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때 조선인 폭동기사는 오보… 사회는 변해도 역사 본질은 변하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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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진보적 일본인이어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사건의 진상과 역사적 사실을 밝히려 했다. 일본 사회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
40여 년의 기자 생활 중 20년을 역사 전문기자로 활약한 그는 "동일본대지진 직후 일본에서 관동대지진 관련 기획전시가 많았는데, 당시 조선 민중을 학살했단 사실에 대해선 아무도 그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면서 "왜곡된 기억을 파헤치고자 했던 게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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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 해에 진상밝힌 책 내
“양심적, 진보적 일본인이어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사건의 진상과 역사적 사실을 밝히려 했다. 일본 사회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
최근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국내 출간된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삼인)의 저자 와타나베 노부유키(渡邊延志·68·사진) 전 아사히(朝日)신문 기자가 10년간 ‘관동 대지진 학살’ 문제를 파고든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10년간 직접 발로 뛰어 발굴한 내용을 모은 책 출간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그는 지난 19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회는 변해도 역사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며 “역사를 두고 양국이 싸워 온 근원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40여 년의 기자 생활 중 20년을 역사 전문기자로 활약한 그는 “동일본대지진 직후 일본에서 관동대지진 관련 기획전시가 많았는데, 당시 조선 민중을 학살했단 사실에 대해선 아무도 그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면서 “왜곡된 기억을 파헤치고자 했던 게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관동대지진 직후 요코하마(橫濱) 등에선 이른바 ‘불령선인’(不逞鮮人·불온하고 말을 듣지 않는 조선인)들이 무장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며 자경단에 의한 집단 살인이 벌어졌다. 당시 학살을 당한 조선인은 약 6000명에서 1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본 사회는 ‘일부 폭도에 대한 진압’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마크 램지어 미 하버드 로스쿨 교수를 비롯한 일본 우익 단체에선 당시 조선인이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인용해 ‘정당방위’였다며 ‘학살부정론’을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와타나베 씨는 “당시 기사들은 통신·교통이 단절된 환경에서 확인되지 않은 오보였다”며 “이를 그대로 인용한 램지어의 주장은 종전 일본 우익단체의 주장을 짜깁기한 걸로 봐도 무방하다”고 비판했다.
와타나베 씨는 잘못된 역사를 검증하지 않고 감추는 사이 양국 관계도 악화하면서 역사 싸움이 지속되고 있다고 봤다. 최근 한·일관계가 협력 분위기로 전환하는 만큼 과거사를 제대로 이해할 기회라고 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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