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아름답네요” 류현진 커브로 야생마 길들이기… 야구는 이렇게 하는 거란다, "폼 미쳤다" 극찬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한동안 리빌딩에 박차를 가했던 신시내티는 그 수확물을 하나둘씩 확인하고 있다. 오랜 기간 모으고 공을 들인 유망주들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차례차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며 이제는 신진 세력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그 결과 투수진에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선수들이 늘어났고, 야수진에는 운동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의 집합체가 됐다. 야수진은 상당수 선수들이 멀리 칠 수 있는 파워를 갖추면서도 기동력이 뛰어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직 덜 다듬어진 맛은 있지만, 보는 맛이 있으면서도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타선이다. 류현진(36‧토론토)은 21일(한국시간) 이런 신시내티를 상대해야 했다.
상대 선발 투수는 시속 100마일(161㎞)의 강속구를 펑펑 던지는 헌터 그린(24)이 출격했다. 그린의 데뷔 시점인 2022년 이후로만 따지면, 그린보다 더 많은 100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을 던진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는 없었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이기도 했다. 타선에서는 어마어마한 운동 능력으로 ‘야생마’라는 별명을 가진 엘리 데 라 크루스(21)가 요주의 인물이었다. 유격수로 최상급의 에너지를 갖춘 선수였다.
토론토 주관 방송사인 ‘스포츠넷’ 해설진이 경기에 앞서 “신시내티의 젊은 라인업을 베테랑이 상대한다”고 묘사한 것은 다 이런 이유가 있었다. 자칫 신시내티 젊은 선수들의 분위기가 휘말려갈 경우, 경기가 묘하게 꼬일 수도 있었다. 단타 하나에 1루 주자가 3루까지 가고, 활발한 주루 플레이에 류현진과 토론토의 경기 흐름이 달라질 것이 우려됐다. 하지만 류현진은 류현진이었다. 그런 패기를 이겨낼 만한 노련함이 있었다.
류현진은 21일 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열린 신시내티와 경기에 선발 등판, 5이닝 동안 4피안타 1볼넷 7탈삼진 2실점(비자책점)을 기록하며 시즌 두 번째 승리를 거뒀다. 2회 실점이 있기는 했지만 실책으로 비롯된 실점이라 자책점은 아니었다. 류현진은 최근 세 경기, 14이닝 동안 자책점이 하나도 없는 빼어난 피칭을 이어 갔다. 시즌 7.20으로 시작했던 평균자책점은 어느덧 1.89까지 떨어졌다.
힘이 있는 신시내티 타선의 방망이를 노련한 피칭으로 요리조리 피해갔다고 보면 요약되는 경기였다. 사실 류현진의 포심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전성기 시절은커녕 지난 세 경기만도 못했다. 올해 시즌 평균이 88.7마일로 지난해(89.3마일)보다 못했는데, 이날 경기는 평균 87.4마일까지 떨어졌다. 90마일이 넘는 패스트볼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마치 젊은 선수들이 공을 부수듯 때릴 수 있는 여건처럼 보였다. 그러나 류현진은 특별했다.
류현진은 이날 포심(46%), 체인지업(22%), 커브(19%), 커터(13%)까지 다양한 구종을 던졌다. 포심은 주로 우타나 몸쪽에 던졌고, 체인지업과 커브를 몸쪽과 바깥쪽 가리지 않고 떨어뜨리며 신시내티 타선을 봉쇄했다. ‘스포츠넷’ 중계진은 “좋은 체인지업은 젊은 팀에는 효율적이다. 그들이 보기에 공이 손에서 떨어질 때는 패스트볼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타선이라 패스트볼-체인지업의 구분 수준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류현진은 체인지업은 물론, 최저 65.5마일의 ‘아리랑 커브’까지 던지며 총 7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데 라 크루스와 승부는 상징적이었다. 이 신시내티의 야생마를 상대로 한 번은 3루 땅볼, 두 번은 삼진으로 처리했는데 삼진을 잡은 결정구가 바로 커브였다. ‘스포츠넷’ 해설진은 데 라 크루스가 류현진의 커브에 꼼짝을 못한 것에 다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스포츠넷’ 해설진은 류현진이 두 번째 타석에서 데 라 크루스를 상대할 때의 투구 패턴에 대해 감탄을 드러냈다. 이날 해설을 맡은 벅 마르티네스는 류현진이 초구와 2구에 바깥쪽 공으로 포석을 던졌다고 평가했다. 마르티네스는 류현진의 바깥쪽 포석에 데 라 크루스가 파울로 따라 나왔고, 3구는 몸쪽 패스트볼을 던질 것이라 예상했는데 이는 적중했다.
마르티네스는 여기까지 온 데 라 크루스가 이제 더 이상 바깥쪽 공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면서 류현진이 결국 몸쪽을 공략한 끝에 떨어지는 커브로 삼진을 잡아낸 것에 대해 감탄사를 자아냈다. 마르티네스는 “아주 많은 구종을 던질 수 있는 투수의 66마일짜리 커브와 88마일짜리 패스트볼을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면서 “아름다운 조합”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세 번째 타석 후에도 마르티네스는 “류현진과 데 라 크루스 사이의 이 경기에서 젊고 재능 있는 신인을 상대로 류현진이 삼진을 잡아냈다”면서 “류현진은 지난 데 라 크루스와 승부에서 딱 하나의 커브를 던졌고, 커브를 던지기 전 패스트볼을 던졌다. 그리고 그저 아름다운 67마일짜리 커브로 삼진을 솎아냈다”고 승부를 묘사했다. 류현진 또한 경기 후 자신의 커브에 대해 점수를 매겨달라는 질문에 “100점”이라고 만족스러워했다.
‘스포츠넷’ 중계진은 류현진의 등판이 끝나자 “5이닝 동안 7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매우 날카로운 이닝을 만들었다. 오늘은 류현진을 위한 날”이라고 칭찬했다. 실제 신시내티의 어린 타자들은 이런 류현진의 피칭을 혼란스러워했고, 적응하기도 전에 류현진은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등판을 끝내버렸다.
반대로 그린은 강속구를 앞세웠지만 너무 힘에 의존한 피칭으로 난타를 당했다. 그린은 이날 3이닝 동안 10피안타(5피홈런) 3볼넷 9실점(8자책점)으로 부진한 끝에 조기 강판됐다. 공이 빨라도 커맨드가 되지 않거나, 혹은 상대 타자의 노림수에 걸리면 여지없다는 게 잘 드러났다. 류현진의 투구를 반대편에서 보면서 느끼는 게 있었을 법하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신시내티의 선수들을, 류현진이 한 수 가르쳤다.
사실 류현진도 신시내티의 젊은 타자들의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이를 정확하게 파고 들었다. 류현진은 경기 후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신시내티 타자들이 공격적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해서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려 했다"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오늘 경기의 핵심 포인트였다"고 이야기했다. 신시내티 타자들의 약점을 역이용하는 경기 플랜을 짰다는 의미였다.
이는 신시내티 지역 언론의 감상도 마찬가지였다. '신시내티 인콰이어러'는 "류현진은 신시내티 타자들의 방망이에 흙을 묻히는 시속 70마일 이하의 커브를 던졌다"면서 완급 조절을 칭찬하면서 "신시내티는 좌완을 상대로 일관적이지 않은 득점 생산력을 보인 최근의 추세가 이어졌다"라고 완패를 인정했다.
존 슈나이더 토론토 감독은 "류현진은 신시내티 타자들의 공격적인 성향을 잘 이용했다"고 칭찬했고, 팀의 베테랑 타자인 브랜든 벨트 또한 "류현진은 투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류현진이 어떤 것을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알고 빠르게 투구를 한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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