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빛으로 원자 제어···수놓듯 그린 맥주잔 '감탄'
첨단 양자광학 기술 진수 엿봐
광학 격자 방식으로 정보 구현
건물균형에도 민감 초정밀 작업
큐비트 기반 양자통신에도 응용
포스텍 "세계적 연구소 협력 추진"
기껏해야 수십 픽셀(화소)로 거품 가득한 맥주잔 두 잔이 맞부딪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 단순하고 서툴게까지 보이는 이 그림을 방문객들은 명화를 마주하듯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빛으로 원자의 위치를 정밀하게 옮기고 배열함으로써 원자 하나하나를 픽셀로 구현해낸 첨단 양자광학 기술로 만들어진 그림이기 때문이었다.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에서 양자광학 연구의 최전선을 엿볼 수 있는 ‘막스플랑크 양자광학연구소(MPQ)’를 지난 14일(현지시간)방문했다. MPQ는 세계 최고급 기초연구기관 연합체로 평가받는 막스플랑크연구협회 산하 연구소다. 빛과 원자의 상호작용, 특히 빛으로 원자의 위치나 스핀 같은 상태를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MPQ의 ‘양자인터넷 연구실’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맥주잔 그림도 고정밀 원자 제어 연구를 통해 얻은 성과를 보여준다.
원자 하나하나를 원하는 위치에 옮길 만큼 실험 정밀도가 높기 때문에 외부 환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에마누엘레 디스탄테 MPQ 양자인터넷 연구실 박사는 “건물 전체의 엘리베이터 위치까지 균형을 맞춰야 할 정도로 민감하다”이라고 표현했다. 건물에 있는 엘리베이터 2대가 모두 고층이나 저층에 몰릴 때 지구 자기장에 한참 못 미치는 밀리가우스 수준의 미세한 자기장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것만으로도 실험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높은 정밀도의 기술적 비결은 ‘광학 격자’에 있다. 광학 격자는 빛의 전자기장 분포로 인해 생기는 일종의 ‘홈’이다. 움푹 팬 홈으로 공이 굴러떨어져 갇히듯 광학 격자에 원자를 가둘 수 있다. 갇힌 원자는 움직임이 최소화해 연구자들이 상태를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큐비트’ 단위의 양자정보도 더 잘 구현할 수 있다. 양자통신과 양자컴퓨터 같은 양자정보 시스템이 절대0도(섭씨 영하 273도) 근처의 극저온 환경을 필요로 하는 것도 이러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이날 함께 MPQ를 방문한 박재훈 막스플랑크 한국포스텍연구소장은 “전자로 양자정보를 구현하는 기존 초전도체 방식과 달리 광학 격자 방식은 더 큰 물질인 원자로 양자정보를 구현할 수 있다”며 “MPQ는 이런 광학 격자 기반의 양자정보 분야에서 세계급 연구 수준을 자랑한다”고 설명했다. 산하에 막스플랑크 한국포스텍연구소를 두고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협회와 협력하고 있는 포스텍은 이번 방문을 통해 양자정보 관련 추가 협력을 제안했다.
양자인터넷 연구실은 이런 원리를 응용해 실제로 양자통신 실험을 하고 있다. 최첨단을 다투는 연구 주제에 비하면 66㎡(20평) 남짓한 연구실은 단출하고 투박해 보였다. 실내 대부분을 차지하는 ‘큐게이트’와 관련 장치들은 전선이 복잡하게 연결돼 인류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을 연상케 했다. 큐게이트는 작은 돋보기처럼 생긴 렌즈와 소자(素子) 수십 개가 일종의 양자광학 회로를 이뤄 레이저 빛의 방향과 위상(位相) 등을 조절하는 장치다. 이 빛을 통해 다시 초저온·초진공 장치 속의 루비듐 원자를 제어한다. 루비듐 원자가 가지는 양자정보는 광섬유로 연결된 다른 장치의 루비듐 원자에 전송되는 식으로 원격 통신이 이뤄진다. 박 소장은 “이론상 이 연구실 기술력으로 최장 4㎞ 거리를 통신할 수 있다”고 전했다.
MPQ는 200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테오도어 헨슈 교수가 이끄는 ‘레이저 분광학’을 포함해 ‘양자다체 시스템’ ‘이론’ ‘아토초 물리학’ ‘양자 동역학’ 등 크게 5개 연구부서를 운영 중이며 388명의 연구원이 근무하고 있다. 특히 아토초 물리학은 100경(京)분의 1초를 뜻하는 아토초 수준에서 일어나는 빛과 전자, 또는 전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포착해 양자 비밀을 푸는 학문이다. 국내에서는 막스플랑크 한국포스텍연구소가 아토초과학연구센터를 두고 연구 중이다. 김동언 센터장 역시 이날 MPQ 방문에 동행해 새로운 연구협력을 논의했다. MPQ가 있는 뮌헨 가칭연구단지는 뮌헨공대, 막스플랑크 플라즈마물리학연구소 등 다양한 연구기관이 모여 시너지를 내고 있다.
/뮌헨(독일)=한국과학기자협회 공동취재단
김윤수 기자 soo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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