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칼럼] 새로운 네트워크 ‘오픈랜’이 온다
네덜란드 속담에 ‘태풍이 불면 어떤 이는 담을 쌓고, 어떤 이는 풍차를 단다’는 말이 있다. 태풍을 위기로 생각하면 담을 쌓고 기회로 생각하면 풍차를 준비한다는 의미다.
최근 글로벌 네트워크장비시장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오픈랜(Open-RAN)’이라는 새로운 네트워크기술의 흐름이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오픈랜은 우리에게 위기일 수도,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일 수도 있다.
올해 2월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에서도 오픈랜에 많은 관심과 이목이 집중됐다. MWC는 네트워크를 둘러싼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 진영 간 각축장이었다. 특히 SW기업은 오픈랜만으로도 네트워크의 혁신적인 성능 향상을 구현할 수 있다며 기존 장비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오픈랜은 말 그대로 다양한 제조사의 통신장비를 SW 기반으로 상호 연동해 개방형(Open)으로 무선네트워크(RAN)를 구축하는 기술이다. 기존에는 무선네트워크의 성능 개선이 있을 때마다 새 장비로 교체해야 했다. 하지만 오픈랜은 SW 업데이트만으로도 네트워크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마치 컴퓨터의 운영 시스템이나 스마트폰 앱을 업그레이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픈랜의 핵심은 네트워크의 개방화와 가상화, 지능화에 있다. 개방화된 네트워크 환경은 특정 장비기업의 종속에서 벗어나 기업 간 경쟁을 더욱 촉진시킨다. 장비 종속성의 문제는 미-중 간 화웨이 분쟁과 같이 국가안보 이슈로 확대되며 기술패권 경쟁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가상화된 네트워크 운영 환경은 장비 기반의 서비스에 비해 훨씬 유연하다. 유지 보수비용 절감 또한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 기반의 최적화된 네트워크 운영을 통해 통신 인프라의 활용성도 극대화할 수 있다.
오픈랜의 부상으로 네트워크장비시장에서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기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인텔·구글과 같은 SW기업이 두각을 내고 있다. 화웨이·에릭슨·노키아와 같은 소수 HW장비 제조사가 독점하던 시장에서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이에 더해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같은 클라우드기업도 맞춤 네트워크 솔루션과 비용효율화를 앞세워 빠르게 확장 중이다. 글로벌 네트워크산업 생태계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오픈랜시장은 앞으로의 성장성도 매우 밝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은 2026년 오픈랜시장 전망치를 현재보다 5.4배나 많은 64억달러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전체 통신사의 절반 정도가 아직 5G 통신망을 구축하지 않았다. 5G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오픈랜이 많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동통신 강국임에도 네트워크장비 경쟁력은 다소 열세다. SW기술력 또한 세계 최고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글로벌 HW장비 제조사와 SW기업 사이에 끼여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픈랜 환경에 잘 대처한다면 이를 디딤돌 삼아 장비시장을 더 확장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중소 장비 제조기업에는 해외 시장을 개척할, 더없이 좋은 기회다. 또한 SW 경쟁력도 높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최근 우리 대기업이 SW 방식의 가상화기지국(vRAN)으로 오픈랜시장에서 성과도 내고 있다. CDMA라는 기회를 통해 이동통신 강국으로 도약했듯이 잘 준비하고 과감하게 도전해야 할 것이다.
새롭게 개화되는 오픈랜시장에서는 1~2년 이내에 제대로 공략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시장 경쟁력 확보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력이다. 오픈랜 핵심 장비·부품 기술력과 SW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국가적 혁신 역량을 총결집해야 한다. 세계 최고 기술을 목표로 글로벌 선도국과의 공동 연구도 강화해야 한다.
오픈랜시장은 이미 글로벌 상용화가 진행되고 있다. 유리한 고지 확보를 위해서는 기술 개발과 연계한 국제 표준화에도 서둘러야 한다. 특히 해외 진출의 토대가 될 테스트베드 구축, 상호연동성과 신뢰성 검증과 같은 시험·인증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오픈랜장비 국제 인증 체계 구축이 그 시작점이 될 것이다.
개방성이 전제되는 오픈랜은 단일 기업이나 기관 혼자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수요에 맞는 기술을 개발하고 또 해외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민·관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최근 출범한 ‘오픈랜 인더스트리 얼라이언스(ORIA)’는 그래서 그 의미가 크다. 얼라이언스가 중심이 돼 민간 수요 연계, 해외 현지 오픈랜 실증 등 생태계 전반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전환기에는 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재된 위험을 경계하되 기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새로운 변화의 바람에 맞서 풍차를 달아 성장동력을 얻는 현명함이 요구된다. 디지털 강국을 만든 도전과 성공의 경험은 우리의 가장 든든한 자산이다. 오픈랜 시대, 새로운 네트워크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전성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원장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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