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에 숲이 있었다면?…매년 느는 태풍 피해, ‘숲’으로 막는 곳들

김세훈 기자 2023. 8. 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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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방문한 부산 강서구 명지오션시티 방재림의 모습. 녹색연합 제공.

이상기후로 자연재해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여름철 태풍 피해는 일상이 되었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6호 태풍 카눈이 북상한다는 예보에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는 지난 8일 조기 퇴소했다.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는 새만금 현장에 나무로 우거진 숲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카눈이 한반도에 머문 지난 9~10일, 경남 창원에는 9시간 만에 250mm 폭우가 쏟아졌다. 전국 곳곳의 대중교통 운행이 중단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되풀이되는 태풍 피해를 막기 위해 ‘숲’을 조성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있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방재림이 그것이다. 국내에 조성된 방재림은 아직 그 수가 많지는 않다. 수명은 10년부터 400년까지 천차만별이다. 경향신문이 환경단체 녹색연합과 함께 부산·경남 남해·전남 해남의 해안 방재림을 둘러봤다.

부산 명지오션시티 방재림 : 해안가 특성 고려한 나무 선택
드론이 지난 16일 촬영한 부산 강서 명지오션시티 해안방재림의 모습. 바깥쪽 산책로로 사람들이 산책하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지난 16일 부산 강서구 명지오션시티의 방재림에 들어서자 갈매기 울음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숲은 해안선을 따라 길이 4km, 폭 50m의 띠 형태로 조성돼 있다. 바다와 맞닿은 자전거 도로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지나갔다. 숲 사이로 난 샛길로 운동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산책했다.

2010년대 초반 조성된 이곳은 국내 해안 방재림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재난 예방뿐 아니라 주민들의 휴식공간의 역할도 하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과거 매립지로 방치되던 곳에 나무를 심어 숲을 복원했고 이제는 지역주민은 물론 관광객들도 찾는 숲이 됐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고 했다.

매립지였던 이곳이 숲으로 탈바꿈한 데는 2003년 전국을 강타한 태풍 ‘매미’의 영향이 컸다. 매미로 인해 130여명이 사망·실종됐고 재산 피해는 4조원에 육박했다. 부산 지역의 피해도 극심했다. 해안가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바닷바람이 날려왔다. 서 연구위원은 “나무가 비스듬하게 자라나는 것은 이들이 바람을 막아준다는 증거”라며 “쓰나미의 속도가 해안 방재림의 폭이 40m일 때는 절반, 100m면 5분의 1로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했다.

지난 16일 부산 강서 명지오션시티 방재림에서 바닷가와 맞닿은 쪽에 심어져 있는 소나무 ‘곰솔’의 모습. 이들은 해풍과 바닷가의 염분으로부터 다른 나무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김세훈 기자

방재림은 일반 숲보다 조성이 까다롭다.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염분이 나무의 생장을 방해하는 탓에 염분·해풍에 강한 나무를 심어야 한다. 명지오션시티 방재림 가장 바깥쪽에는 ‘곰솔’로 불리는 소나무들이 포진해있다. 염분에 강한 곰솔은 방재림의 다른 나무들이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방패’ 역할을 한다. 곰솔 아래에는 바람에 떨어진 솔방울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날 동행한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소속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허태임 팀장은 “소나무는 염분에 대한 내성이 높고, 바람에도 잘 견뎌서 해안 방재림을 조성할 때 ‘정석’처럼 쓰인다. 해안가와 맞닿는 곳에 심으면 다른 나무들을 보호해줄 수도 있다”고 했다.

곰솔 안쪽에서는 팽나무와 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이 녹음을 뿜어냈다. 팽나무 아래로 넓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허 팀장은 “팽나무는 자생력이 좋고, 그늘 밑에 다른 식물들이 자라난 터전을 마련해주는 나무라 방재림에 적합하다”며 “팽나무 열매를 먹은 새들이 숲을 돌아다니면서 팽나무 씨를 뿌린다. 10년 정도가 흐르면 씨가 뿌려진 자리에 지금 솟아있는 나무가 생긴다”고 했다.

숲이 커나가는 걸 지켜본 지역민들은 숲에 대한 애착이 크다. 주민 박모씨(74)는 “15년 전에는 나무들이 내 키보다 작고 엉성했다. 그런데 이후로도 꾸준히 나무가 계속 심어지고, 있던 나무들이 자라 내 키의 서너 배가 됐다”며 “숲 덕분인지 2009년 이곳으로 이사 온 이후로는 한 번도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해안 방재림은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1980년대 이후 바닷가 공간이 관광지로 무분별하게 개발돼 해안림 상당수가 훼손됐다. 최근 녹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숲을 조성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속도는 더디다. 서 연구위원은 “지금 남아있는 전통 해안 방재림은 전국에 10여 곳 정도”라며 “방재림을 새롭게 조성을려고 해도 국유지인 땅이 많지 않다 보니 장소 선정에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고 했다.

경남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 400년 전통 속 숲과 사람 함께 자라
지난 16일 경남 남해 물건 방조어부림의 드론 촬영 모습. 이곳은 조선시대에 조성돼 300년 동안 지역 주민들이 방풍제·쉼터 역할을 해왔다. 녹색연합 제공.

개발 열풍을 피해 오랫동안 보존된 숲도 있다. 경남 남해 물건리의 방조어부림이 그런 곳이다. 이곳은 17세기에 조성돼 1959년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됐다. 입구에는 300년 된 이팝나무가 우뚝 솟아있다. 지역 주민들은 해마다 이 나무에 제사를 올린다. 19세기 일부 주민들이 나무들을 베어냈다가 태풍 피해를 크게 입은 뒤로 나무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남해 방조어부림은 과거에는 물고기 떼를 유인하는 역할도 해 ‘어부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역 주민 장모씨(68)는 “예전에는 해안가에 나무 그늘을 보고 달려드는 멸치 떼가 득실거렸다. 그런데 앞바다에 해안도로가 생긴 뒤로는 멸치 떼가 보이지 않는다”며 “개발이 이뤄지더라도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길이 750m의 숲에는 수명이 200년이 넘는 팽나무와 푸조나무가 빼곡하다. 나무의 높이도 15m에 이른다. 사이사이로 참느릅나무, 느티나무, 후박나무 등이 자란다. 휘어지고 갈라진 줄기는 나무가 오랜 세월 견뎌온 바람의 흔적을 담고 있다. 허 팀장은 “꼭 곧게 자란 나무가 건강한 것이 아니다. 환경에 맞게 자라나는 게 중요한데, 휘어진 나무들은 각자의 환경에 적응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지난 16일 경남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에서 휘어진 나무들 사이로 지역 주민들이 앉아 쉬고 있다. 김세훈 기자

장씨는 “이곳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 보니 예전부터 바람이 셌다. 태풍 ‘사라’때는 해안가에 정박해 있던 배가 민가까지 올라왔던 적도 있다”며 “그나마 나무들이 앞에서 어느 정도 막아주니 피해가 덜한 것”이라고 했다.

지역주민 조현우씨(63)는 “봄철이면 불어오는 샛바람은 돌풍인 탓에 어부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바람이었다. 이 숲은 그런 바람들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동네 사람들은 전통이 있는 나무들과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숲은 동네 사랑방 역할도 한다. 무더운 여름이면 주민들은 숲 가운데 있는 평상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날도 장씨를 포함한 노인 7~8명이 모여있었다. 장씨는 “평상시에는 나무가 그늘이 되어주니 더울 때는 동네 노인들과 같이 나와서 쉰다. 마을회관보다 여기를 더 자주 찾는 것 같다”고 했다.

허 팀장은 “처음에 논과 집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숲이 후대에는 문화유산이 됐다”면서 “숲이 조성되면 당장 우리세대만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도 계속 혜택을 받게 된다”고 했다.

전남 해남 솔라시도 복원림: 어린 숲에는 사람 손길 필요
전남 해남 솔라시도 부지 해안선을 따라 방재림이 조성돼 있다. 2014년 조성된 이곳이 숲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김세훈 기자

전라남도 해남 솔라시도의 복원림은 2014년에 조성된 ‘어린 숲’이다. 기업도시 솔라시도의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졌다. 이 숲이 울창하게 커나가려면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처음 조성 당시 땅의 염분을 낮추기 위해 흙을 10~20cm 깔아 해수면과 높이차를 뒀다. 해안가에 설치된 나무울타리가 어린나무들의 바람막이 역할을 한다.

서 연구위원은 “초기에 잘 적응하면 인위적 개입없이 스스로 잘 자라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환경요소가 워낙 이질적이라 5~10년 정도는 풀베기 등의 관리가 필요하다”며 “숲 복원 사업은 단순히 나무를 심어놓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시사해준다”고 했다.

지난 17일 전남 해남 솔라시도 복원림에서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이 환경을 설명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지난 17일 방문한 솔라시도 복원림은 숲보다는 정원에 가까워 보였다. 관리되지 않아 누렇게 시든 칡넝쿨이 소나무를 휘감고 있었다. 허 팀장은 “칡이 군데군데 자라나면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고, 소나무가 사용해야 할 에너지를 뺏을 수 있어 제거해야 한다”며 “부분적으로 관리가 안 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조성 초기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가꿀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이런 곳에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묘목을 가져다 심는 게 좋다. 큰 나무보다 어린나무가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고 했다.

솔라시도 복원림은 곰솔과 돈나무가 주요 식생이다. 돈나무는 남해안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동행한 이규명 산림청 산림생태복원과 과장은 “다른 곳에는 난대수종이 별로 없는데 이곳에는 난대수종을 포함해 수종이 다양하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해송이 쇠퇴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각 지역의 기후와 여건을 살펴서 지역성이 반영된 숲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얇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세워진 곳에서 서 전문위원은 “잼버리 조기 퇴영도, 도심지의 기형적인 폭염도 그간 눈앞의 개발이익만 노리고 녹지의 가치를 외면했기 때문”이라며 “이 나무들이 10~20년 뒤에는 울창한 숲을 이룰 것이다. 지자체가 나서서 숲을 복원하려는 첫발을 뗐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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