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맞서려는 ‘시진핑 리스크’[이철호의 시론]
과잉 부채가 부른 中 경제 위기
‘제2 리먼 사태’는 과장된 공포
아직 당국의 통제 가능 범위 내
시 주석의 反시장적 사회주의
부동산 때려 사회적 불만 달래
시장과 더 멀어지면 진짜 위기
“중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국과의 통상마찰에 가려져 있다. 그것은 과잉 부채다.” 3년 전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경고했던 문제가 부동산 위기로 터져 나오고 있다. 뇌관은 2020년 8월 ‘3개 레드라인’ 정책이었다. 시진핑 주석의 방주불초(房住不炒·부동산은 주거용이지 투기용이 아니다) 선언에 따라 자산부채비율·순부채비율·현금성 자산이 일정 비율 아래면 은행 대출을 금지시켰다. 은행 창구가 막힌 기업들은 고금리의 부동산 신탁 등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에 손을 벌렸다.
그림자금융엔 ‘만기 불일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보통 6개월짜리 단기 금융상품으로 돈을 끌어모아 3∼5년 만기로 빌려준다. 호황 때는 무리 없이 넘어갔지만,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헝다·비구이위안 등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지면서 사달이 났다. 대출금 회수에 차질을 빚은 중룽(中融)신탁 등이 만기가 돌아온 64조 원 단기 금융상품에 연쇄적으로 지급 불능을 선언한 것이다. 3조 달러(약 4000조 원)의 그림자금융 위기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하지만 “중국판 리먼 사태가 온다”는 공포는 과장된 위기로 보인다. 파산 건설업체는 해체해 헐값에 국영 건설업체에 넘겨 나머지 공사를 진행하면 된다. 레드라인 3개만 풀어도 상당수 업체는 유동성 위기를 넘길 수 있다. ‘빚으로 생긴 문제를 더 큰 빚으로 틀어막는’ 대증요법이지만, 중국은 2008·2015년에도 그렇게 위기를 넘겼다. 시장이 원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 헝다가 미국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해 난리가 났지만,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다. 헝다의 총부채 440조 원 중 달러 부채는 6.8%인 30조 원에 그친다는 점이다. 사실 중국이 외환위기에 빠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위안화 부채가 대부분인 만큼 최악의 경우 위안화를 찍어내 부실 채권을 사들이면 된다. 세계 1위인 3조20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 보유 중인 8300억 달러의 미 국채, 무역수지 흑자도 든든한 방파제다. 중국 환율 또한 자율변동제가 아니라 25개 통화를 바스켓으로 묶어 사실상 런민은행이 기준 환율을 결정한다.
비구이위안 사태가 2년 전 헝다 사태보다 더 위험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중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그만큼 나빠졌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으로 수출이 쪼그라들고 외국인 직접 투자는 곤두박질했다. 디플레이션 조짐에 내수마저 얼어붙고 있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시 주석의 자세다.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최근 시 주석 주재로 회의를 열고 “기복이 있는 발전, 곡절이 있는 전진의 과정”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태세다. 공산당 이론지 추스(求是)도 “장기적 안목을 유지하고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는 시 주석의 연설을 게재했다. 언뜻 ‘참고 견디자’는 호소지만, 뒤집어 말하면 시장과 정면 대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다. 개혁·개방 시절엔 시장에 방점이 찍혔지만 시 주석은 사회주의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현재의 소극적 부양책 역시 부동산 시장을 적대시하는 공동부유(共同富裕·함께 잘 살자)의 사회주의 색채가 묻어난다. 정치적으로 보면 사회 불만을 달래는 데 ‘부동산 때리기’만큼 효과적인 수단도 없다. 일본도 1980년 기준금리를 2.5%에서 6%로 급상승시킨 미에노 야스시(三重野康) 일본은행 총재가 ‘부동산 거품을 퇴치한 의적(義賊)’으로 사회적 추앙을 받았다. 그 후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의 고통이 찾아왔다.
시장과 맞서는 시 주석의 도박이 성공할지는 의문이다. 국제 금융시장은 아직 비구이위안 사태가 중국 당국의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시장과 거리는 멀어지고 있다.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고, 이미 대내외 변수도 공산당이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소규모 폐쇄 경제 때와 달리 정부 뜻대로 굴러가기 힘든 현실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최근 10조 원 가까이 빼내며 ‘차이나 엑소더스’를 시작했고, 위안화 가치는 당국의 시장 개입에도 달러당 7.3위안을 넘어 16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시장과 맞서려는 ‘시진핑 리스크’가 글로벌 공포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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