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영화 ‘빅4’ 희비 엇갈린 이유…《더 문》 《비공식작전》은 왜 실패했나
‘기술력’ 탄탄했지만 ‘스토리’ 허술한 《더 문》
《비공식작전》, 기존 영화와 비슷한 포맷으로 관객몰이 실패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극장가 여름 성수기를 겨냥해 등장한 일명 '빅4'. 《밀수》 《더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이 '대작들의 전쟁'에서 관객의 선택지는 명확하게 갈렸다. 지난달 말 개봉한 여름 극장가 선두주자 《밀수》는 47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고, 지난 8일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관객 수 270만 명을 넘기며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 SF 기대작이었던 《더문》과 버디 액션 영화 《비공식작전》은 흥행에 실패했다. 특히 《더문》은 참패 분위기다. 최근까지 50만 명의 관객만을 동원하면서 박스오피스 14위까지 추락했다. 왜 두 영화의 '빅4'라는 수식어는 무색해진 걸까. 역대급으로 치열한 한국영화 경쟁 속에서 관객들의 선택을 받은 영화와 외면받은 영화는 무엇이 달랐을까.
'익숙함' '기시감'으로 외면받은 영화들
《더문》의 참패는 영화계에 충격을 안겼다. 《신과 함께》 시리즈로 '쌍천만 흥행 신화'를 쓴 김용화 감독의 신작인 데다, 할리우드 SF 영화 제작비의 10분의 1에 불과한 금액인 280억원, 한국영화가 축적해온 고유의 시각특수효과(VFX) 기술력을 통해 우주를 구현했다는 사실은 개봉 전부터 《더문》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우주를 얼마나 잘 구현했는지에 따라 영화의 성공 여부가 갈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오히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를 가른 것은 '스토리'였다.
할리우드 SF 영화에 견줄만한 영화의 비주얼 속에 전형적인 '한국형 신파'가 존재해 영화의 매력을 오히려 떨어뜨렸다는 평가다. 우주를 다룬 영화인 《그래비티》(2013)나 《마션》(2015)등과 겹쳐 보이는 이 영화는 '한국 SF 영화'로서 스토리의 차별점을 만들지 못했다. 캐릭터들의 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진부한 설정,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미 지나치게 익숙한, '정'을 중심으로 한 K-신파 스토리가 관객들의 호감을 사지 못한 것이다. 결국 한국 SF 영화의 잔혹사는 이어졌다.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500만 명. 관객 수는 그 10분의 1에 불과하다.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작전》은 영화 자체는 '잘 만든 영화'라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이 부여하는 평점인 '실관람객 평점'은 가장 높다. 영화에 대한 마케팅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것은 새로운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게 하는 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기시감이 있다. 《비공식작전》은 1987년 레바논에서 실종된 외교관을 구출하기 위해 현지에 급파된 대한민국 외교관과 불법 이민 상태로 택시를 몰던 생업형 운전사가 힘을 합치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전에도 비슷한 포맷의 작품들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시기적으로도 그리 멀지 않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으로 고립된 사람들의 탈출기를 다룬 《모가디슈》가 2021년 이미 관객들을 만났고, 분쟁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한국인들이 납치된 사건을 다룬 임순례 감독의 《교섭》이 올해 초 개봉한 바 있다. 이 세 편의 영화는 모두 비슷한 시기에 기획된 영화다. 영화를 연출한 김성훈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소재, 이야기의 배경, 장소 등의 유사성으로 세 작품을 비슷하게 볼 수도 있다"며 "주 재료가 비슷하더라도 셰프가 첨가하는 양념이나 요리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비공식작전》은 1980년대 레바논을 재현하기 위해 아프리카 모로코를 돌며 촬영했는데, 이 콘셉트도 《모가디슈》와 동일하다. 당초 《비공식작전》의 제목은 《피랍》이었는데, 《교섭》 등 기존 영화와 비슷한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제목도 바꿨다. 대중적 접근성을 위해 제목까지 바꿨지만 결국 《비공식작전》은 '전혀 다른 음식'으로 여겨지지 못했고, 관객들의 적극적인 선택을 받지 못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비공식작전》은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저평가받은 영화"라며 "《모가디슈》나 《교섭》과 영화의 색채가 비슷하다고 여겨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신선함과 흥미가 감소했고, 결국 관객 접근성 자체가 많이 떨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작들의 희비가 갈린 가운데 한국영화 위기론까지 고개를 들었다. '천만 감독'이나 '스타 배우'라는 타이틀이 더는 관객 동원을 담보하는 중요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OTT 플랫폼을 거치며 대중의 콘텐츠에 대한 기대감은 더 높아졌고, '영화비'를 지불하는 것에도 더 높은 기준이 세워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흥행에 성공한 '한국식' 포맷들
이 기준을 뚫고 관객들의 선택을 받은 류승완 감독의 《밀수》나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기존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신선한 소재를 주축으로 새로운 볼거리를 잘 구성했다는 평을 받는다. 《밀수》는 '해양범죄 활극'과 '워맨스'라는 익숙하지 않은 두 단어를 꺼내 들었다. 성수기 극장가에서 흔치 않은 포맷으로 여겨지는 워맨스를 주연 배우인 김혜수와 염정화가 잘 그려냈고, 류승완 감독이 자신한 '수중 액션' 장면은 여름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주효했다. 1970년대 한국에서 횡행한 밀수를 소재로 해양범죄활극을 펼친다는 이야기 자체도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시기를 관통하는 노래들이 영화의 배경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현재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굳건히 지키며 흥행세를 유지하고 있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관객 수 3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일반적인 재난 영화가 이전의 평화로운 상황을 보여주다가 재난 상황을 클라이맥스로 가져가는 것과 달리,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이후의 상황을 시작점으로 삼았다. 흔한 '재난 영화'가 아닌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인 셈이다. 한국 영화로서는 드문 소재인 데다, 한국인들이 애환과 애증을 지닌 주거지인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국적 요소를 투영시킨 이야기를 전개해가면서 '한국식 영화'로의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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