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랙] 고작 1㎞ 차이인데, 이렇게 달라지나… 엘리아스, 레일리의 길을 따라갈 수 있을까

김태우 기자 2023. 8. 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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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인천 LG전에서 8이닝 1실점 역투로 위기의 팀을 구해낸 로에니스 엘리아스 ⓒ곽혜미 기자
▲ 엘리아스는 가진 재료의 '재배치'로 반등을 이뤄냈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지금은 메이저리그에서 정상급 불펜 투수로 자리를 잡은 브룩스 레일리(35‧뉴욕 메츠)지만, KBO리그에 처음 왔던 2015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기는 부족한 점이 많았던 선수였다. 27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롯데의 제안을 받아 KBO리그행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당시는 “한 번 KBO리그에 가면 다시는 메이저리그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인식이 파다했을 시기였다.

KBO리그에 온 뒤에도 완벽한 모습을 보인 건 아니었다. 2016년과 2017년 연이어 재계약을 했으나 이른바 ‘특급’의 성적과는 거리가 있었다. 강력한 슬라이더를 앞세워 좌타자는 기가 막히게 잡아냈지만, 우타자 상대로는 어려움을 겪곤 했다. 2017년 6월에는 2군에 내려가기도 했다. 좌우 스플릿 편차를 줄일 만한 뭔가가 필요했고, 2군행은 그 목적 중 하나였다.

당시 롯데 투수코치였던 김원형 SSG 감독은 “레일리에게 체인지업의 구속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주문했다”고 떠올린다. 오프스피드 피치의 대표격인 체인지업은 패스트볼과 같은 폼과 팔각도에서 나오지만, 구속은 10~15㎞ 정도 느리다. 그 구속 차이와 낙폭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다. 그런데 당시 레일리의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구속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패스트볼 타이밍에 방망이가 나가다 체인지업도 걸리곤 했다.

김 감독은 “레일리가 2군에서 133㎞짜리 체인지업을 만들어왔다”고 떠올렸다. 기존 구속에서 시속 2~3㎞ 정도가 떨어진 수치였다. 차이가 그렇게 큰 것 같지 않지만, 이후 레일리는 체인지업의 위력도 배가되며 더 효율적인 피칭을 했다. 비슷한 구속이지만 궤적이 완전히 다른,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라는 두 가지 확실한 무기가 생기면서 상대 타자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 것이다.

김 감독이 갑자기 레일리를 떠올린 이유는 팀 외국인 투수 로에니스 엘리아스(35) 때문이다. 올해 어깨 부상으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퇴출된 애니 로메로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영입된 엘리아스는 비교적 풍부한 메이저리그 경력을 자랑한다. 좌완으로 시속 150㎞ 이상의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경기 운영 능력도 나쁜 편은 아니다. 그러나 기대만큼의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엘리아스는 19일까지 피안타율이 0.301, 이닝당출루허용수(WHIP)가 1.53에 이르렀다. 이 수치로 평균자책점 4.10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체가 용할 정도였다. 위기를 잘 막아내기는 했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고, 결국 많은 주자를 내보내다보니 실점이 많아지고 이닝소화가 길지 않다는 단점이 있었다.

▲ 엘리아스는 체인지업 구속을 의식적으로 떨어뜨리며 성공을 거뒀다 ⓒSSG랜더스
▲ 한국 무대에서 체인지업을 연마해 메이저리그 복귀까지 성공한 브룩스 레일리 ⓒ곽혜미 기자

제구 문제도 있고, 패스트볼 각이 밋밋한 것도 있었지만 선수 스스로 주무기라고 생각하는 체인지업도 문제였다. KBO리그 9개 구단에 트래킹 데이터를 제공하는 ‘트랙맨’의 집계에 따르면 엘리아스의 체인지업 최고 구속은 매 경기 140㎞를 상회했다. 패스트볼과 10㎞ 차이도 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낙폭이 큰 것도 아니었다.

김 감독은 “체인지업 형성이 낮게 되면 모르는데 존에 들어오면 방망이에 걸린다. 상대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쉽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타석에 임한다”고 엘리아스가 고전하는 하나의 이유를 짚었다. 김 감독은 그런 엘리아스를 보며 레일리를 떠올렸다. 분명 가진 건 있는 선수였다. 조금만 고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슬라이더의 비중을 높이고, 체인지업의 구속을 더 떨어뜨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슬라이더 비중은 의식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체인지업 구속을 떨어뜨리기는 더 어려웠다. 투수의 본능 때문이다. 김 감독은 “엘리아스가 고집을 부리는 선수는 아니다. 다만 145㎞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가 140㎞를 던지라고 하면 불안감 때문에 그렇게 못 던진다”며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달라진 조짐이 보인다. 그리고 엘리아스가 호투하는 날은 체인지업 구속이 떨어진다는 공통점도 보인다. 최근 세 경기 등판 내용을 보면 이런 부분이 잘 읽힌다.

엘리아스는 9일 인천 NC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잘 던졌다. 김 감독은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슬라이더의 비율이 높았고, 체인지업도 강약 조절을 했다는 느낌이 든다”고 평가했다. 실제 엘리아스의 체인지업 구속은 트랙맨 기준으로 127.8㎞에서 138.2㎞ 사이에 형성됐다. 최저 구속이 확 낮아졌고 그만큼 체인지업 평균 구속과 패스트볼 평균 구속의 차이도 커졌다.

그런데 15일 사직 롯데전에서는 4이닝 3실점으로 부진했다. 공교롭게도 체인지업 최고 구속이 다시 140.1㎞를 기록했고, 평균 구속도 135.9㎞에 이르렀다. 김 감독은 “원래 자기 패턴대로 던지는 모습이었다”고 씁쓸해 했다.

▲ 20일 인천 LG전에서 대활약한 엘리아스 ⓒSSG랜더스
▲ 엘리아스의 관건은 변화구의 비중 조정이다 ⓒSSG랜더스

공교롭게도 KBO리그 데뷔 후 최고의 투구를 선보인 20일 인천 LG전(8이닝 1실점)에서는 다시 체인지업의 구속이 느려졌다. 이날 엘리아스의 체인지업 최저 구속은 127.6㎞였고, 상당수 체인지업이 130㎞대 초반 정도에 머물렀다. 이날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50.2㎞인 반면 체인지업은 134.6㎞로 평균이 약 14㎞ 차이가 났다. 순간순간 20㎞의 차이를 둔 적도 있었다. LG 타자들의 빗맞은 타구들을 많이 유도한 구종이기도 했다.

패스트볼의 구속, 체인지업과 구속 차이를 유지하고 슬라이더와 커브를 더 유효 적절하게 쓸 수 있다면 엘리아스는 지금보다 더 좋은 투구를 할 수 있는 선수다. 김 감독이 바라는 부분이다. 엘리아스도 의식적으로 이 문제를 고치려 하고 있고, 훈련을 자청할 정도로 성실하게 반등을 조준하고 있다.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 20일 인천에서의 역투 또한 이런 과정에서 기반한다. 엘리아스가 지친 팀의 구세주가 될지, 다음 경기에서의 체인지업 구속과 슬라이더의 비중을 보면 더 정확한 판단이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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