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원님 재판’[오후여담]

2023. 8. 2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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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입법·행정·사법이 분립해 상호 견제하는 시스템으로 유지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처럼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 법원에 3권분립의 한 축을 맡겨 선출 권력이 전체주의나 파시즘으로 폭주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가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재판에서 검찰 구형량(벌금 500만 원)보다 현저히 높은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사건'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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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 논설위원

민주주의는 입법·행정·사법이 분립해 상호 견제하는 시스템으로 유지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처럼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 법원에 3권분립의 한 축을 맡겨 선출 권력이 전체주의나 파시즘으로 폭주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민주주의와 봉건·전체주의를 가름하는 기본 중의 하나가 법치주의 유무이고, 그 법치주의를 지키는 전제가 재판의 독립성이다. 우리 헌법(제103조)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가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재판에서 검찰 구형량(벌금 500만 원)보다 현저히 높은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사건’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박 판사가 대학생 때부터 열렬한 노무현 숭배자였으며, 판사가 된 뒤에도 이재명·조국 등을 지지하고 국민의힘 계열 정당을 혐오한 것으로 보이는 다수의 글을 스스로 작성해 페이스북에 올린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판사도 정치적 선호를 가질 수 있지만, 그게 판결로 연결돼선 안 된다. 정 의원에게 내린 징역 6개월은 기존 판례나 법 적용의 형평성에 맞지 않아 판사 개인의 정치 성향과 감정이 개입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박 판사는 정 의원이 6년 전 페이스북에 ‘노무현의 자살은 권양숙 여사와 아들이 박연차 씨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권 여사는 가출하고, 혼자 남은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고 올린 데 대해 “글 내용은 거짓이고, 노 전 대통령 부부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유죄 판결의 이유를 밝혔다. 수백만 달러의 돈을 받은 건 사실인 만큼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중형’을 선고한 근거가 기껏 ‘권 여사의 가출’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으로 짐작된다.

박 판사는 올해 2월 서울중앙지법에 배속된 후 문제의 글들을 지웠다. ‘정진석 판결’이 나온 뒤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는 방증으로, 법관의 양심을 지운 것이다. 박 판사는 글을 지울 게 아니라 스스로 재판을 회피했어야 옳았다. 법관의 양심은 개인의 소신·신념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상식·양식에 근거해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직업적 양심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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