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불우한 가정'…범죄자에 서사 부여 그만해야

최유나 2023. 8. 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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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텔레그램에서 아동·청소년 여성의 성 착취물을 유포한 조주빈이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한 말입니다.

스스로를 '악마'라고 지칭한 조주빈은 '혐의를 인정하는가',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감정은 없는가' 등의 취재진의 질문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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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조선, '분당 흉기 난동 사건' 최원종. / 사진 = 매일경제, 연합뉴스


"악마의 삶을 멈춰 줘서 감사하다"

지난 2020년 텔레그램에서 아동·청소년 여성의 성 착취물을 유포한 조주빈이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한 말입니다.

스스로를 '악마'라고 지칭한 조주빈은 '혐의를 인정하는가',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감정은 없는가' 등의 취재진의 질문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을 충격에 빠트린 흉악범 조주빈의 말은 언론을 통해 널리 퍼졌고, 일부 미디어는 그의 삶을 앞다퉈 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학내 독후감 대회에서 1등", "학보사 활동", "평균 학점 4.0", "봉사활동 단체 가입" 등 언론들은 경쟁하듯 악마같은 범죄자의 이면을 담아냈습니다.

범죄와는 전혀 관련없는 '성실했던' 과거 행적 보도가 이어지자 누리꾼들은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며 분노했습니다.

전국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와 민주언론실천위원회도 성명을 통해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이 돼야 한다. '악마', '짐승' 같은 용어를 통해 가해 행위를 축소하거나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타자화하여 예외적인 사건으로 인식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래 여성 살해, 유기한 정유정. / 사진 = 부산경찰청, MBN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난 2023년, 흉악범의 과거를 들춰내는 보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0대 여성의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정유정(23)의 범행 동기가 보도되는 과정에서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 받아 할아버지 손에 자란 점'이 집중 조명됐습니다.

지난달 발생한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의 경우에도 피의자 조선(33)이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자라며 소년원을 드나들고, 키가 작아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범죄자에게 '불우한 어린 시절'이라는 서사가 부여된 셈입니다.

한 매체는 '현실 불만형 묻지마 범죄자들은 대체로 부모나 형제와의 관계가 양호하지 못 하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달 초 발생한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피해자의 가족은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건 정말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하며 피해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했습니다.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삶이 더 주목받는 현실을 납득할 수 없다는 이유에섭니다.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 최모 씨가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관악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지난 17일 신림동에서 또 '묻지마 범죄'가 발생했습니다.

공원과 연결된 등산로에서 30살 남성 최모 씨는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성폭행하고 둔기로 폭행했습니다. 응급중환자실에 입원한 피해 여성은 결국 깨어나지 못 했습니다.

살인범 최 씨는 경찰조사에서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30년간 성관계를 한 번도 하지 못 했다"는 황당한 진술을 내놓았습니다.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관악경찰서를 나서면서는 '피해자에게 미안하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피해자의 쾌유를 빈다"는 뻔뻔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4일이 지난 지금, 최 씨의 이름조차 공개되지 않았지만 "PC방과 자택을 오가는 게 외출의 전부였던 '은둔형 외톨이'였다", "통화 기록엔 음식배달 전화가 대부분이었다"는 등 그의 과거 모습을 묘사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누리꾼들은 "은둔형 외톨이라고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범죄자의 서사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는 등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로 시민들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한 감경 없는 처벌이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건을 다루는 수사 당국과 미디어의 태도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유나 디지털뉴스 기자 chldbskcjstk@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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