맡겼다가는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부실공사 사태의 원인이 마치 전관에만 있는 것처럼 몰아가지만 LH 전관을 모두 빼면 다른 전관이 나온다"며 전관이 있든 없든 설계, 시공, 감리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앵커]
LH의 막대한 권한을 외부에 이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LH는 2009년 출범 직후부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비리 사고가 터질 때마다 근절대책을 발표했지만 14년 동안 '땅투기' 등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LH는 핵심 사업인 주거 복지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업무는 과감하게 정부, 지자체, 민간에 넘겨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비대한 조직과 광범위한 엄무 범위 탓에 직원들에 대한 통제가 어려운 데다 토지 수용과 용역 발주 등 막강한 사업 권한을 쥐고 있어 전관 로비에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LH는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를 통합해 발족할 당시 구조조정을 추진했지만, 노조 반대로 유야무야됐습니다.
경쟁 관계였던 두 공기업을 통합하다 보니 칸막이가 여전해 효율성이 떨어지고 알력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LH에서 연간 발주한 사업 규모는 지난해 기준 9조 9천억 원으로 1위 건설사인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국내 수주액 9조 3천억 원보다 많습니다.
이렇게 막강한 이권을 쥐고 있다 보니 전관 카르텔이 형성됐다는 것이어서 비리의 근본 해결책은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경제부에서 YTN 이동우입니다
YTN 이동우 (dw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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