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분야 '갑질 근절 대책' 5년째…연평균 신고율 0.3% 그쳐
공무원 직장갑질 신고 건수, 직장인 평균의 10% 불과
조례 적용범위 좁고, 피해자 보호조치 명시 4곳뿐
'허위신고' 독소조항…"신고 위축 우려, 조속히 개정돼야"
'반기별로 실태조사' 정부 방침 지키는 곳 없어…"폐쇄적 조직문화, 적극 발굴 필요"
#사례1. "지방의회 공무원입니다. 상급자의 폭언으로 지자체 조사 부서에 신고를 했고, 녹취록과 녹음파일, 정신과 진단서 등을 첨부했음에도 반년간 질질 끈 조사 끝에 훈계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피해자인 저는 그 결과도 뒤늦게 알았고요. 장기간에 걸쳐 폭언을 하고 타부서 직원들에게까지 제 험담을 했는데 인사 기록에도 안 남는 주의만 준 것입니다. 공무원 신분으로 내부 조직 말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수단이 또 있을까요?"
#사례2. "현직 공무원입니다. 직장 상사로부터 사무실 외 식사 자리에서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지자체에는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조례는 없고 오로지 감사부서 판단에 따라야 합니다. 제가 가해자로 지목한 사람은 불과 2년 전 감사부서에서 감사 업무를 봤던 사람입니다. 신고 후 적절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공무원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요?"
정부가 공공기관 갑질 근절 대책을 마련한 지 5년 만에 17개 광역시·도 모두 조례를 제정했지만, 적용 범위가 좁아 공무원의 직장갑질 신고 건수는 직장인 평균의 10%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21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전국 17개 광역시·도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신고·처리 현황'을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의 지원을 받아 분석한 '2023년 17개 광역시·도 직장갑질 보고서'를 발표했다.
2020년부터 2023년 5월까지 3년 5개월간 전체 광역자치단체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총 557건이다. 사건 종결된 524건 중 167건(31.9%)만이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됐고, 불인정률이 39.1%(205건)로 더 높았다.
같은 기간 공공분야 직장 내 괴롭힘 유형은 폭언이 231건(40.8%)으로 많았다. △기타 131건(23.1%) △따돌림・험담 65건(11.4%) △강요 37건(6.5%) △부당인사 34건(6.0%) 순으로 나타났다.
연도별 신고 건수는 △2020년 128건 △2021년 170건 △2022년 178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보고서에 따르면 17개 광역시·도의 연평균 괴롭힘 신고 건수는 163건으로 광역자치단체 본청 공무원(55,037명)의 0.3%였는데, 이는 직장갑질119가 올해 6월 직장인 1천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직장인 평균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비율(2.8%)의 10%에 불과한 수치다.
정부는 공공분야 직장갑질 근절을 위해 마련된 조례의 적용범위를 민간위탁 기관까지 적용하도록 했지만 서울특별시를 제외한 16개 광역시·도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서울시만이 2022년 7월 조례를 개정해 적용범위에 "시의 사무를 위탁받은 기관, 시의 지원을 받는 각종 복지시설"을 추가했다.
반기별로 실태조사를 하도록 한 정부 방침을 지키는 곳은 17개 광역시·도 중 한 곳도 없었다. 1년 주기로 실태조사를 시행하는 광역자치단체는 광주시, 대전시, 울산시, 전라북도, 경상남도, 제주도 등 6곳이었다. 특히 세종시, 전라남도, 강원도 등 3곳은 정부의 종합대책 발표 이후 5년 동안 실태조사를 한 번도 시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근로기준법은 조사기간 동안 근무장소 변경이나 유급휴가 명령과 같은 피해자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17개 광역자치단체 조례에서 조사 기간 중 피해자 분리조치를 명시해 놓은 곳은 부산・인천・울산・제주 4곳(23.5%)에 불과했고, 나머지 13개 광역자치단체는 직장 내 괴롭힘 사실 확인 후 분리조치를 취하거나 관련 규정 자체가 없었다.
광역자치단체 조례에 '허위신고' 조항을 넣어 피해자들의 신고를 위축시키는 '독소조항'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17개 광역시·도 중 11곳(64.7%)이 조례에 '허위신고'를 포함해놓았다. 2019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 사실에 관하여 불기소처분 내지 무죄판결이 내려졌다고 하여, 그 자체를 무고를 하였다는 적극적인 근거로 삼아 신고내용을 허위라고 단정하여서는 아니"된다고 했다. 허위 신고인지 여부는 피해자 보호와 제도의 취지 등을 비추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직장갑질119는 "'허위신고' 관련 조례는 대법원 판례 및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의 의미를 왜곡하고, 피해자를 위축시켜 신고로 이어지지 못하게 하는 심각한 문제로 조속히 개정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지방정부의 법에 해당하는 조례가 근로기준법이 명시한 '신고기간 중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갑질을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고, 참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폐쇄적일 수 있는 공직사회 분위기를 미루어 볼 때 광역자치단체가 괴롭힘을 경험해도 신고하지 못하는 조직문화가 형성돼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며 "신고 접수가 저조한 상황에서 광역자치단체의 실태조사는 숨어있는 직장 내 괴롭힘을 발견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직장갑질119는 공공분야 갑질 근절을 위해 △정부의 갑질 근절 대책 종합 점검 △기존 조례 독소조항 등 정비 △공무원에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지자체 민간위탁 괴롭힘 예방 및 대응에 적극적 개입 △공공기관 평가에 반영 △예방·대응 활동 위한 예산 마련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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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희영 기자 mat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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