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걸' 씹어먹은 염혜란, 그 신들린 연기를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8. 2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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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걸’이 굳이 가면을 벗겨 마주하게 한 불편한 실체들

[엔터미디어=정덕현] "제 꿈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린 시절,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춘 김모미에게 꿈이 뭐냐고 묻자 그는 그렇게 말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건 과연 대단히 어려운 일이고 실현하기 쉽지 않은 꿈일까.

안타깝게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스크걸>이 꼬집는 우리네 현실에서는 그렇다. 김모미(이한별)는 멋진 몸매에 춤도 잘 췄지만 광대가 튀어나온 얼굴 때문에 일찌감치 이 꿈을 접는다.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살아가지만, 이러한 외모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회사에서도 이어진다. 그가 사랑받을 수 있는 건 그래서 퇴근 후 '마스크'를 쓰고 카메라 앞에 서서 춤을 출 때다.

마스크를 써야 사랑받을 수 있는(그게 진짜 사랑이 아니라 왜곡된 사랑이지만) 사회. <마스크걸>이 김모미를 통해 꼬집는 건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그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을 향한 혐오다. 그런데 이런 혐오는 여성만이 그 대상이 아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김모미의 상사 주오남(안재홍)도 마찬가지다. 키가 작고 뚱뚱하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왕따를 당했고 그래서 비뚤어진 성의식을 갖고 집착하게 된다. 그가 행복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 느끼는 건 그래서 김모미가 마스크를 쓰고 나오는 방송을 보며 별풍선을 날릴 때다.

김모미가 그러하듯이, 주오남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지 못한다. 그들은 혐오의 대상이 되고 그래서 자신들만의 마스크를 써야 비로소 사랑받는 느낌을 갖는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사랑이 아니고 혐오 받는 자신을 위한 자위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두 사람이 마주하게 되고, 마스크를 벗은 그 실체를 알게 되면서다. 결과는 파국이다. 주오남은 김모미를 성적 대상으로 대하고, 그런 주오남을 김모미는 처참하게 살해한다.

<마스크걸>은 김모미와 주오남처럼 마스크를 써야 비로소 사랑받는 느낌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의 비뚤어진 모습과 그 마스크가 벗겨져 실체가 드러났을 때의 파행을 통해 거꾸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폭력들을 마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결코 유쾌할 수가 없다.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이들의 비뚤어진 모습을 그 실체 그대로 바라봐야 하고, 그것이 꺼내놓는 폭력들과 거기에 부지불식간에 동참해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도 보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김모미를 중심으로 해서 주오남으로 또 그의 엄마인 김경자(염혜란)로, 성형한 김모미(나나)가 새로 만나게 되는 김춘애(한재이)와 그 인물이 또 끄집어내는 최부용(이준영)으로, 또 감옥에 간 김모미(고현정)가 거기서 만나게 된 은숙 같은 인물까지 하나하나 펼쳐나가는데, 그들 중 그 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인물이 없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 드라마에서 염혜란의 신들린 연기에 의해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경자다. 아들 주오남이 살해된 걸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문제적 엄마는 종교에 의탁하지만, 그것 역시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광기에 가깝다. 오로지 아들의 복수를 하는 것만이 그의 삶의 의미가 되어버리고, 그것이 마치 신에 의해 허락된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는 그 복수가 아들을 너무나 사랑해서라고 말하지만, 그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자신 때문이다. 극단화된 서사로 그려지고 있지만 김경자라는 자신 그대로가 아닌 아들에 집착함으로써 끝내 복수의 마스크를 쓰게 된 이 엄마는 저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보인 그 비뚤어진 모성을 그려낸다.

김춘애는 잘 생긴 외모의 최부용과 엮이면서 인생이 꼬여버리는데, 훗날 아이돌이 됐다 실체가 폭로되어 나락으로 떨어진 최부용이라는 인물은,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마스크를 보여준다. 또 감옥에서 김모미가 만난 은숙은 재소자지만 막강한 부와 권력으로 교도소에서도 호텔처럼 지내는 인물로, 돈과 권력이 만들어내는 마스크를 쓴 자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마스크걸>의 이야기는 세 명의 서로 다른 모성의 이야기로도 펼쳐지는데, 저마다의 마스크를 쓴 이 모성들은 자식들 때문에 그 실체를 드러낸다. 주오남의 죽음으로 괴물 같은 모습을 드러내는 김경자가 그렇고, 딸 미모(신예서)가 위험에 처하자 교도소에서 아무런 의욕조차 없어보이던 모미가 보여주는 변화가 그렇다. 또 딸의 이식수술을 위해 모미를 이용해먹으려는 은숙도 그 모성 중 한 명이다.

과연 우리는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는 없는 걸까. 결국 <마스크걸>이 이 문제적인 인물들을 줄줄이 내세워 절규하듯 쏟아내는 이야기는 그것이다. 파격적이지만 김모미라는 인물을 굳이 이한별, 나나 그리고 고현정까지 3인1역으로 풀어낸 것도 이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함이다. 카메라 앞에 가면을 썼던 김모미는 그 후 성형으로 가면을 썼고 그 다음에는 교도소로 들어가 재소자라는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 그는 사랑받고 싶어서 마스크를 썼지만 갈수록 그 선택은 생존이 되어간다.

가면이라는 소재와 그걸 벗겨내는 작품의 서사가 말해주듯이 이 작품은 연기자들에게 남다른 도전과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연기자들은 저마다의 자신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가면을 꺼내 씀으로써 캐릭터를 실체처럼 느껴지게 하는 이들이 아닌가. 신인이라기에는 믿을 수 없는 리얼한 연기를 보여준 이한별이나, 쇼걸로서라도 사랑받으려 몸부림치는 연기를 보여준 나나 그리고 그간의 자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초점 없는 눈빛과 화장기 없는 얼굴로 소름 돋는 연기변신을 보여준 고현정이 새롭게 느껴진다.

작품을 씹어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염혜란의 연기나 연기인생 이걸로 끝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파격적인 연기를 보여준 안재홍도 빼놓을 수 없다. 결코 유쾌하지 않고 유쾌할 수도 없으며 불편함이 가득한 작품이지만, 마스크가 벗겨져 그 실체가 드러날 때의 기묘한 카타르시스가 분명한 에너지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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