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 미쳤다' 류현진, 괜히 1072억 투수인가…"FA 가치 증명" 딱 1개월 걸렸다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FA 자격을 얻기 때문에 증명해야 할 것들이 정말 많다. 앞으로 2개월은 다음 계약을 위한 쇼케이스 무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캐나다 매체 'TSN'이 지난달 말 빅리그 복귀를 앞둔 베테랑 좌완 류현진(36, 토론토 블루제이스)에게 했던 말이다. 류현진은 지난해 6월 선수 생명이 걸린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 나이 30대 후반에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고, 재활을 다 마치고 건강하게 복귀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복귀 예상 시즌이 토론토와 계약 마지막해인 점도 류현진에게는 부담스러운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TSN은 그런 류현진의 현실을 냉정히 짚은 것이다.
미국 스포츠매체 '디애슬레틱'은 TSN과 마찬가지로 '가장 큰 시험 무대는 빅리그 복귀전이 될 것이다. 토론토가 토미존 수술을 받고 돌아온 그에게 합리적인 기대를 품을 수 있을지는 물음표가 붙는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딱 1개월이 흘렀다. 류현진은 그사이 미국과 캐나다 매체의 평가를 완전히 다 뒤집어놨다. 장장 13개월이라는 재활 기간을 거친 베테랑이 맞나 싶을 정도로 류현진은 연일 마운드 위에서 클래스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4경기에 선발 등판해 2승1패, 19이닝, 평균자책점 1.89를 기록했다. 사이영상 투표 최종 후보에 올랐던 그 시절 류현진 그대로였다. 복귀 직후라 토론토 벤치가 5이닝보다 더 길게 던지지는 않게 관리를 해주고 있는데, 조만간 퀄리티스타트도 가능한 페이스다.
류현진은 21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그레이트아메리칸볼파크에서 열린 '2023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레즈와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4피안타 1볼넷 7탈삼진 2실점(비자책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2승째를 수확했다. 일찍부터 타선이 폭발한 덕분에 손쉽게 승리투수 요건 갖출 수 있기도 했지만, 류현진의 투구 자체도 매우 안정적이었다. 토론토는 10-3으로 이기며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3위 시애틀 매리너스와 0.5경기차를 유지하며 가을 희망을 이어 갔다.
신시내티 타선을 곤란하게 했던 구종은 느린 커브였다. 류현진은 신시내티 타자들이 공격적인 성향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타자들이 달려들 만한 타이밍에 느린 커브를 하나씩 툭툭 던져 약을 올렸다. 커브의 최저 구속은 65.5마일(105㎞)이었다. 직구 최고 구속은 89.6마일(144㎞)로 직전 등판에 찍은 최고 구속 91.1마일(146.6㎞)보다는 떨어졌지만, 부족하진 않았다. 직구(38개)와 커브(16개)에 체인지업(18개), 커터(11개) 등을 섞어 던지며 승리를 이끌었다.
류현진 계속되는 호투에 긴가민가하던 반응은 모두 사라졌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MLB.com은 '류현진은 다른 많은 투수들보다 빠른 공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와우'하고 감탄하게 하는 공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그는 매우 영리하다. 류현진은 타자들의 스윙과 (치고자 하는) 열망을 누구보다 잘 읽는 투수다. 그래서 젊고 공격적인 타자들에게 류현진은 매우 위험하다'고 호평했다.
류현진이 이날 느린 커브를 적극 활용한 것도 신시내티 타자들의 공격적인 성향을 잘 읽었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경기 뒤 미국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신시내티 타자들이 공격적으로 나올 것을 알았고,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노력했다. 그게 오늘(21일) 경기의 핵심이었고, 그렇게 해낼 수 있었다"고 되돌아봤다. 그러면서 커브가 몇 점이었는지 자평해달라는 질문에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고 만족스럽게 대답했다.
존 슈나이더 토론토 감독은 "류현진이 신시내티 타자들의 공격적인 성향을 정말 잘 활용했다. 정말 경기 내용이 좋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리한 전략도 제구가 돼야 먹히는 법이다. 류현진은 이날 공 83개 가운데 스트라이크 56개를 기록했다. 스트라이크와 볼의 경계선에서 타자들이 방망이를 낼 수밖에 없게 공을 던지는 기술은 류현진이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슈나이더 감독은 구속 90마일을 넘기지 못했는데도 류현진이 잘 던진 이유를 궁금해하자 "거의 90마일까지 나왔다"고 답하며 웃었다. 이어 "당연히 이유는 로케이션이다. 커브가 좋았고, 적절한 순간에 활용했다. 오늘은 다른 것보다 모든 공의 로케이션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류현진은 2020년 시즌을 앞두고 토론토와 4년 8000만 달러(1072억원) FA 계약을 했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 재자격을 얻는 만큼 남은 시즌 가치 증명에 더 힘을 써야 한다. 지금까지는 완벽에 가까운 성적을 내고 있다. 메이저리그도 현재 선발투수가 귀한 시장이라 류현진 정도의 안정감이면 얼마든지 빅리그에서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토론토 동료 브랜든 벨트는 류현진을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아는 투수"라고 평했다. 벨트는 "류현진이 마운드에 서면 어떤 공을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류현진은 가진 공을 활용해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아는 투수다. 그리고 매우 빠르게 승부한다. 류현진처럼 빠르게 승부할 줄 아는 투수 뒤에서 수비하는 건 늘 즐거운 일"이라며 엄지를 들었다.
류현진은 이미 복귀 등판 결과만으로 여러 차례 놀라움을 안겼다. 그는 시즌 막바지 팀 승리에 더 기여해 토론토의 가을 이끌면서 FA 시장에서 한번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기회까지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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