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반복되는 ‘물폭탄’...도로 곳곳 지하차도 사업 불안
영동대로 복합개발·동부간선도로
지하차도 조성사업 재검토 목소리
영동대로 복합개발 내 지하차도 설치,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등 대규모 지하차도 조성 사업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도시계획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효율’보다 안전‘에 초점을 맞추는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와 같이 매년 예측 범위를 크게 벗어난 집중 호우로 지하차도, 지하주차장 등 지하공간 내 인명사고가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어서다.
21일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지하철 2호선 삼성역 사거리-9호선 봉은사역 사거리 구간을 지하 7층 규모의 복합환승센터와 지상광장 등으로 조성하는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사업을 비롯해 동부간선도로, 강변북로와 경부간선도로(양재~반포 구간)도 지하화 작업이 추진 중이다.
지하차도는 교통체증을 완화하고 도시경관을 해치지 않는 등의 장점이 부각되며 교통량이 많은 대도시권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장점에도 ‘도로의 지하화가 재난 대응 측면에서 취약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것은 매년 반복되는 극한 호우와 그에 따른 안전사고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2014년에는 부산 온천동 우장춘로에서 발생한 침수 사고로 2명이 사망했고 지난해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포항 인덕동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에서 주민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만 해도 청주 궁평2지하차도에서 발생한 참사로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올해 궁평2지하차도 참사를 계기로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지하차도 조성 사업의 안전 대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사업이 대표적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에 기본 계획이 수립된 이 사업은 영동대로 지하에 GTX 등 대중교통 복합환승센터와 상업시설 등을 조성하고, 지상을 녹지광장으로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침수 안전 이슈가 불거진 부분은 지상광장 조성을 위해 480m 길이의 대형 지하차도를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이다. 해당 지역은 주변보다 지대가 낮아 침수 위험성이 상존한 지역으로 꼽힌다. 감사원은 올해 초 서울시에 해당 공사 구간에 ‘침수 우려가 있다’며 사전 조치를 요구한 바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당시 서울시는 사업을 설계할 때 한강 수위가 고려된 탄천 ‘계획홍수위’ 118.01m를 기준으로 잡지 않고, 한강 수위를 고려하지 않은 탄천 ‘100년 빈도 홍수위’ 116.33m를 적용했다. 때문에 해당 사업 구간의 예상 침수 높이는 117.295m로 감사원이 책정한 예상 침수 높이 118.317m보다 낮게 설정됐다. 사업구역 환승센터 출입문의 차수 문 높이의 경우 예상 침수높이 대비 무려 69㎝ 낮게 설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2028년 개통을 목표로 올해 하반기 착공을 앞둔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도 대표적인 상습 침수 지역 가운데 하나인 중랑천 인근에 위치해 있다. 올해도 집중 호우로 중랑천 수위가 올라 동부간선도로 양방향 전 구간이 전면 통제되기도 했다.
급변하는 기후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안전 대책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뉴노멀 된 상황에서 빈도 개념 등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방재성능목표(홍수, 호우 등으로부터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역별로 설정, 공표한 강우량)와 설계기준 상향 등의 대책이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시간당 120㎜), 동부간선도로 지하화(시간당 114㎜) 등은 ‘200년 설계빈도’가 적용됐다. 설계빈도란 일정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비가 내린 날의 강수량을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2022년 8월 서울 동작구에는 기상관측 이래 최대의 폭우인 500년 빈도에 해당하는 시간당 141.5㎜의 비가 내렸고, 강남구에는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사업의 200년 설계빈도에 육박하는 시간당 116㎜의 비가 내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지하차도 조성 사업에 대한 원점 재검토 등 전향적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현재 900여개의 지하차도 가운데 자동차단시설이 설치된 곳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며 “일본과 같은 다른 선진국에서는 과거 지하차도 침수사고를 겪은 교훈을 바탕으로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설계단계부터 철저한 안전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권익위 권고에도 침수사고가 되풀이된다는 것은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예방과 대비에 초첨을 맞춘 행정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재근 기자
likehyo8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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