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12개 2000원…"거지마트" 美서 비웃음 샀던 '알디'의 역습

뉴욕=박준식 특파원 2023. 8. 21. 12: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2) 맨해튼 클래스 - 독일계 초저가 소매체인의 미국 내 M&A
[편집자주] 세계인들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부르는 뉴욕(NYC)과 맨해튼(Manhattan)에 대해 씁니다. 국방비만 일천조를 쓰는 미국과 그 중심의 경제, 문화, 예술, 의식주를 틈나는 대로 써봅니다. '천조국'에서 족적을 남긴 한국인의 분투기도 전합니다.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버겐필드.

북부 뉴저지를 일컫는 노던밸리보다 다소 아래쪽에 위치해 서민 유색인종들이나 블루컬러 백인들이 주로 사는 마을이다. 여기 다운타운에 자리한 알디(Aldi) 마트에는 하루종일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마트에 가까운 쪽 주차장은 주말이면 서로 차를 대려는 이들로 온종일 북새통이다.

부자들은 아마존 계열사 홀푸드(Whole Foods)에서 우아하게 유기농 식재료를 고른다. 하지만 알디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필수 식재료를 놀라운 가격에 판다. 아니 판다는 표현보다는 '공급한다'는 서술어가 더 어울린다.

홀푸드에선 유기농 토마토를 파운드 단위로 팔아 계산대에 이르러서야 한 알에 2달러(2600원)가 넘는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알디에선 계란 12개들이 한 판이 1.49달러(약 2000원)다. 서민들에게 있어 토마토는 먹지 않거나 저렴한 통조림 제품으로 대체해도 무방하지만 계란은 대체가 불가능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계란 12개 들이 한판, 홀푸드 상품가와 5배 차이
알디는 계란 구매를 1인당 2판(12개 들이)으로 제한한다. 도매업자들의 사재기를 막기 위해서다. 가격만으로 단순 비교하는 건 온당하지 않지만 홀푸드 계란은 12개 들이가 보통 6~10달러 사이다. 같은 계란인데 알디와 4~6배 차이가 나는 셈이다. 우유도 종류가 꽤 다양하지만 1갤런(3.8리터)짜리 한통이 2.95달러(약 4000원)에 불과하다. 우유도 그래서 1인당 2통만 살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올려놓은 미국 물가에 너무 놀라다가 알디를 발견하면 처음에는 좀 의심을 한다. 계란 가격을 두고는 심지어 '중국에서 만든 가짜계란이 아니냐'는 이들도 있다. 혹자는 알디를 '거지마트'라고도 헐뜯는다. 듣거나 보지 못한 브랜드로 채워진 진열대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알디라는 독일계 소매체인의 설립 철학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연합국에 배상금을 내야 하는 위기에 처하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는다. 화폐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던 경험이다. 1921년 말에 약 4마르크에 살 수 있던 빵 한덩이를 2년 후인 1923년에는 17억 마르크를 내야 얻을 수 있었다.
초고금리 환경서 만들어진 필수품 공급원칙
A person shops at a Trader Joe's grocery store in the Manhattan borough of New York City, New York, U.S., March 10, 2022. /로이터=뉴스1
알디의 설립 철학은 그래서 인간의 생계를 위한 필수 식료품에 있어서는 최저가격을 고수해 공급한다는 데 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 기간에 많은 빈민들이 죽거나 존엄성을 버려야 할 정도로 생계적 어려움에 처했던 현실을 상기하면서 알디는 1948년에 설립됐다. 그래서 필수 식자재의 경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저가를 고집한다. 전 지구를 다 뒤져서라도 자신들의 공급망에 가장 싸게 양질의 제품을 가져다줄 도매판매자를 찾아낸다는 게 이들의 사훈(社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요로운 미국에서 알디의 성장세는 진출 초기엔 괄목할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중요한 변곡점이 나타났다. 일단 대량 정리해고된 이들이 알디를 찾아 팬이 됐다. 그리고 3년 만에 코로나19는 사라지자 이제는 더 무서운 인플레이션이 찾아왔다. 정부가 나눠주는 식료품 쿠폰(Food Stamp)이 없이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이들이 알디 소문을 듣고 찾아와 열혈팬이 됐다. 올 초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식료품점과 편의점을 비롯한 소매점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에서 알디는 트레이더스 조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제 알디의 전성시대다.
윈딕시와 하베이스 전격인수 계약…소득 낮은 남부에서 확장
알디는 지난주 미국 남부를 거점으로 하는 소매체인 윈딕시(Winn-Dixie)와 하베이스(Harveys) 슈퍼마켓을 인수한다는 발표를 내놨다. 두 체인은 플로리다와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등에 400개 매장을 두고 있다. 알디가 이들을 M&A(인수·합병)로 흡수한 것이다. 알디는 이미 미국 내에서 38개주에 230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인데, 한 번의 딜로 약 17% 매장 증가를 이룬 셈이다.

알디US 최고경영자(CEO)인 제이슨 하트는 CNBC와 인터뷰에서 "내년 상반기에 거래가 완료되면 많은 (윈딕시) 매장들이 알디 형식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말했다. 알디는 전환하지 않는 윈딕시 진열대에서도 알디의 PB(자체브랜드) 상품을 진열할 것으로 보인다. 알디의 경쟁력이 바로 90% 이상의 PB 상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알디는 수만개 이상의 제품을 나열해 진열하는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2000개 안팎의 상품군을 선별해 가격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로 어필한다. 쇼핑 경험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들어 고객들을 지치게 하지 않는다는 목표다. 저렴한 가격과 우수한 가격 이상의 가치는 없다는 주의다.

알디의 약진은 이 때문에 소비자들이 외식을 줄이고 가정식을 선호하는 가운데 두드러진다. 외식에서는 '팁플레이션(Tiplaion)'이라는 소란스러운 가격인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음식값도 버거운데 팁까지 먹은 가격의 20~35%를 더 내야 하는지라 중산층 입장에선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이런 배경에서 가정식 붐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신선식품을 파는 이른바 그로서리(Grocery) 측면에서는 알디 만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뉴욕=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