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반려동물 유전자 검사

2023. 8. 2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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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 질환, 미리 알고 대비한다

TV 드라마에서 되풀이하는 클리셰가 있다. 바로 친자 확인이다. ‘이 아이가 진짜 내 아이인가’ 하는 의혹 끝에 머리카락이나 칫솔을 가져다 유전자 검사를 하고 종내는 떨리는 손으로 흰 서류를 받아 든다. 그런데 요즘엔 반려동물도 유전자 검사를 한다. 물론 드라마와는 다른 이유에서다.
(사진 언스플래시)
수리와 산책길에 가끔 듣는 질문이 있다. “예뻐라. 품종이 뭐예요?” “혼종인데 스트리트 출신이라 부모견을 몰라요.” 그때부터 상대는 눈을 반짝이며 추리에 들어간다. “몰티즈랑 푸들이 섞인 것 같은데”라든가 “시추가 보여요” 등이다. 뭐가 됐든 예쁘다니 기분은 좋지만, 가끔은 나도 궁금하다. 어떤 조합이 우주 최강 미모견 수리를 탄생시켰는지가 아니라 바로 유전력 때문이다. 열두 살 수리는 방광염 처방 사료를 먹고, 슬개골 탈구와 심잡음이 있어 상태를 관찰 중이다. 얼마 전에는 이빨 열두 개를 한번에 뽑았는데,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내게 의사는 타고나기를 이빨이 약한 아이가 있다며 위로했다. 그러고 보면 포메라니언인 ‘하뚜’ 보호자는 간식을 무척 신중하게 골랐다. 포메라니언은 선천적으로 이빨이 약하고 쉽게 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인데, 수리도 품종을 알았다면 미리 조심하고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다.
반려동물이 질병을 앓을 때 병원으로부터 듣는 가장 흔한 원인은 ‘유전력’이다. 개와 고양이에게 발병하는 유전 질환은 꽤 많다. 개라면 고관절 이형성증, 슬개골 탈구, 방광·요로 결석, 뇌전증, 심장 질환, 퇴행성 골수염 등이고, 고양이에게는 하부 요로계 질환, 당뇨병, 다낭포성 신장 질환, 심장 질환, 청각 장애, 시각 장애 등이 흔하다. 그러나 이들 외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DNA에는 특정 질환과 관련된 유전자 돌연변이나 구조적인 이상 여부를 알 수 있는 정보가 담겨 있다. 이 때문에 반려동물 역시 유전자 검사를 통해 당장은 드러나지 않더라도 어떤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지 예측하고 발병을 최소화하거나 늦추는 노력을 시작할 수 있다.
질병 예측 기능 외에도 반려동물 유전자 검사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반려동물의 품종은 물론이고 그에 따른 행동과 기질을 알 수 있고 다 성장했을 때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으며, 나아가 평균 수명까지 예상할 수 있다. 병원 검사에서는 질병을 확인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수많은 검사 과정을 생략하고 유전자 검사 결과에 근거해 각별히 취약한 부분에 검사를 집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전자 검사 결과가 신장 이형성증에 취약한 점을 시사했다면, 신장 검사부터 해 보는 식이다. 한편 반려동물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았을 때라면 같은 개체인지 확인이 가능하며, TV 드라마처럼 유전자형을 비교해 혈연 관계를 입증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음도 물론이다.
유전자 검사를 위해서는 반려동물의 구강상피세포, 모근을 포함한 털, 혈액, 타액 등을 검체로 활용한다. 검사 세부 항목은 각기 다르며 품종에 따라 특정 검사만 진행하기도 한다. 비용은 병원마다 다르겠으나 통상 20만 원 안팎 수준이다. 다만 유전자 질환 검사가 언제나 100% 옳은 것은 아니다. 잠재적인 오류나 불일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샘플 수와 검사 방법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더 중요한 점은 발병 가능한 질환을 확인한다 해도 많은 유전 질환은 발생 자체를 막을 순 없다는 것이다.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를 막고 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관리하는 데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이 맞겠다.
나 역시 고민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번 달 검진 때 병원에 가면 수리의 유전자 검사에 관해 수의사와 상담해 볼 참이다. 평소 걱정을 사서 하는 성격의 나에게는 모르는 것이 약일 수 있지만, 수리를 위해서라면 분명 아는 것이 힘이 되리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사진 언스플래시)
[글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 사진 언스플래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93호(23.08.2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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